사랑의 결실은 있었다.
결혼을 정하고도 상견례는 없었다.
“사위감만 보면 되지, 무슨 상견례가 필요하나.” 아버지는 담담했다. 형식적인 것에 얽매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의 성격이 그대로 보이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높은 문턱이 존재하긴 했다. 홀머니나 가난보다 더 큰 장벽이었다.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의 계산은 명확했다. 큰딸을 고등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공무원에 붙인 이유는 남동생들의 학비를 대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집안의 벌이를 책임지는 장녀가 시집을 가선 그 계획이 흐트러지게 된다. “시집은 안 된다.”는 외할머니의 선언에 어머니는 그 말에 오래도록 서운함의 씨앗으로 남았다. ‘나는 왜 늘 포기해야하나.’는 답 없는 질문이 가슴에서 솟구쳤다. 그래서 더 빨리, 더 단단히 결혼을 선택했다. 외할아버지는 과묵했다. “미숙이가 데리고 온 사람이면 됐지.” 과묵한 외할아버지는 어떤 면에서 아버지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집안의 두어른 사이의 간극이 있었지만 젊은 커플은 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결혼이라는 결심에 도장을 찍었다.
어머니가 처음 시댁에 들렀을 때, 솔직히 놀랐다. 방 하나, 사글세, 도배도 안 된 벽. 가난이 비밀 없이 드러나는 집이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품격있게 말씀하셨다. “잘 살아라.”라는 단 한마디. 평생 아들을 믿고 기다린 그 방식 그대로였다. “우리 보영이가 선명하니 좋은 사람 데리고 왔겠지.” 그 믿음은 어머니를 편하게 했다.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말했다. “진짜 강한 분이라고 느꼈다.” 그러한 단단함이 둘의 결혼을 이끈 큰 힘이 되었다.
외할머니의 반대가 오래 원망으로 번졌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두 분은 애시당초 그러한 고민을 가지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래도록 홀로남은 외할머니의 곁에 터를 잡고 함께 살았고 한 달에 한 번은 외할머니를 모셔 외식을 했다. 이유를 물으면 아버지는 늘 똑같이 말했다. “왜 감정을 쌓나. 결혼했으면 끝이지.” 덕분에 우리 형제에게도 외할머니는 불편한 인물이 아니었고 반갑고 좋은 어른으로 오래도록 남을 수 있었다.
상견례가 없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두 집안의 결을 더 또렷하게 보여 준다. 외가 쪽의 현실적 계산, 시댁의 무심한 듯 단단한 신뢰. 그 사이에서 어머니는 ‘희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아내’가 되기로, 아버지는 ‘가난한 집의 아들’ 대신 ‘책임지는 남편’이 되기로 각자 결심을 더했다. 그리고 그 결심은 결혼으로 이어졌다.
결혼준비의 시간은 알뜰했다. 두 사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세를 구하는 일이었다. 집을 구할 때도 호들갑은 없었다. 전세가 가능하던 시절, 계모임으로 맞춘 목돈을 보태 방 두 칸짜리 집을 얻었다. 버스 환승이 되지 않아 한두 정거장을 더 걸어 다른 노선을 타던 시절, 둘은 “아껴서 모으자”는 약속을 실천했다. 그 약속의 첫 대상이 집이었고, 집은 곧 한 가정의 안정이 되었다.
외할머니의 반대는 어머니를 서둘러 어른으로 만들었다. 친가의 가난은 아버지를 서둘러 책임있는 가장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천천히 자신들의 속도로 가정을 꾸렸다. 나중에 두 부부에게 상견례는 겉치레에 불과했다. 남은 건 소중한 가족에 대한 책임이었다.
아버지에게 다시 물었다.
“할머니 얘기 나오면 믿음을 많이 얘기하시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짧게 웃고 말했다.
“할머니, 최고야. 나는 평생 믿음을 받았고, 그래서 평생 믿으려고 했다.”
상견례보다 중요한 건 결국 이거였다. 믿음과 책임. 그것이 두 사람의 사랑을 여기까지 이끈 힘이었다. 그리고 그 단단함이 한 가정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