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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삶이었다

무너지지 않는 것들

by 토모

“목표라… 우리 때는 그랬다. 몇 살에 뭐를 하겠다, 이런 거 없었다.”


스물일곱에 임용되어 예순까지 한길. 34년의 시간에서 아버지의 대답은 청빈한 삶만큼 담백했다.

그래도 재차 묻자 곰곰히 생각한 아버지는 한마디를 툭 던졌다.

“첫째, 집을 사야 된다 빨리. 그게 제일 먼저였다.”

가족과 보금자리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꼈던 삶의 지혜에서 나온 진심이었을 것이다. 집은 흔들리지 않을 자리를 뜻했다. 가난을 가까이에서 본 사람일수록 보금자리의 의미를 먼저 깨닫는다. 아버지의 첫 목표도 그래서 “집”이었다.


당시 공무원의 월급이 빤했다. 첫월급봉투에는 8만원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둘의 봉급은 빠듯했다. 그럼에도 둘은 한 가정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어머니도 생전에 얘기하기를 그때는 버스도 환승이 안되서 2정거장을 걸어가서 버스를 타던 시절이었다. 절약이 두 부부의 생활방식이었다.


결혼하고 5년, 우리 가족의 첫 보금자리가 생겼다. 내가 다녔던 복현중학교 앞 주택에 처음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몇해 동안 조금씩 조금씩 이사를 하면서 우리 모두의 추억이 가득 담긴 복현동 아파트에 안착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이사해 군대 말년 휴가를 나올 때까지 뿌리깊은 나무처럼 큰 변동 없이 살았다. “우린 이사를 자주 안 갔다”는 말엔 물밑에서 쉼 없이 움직인 두 사람의 노력이 배어 만든 평안이 깃들어 있었다. 집부터. 흔들리지 않을 자리부터 만드는 것이 아버지의 첫목표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돈 모으는 방식도 단순했다. 월급날이면 봉투에서 집에서 쓸 생활비하고 교통비 나가고, 남은 건 늘 비슷했다. 빚내서 치장하지 않고, 욕심내서 덩치 키우지 않는 것이 우리 집이 가진 재테크의 수단이었다. 은행 문턱이 높던 그 시절에는 계모임으로 돌려받은 목돈을 전세 보증금에 보태는 식으로 집을 한 칸 한 칸 늘려갔다. 겨울엔 창틀 틈에 신문지를 끼워 넣고, 여름엔 선풍기 앞에 젖은 수건을 걸었다. 그럼에도 ‘아껴서 버틴다’가 아니라 ‘필요한 것만 가진다’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했다.


차는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였다. 아버지는 버스로 출퇴근하고, 귀가가 늦는 날엔 택시를 탔다. “정시 퇴근? 잘 못 했지.” 아버지는 젊은 시절 일에서도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일 많은 데 가야 빨리 큰다.” 바쁜 부서를 골라 들어가 밤늦게까지 민원을 검토하고 보고서를 넘기고, 늦은 저녁 동료들과 한 잔 걸치고 들어오곤 했다.


아이들 재롱잔치나 운동회엔 자주 못 갔지만,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주말이면 아버지가 설거지를 도맡고, 와이셔츠를 다리며 한 주를 마무리했다. 흰 셔츠에 김이 올라오고 바지에 속시원한 반듯한 주름이 생길 때쯤 우리집의 한주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방학이면 텐트를 싣고 계곡으로 떠났다. 차마 못 내민 시간을 추억으로 가족들에게 갚으려 노력했다. 금원산 물가에서 수박을 담가 두고, 압력밥솥 김이 ‘칙’ 하고 터지면 웃음 한숟갈 버무리며 추억을 한장씩 남겼다. 해수욕장에선 모래성을 쌓다 파도에 무너뜨렸고, 밤엔 파라솔 밑에서 모깃불 연기 속에 앉아 있었다.


근무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북구였다. “대구시청? 난 하루도 안 있었지. 처음도, 마지막도 북구에서 일했다.” 복현동 동사무소에서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그곳에서 우리를 키웠다. 밤늦게까지 민원을 살피고 동료와 함께 하면서도 새벽이면 다시 출근준비를 서두른다. 아버지의 결정에서 시작된 일이 주민의 삶을 바꾸고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명감도 있었지만 우리 가족의 삶을 지키는 일이 가장 우선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조용하게, 하지만 고니의 물갈퀴처럼 치열하게 34년의 공직생활을 지켜왔다. 그사이 내나이 8살때 이사한 복현동 아파트에서 13년을 살았다. 코흘리던 아들이 군대를 갈 즈음 그 아파트도 재개발 소식이 들려왔다. 오랜 시간 머물던 공간을 떠나 새로운 공간으로 떠나던 날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집부터. 그리고 끝까지. 목표가 삶이었고, 그 삶이 우리를 지탱했다. 흔들리지 않을 자리를 먼저 세우고, 그 자리를 돋우는 것, 아버지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았지만 단단했다. 그리고 한 가정을 오래 단단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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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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