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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st in Translation Oct 09. 2017

작가 한강의 뉴욕타임스 기고문

한강, 2017년 10월 7일, 뉴욕타임스

원문: While the U.S. Talks of War, South Korea Shudders


며칠 전에 읽었던 신문기사가 지금도 생각난다. 70대 노인 한 분이 길거리에서 많은 액수의 돈다발 두 개를 우발적으로 잃어버렸다는 내용이었다. 현금 뭉치를 손에 넣어 서로 금액을 나눈 두 명의 시민이 경찰에 곧 체포되었다. 결국 이들은 노인의 돈을 단념하고, 절도 혐의를 받았다. 


이 내용까지는 평범한 절도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노인이 많은 액수의 돈뭉치를 손수 들고 다닌 이유는 매우 특별했다. "전쟁이 터질 것 같아 걱정이었어요." 그는 경찰 조사관에 이렇게 진술했다. "그래서 은행 예금액을 인출해서 집으로 가던 길에 현금 뭉치를 잃어버린 거예요." 노인에 따르면 원래 손주들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 4년 동안 달마다 조금씩 모은 돈이었다. 한국 6.25 전쟁은 1950년에 발발했다. 아마도 전쟁은 노인의 사춘기 시절 내내 끊임없이 지속되는 경험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 후에 평범한 중산층의 일원으로 성장해 지금껏 살았지만, 전쟁의 위기 속에 은행에 가서 자신의 돈을 인출했던 그 노인이 느꼈을 감정을 나는 한번 상상해 본다. 테러, 불안, 무기력, 겁. 


그 노인과 다르게 내가 속한 세대는 한국전을 결코 경험하지 못했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월북하는 행위는 불가능했고, 북한 사람을 접촉하거나 연락을 주고받는 것조차도 불법으로 규정되었다. 전쟁 이후 세대에 속한 내 또래 사람들은 북한이라고 알려진 국가가 비현실적인 독립체와 비슷하다고 종종 생각한다. 물론,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나를 포함한 남한 사람들은 평양은 이곳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밖에 안 걸리며 6.25 전쟁이 종식된 적은 없고, 다만 휴전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작금의 상황을 지도와 뉴스를 통해 오직 알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망상이나 신기루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와 동년배인 한 동료 작가는 비무장지대(DMZ)가 종종 바다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얘기했다. 반도가 아닌 섬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기묘한 정서가 60년 동안 계속되다 보니, 남한 사람들은 냉담하고 모순된 무관심과 긴장감에 마지못해 익숙해져 갔다. 


때때로 외신 기자들은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기이한 사고방식을 지닌다고 보도한다. 전 세계가 북한을 두렵게 바라볼 때도 남한은 이상하게도 침착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을 운운하는 도중에도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때 남한의 학교, 병원, 서점, 꽃집, 극장과 카페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상 영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노란 학교버스에 탑승한 후 창문을 바라보며 부모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청소년들은 머리카락을 채 말리지도 못한 채 교복을 입고 일반 시내버스에 탑승했다. 연인들은 꽃다발과 케이크 조각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평온함이 외부 시선처럼 한국 사람들은 정세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걸까? 남한 사람들 모두가 전쟁의 두려움을 극복한 걸까?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지난 수십 년 간 축적되었던 테러 위협과 갈등 상황은 우리 안에 깊숙이 파고들었고, 평범한 대화 가운데서도 찰나의 순간에 불현듯 노출된다. 특히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날마다 뉴스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불안감 속에서 긴장이 극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직접 목격했다. 시민들은 집과 일터를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공습 대피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추수를 기념하는 한국의 국경일인 추석을 앞두고, 몇몇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 과일 꾸러미와 같은 선물 대신에 과자, 약품, 라디오, 손전등으로 이뤄진 이른바 "생존 가방(survival backpacks)"을 마련했다. 전쟁 가능성에 관련된 뉴스가 TV에서 나올 때마다 기차역과 공항 등지에서 사람들은 화면 앞에 모여 긴장된 표정을 지은 채 보도를 시청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남한 사람들의 방식이다. 우리는 염려된다. 핵실험을 계속 시도하고 방사능까지 유출하는 북한을 고작 국경선 하나로 경계하지만 직접적인 영향이 계속되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감을 느낀다. 현실에서 전쟁으로 불거질 수도 있는 험악한 말들이 증가하고 있어서 우리는 두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살고 싶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한반도 남쪽에는 5천만 명 넘게 거주하고 있고, 그 가운데에서도 70만 명은 어린이들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그저 한낱의 수치에 불과하지 않다.


작금의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남한 사람들은 평안과 평형을 조심스럽게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데, 이는 우리가 북한의 존재를 전 세계 사람들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고 상황을 보다 전체적으로 바라보면서, 독재와 그 정권 안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능력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과연 무엇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는 걸까? 오랜 기간 품어졌던 이런 종류의 의구심은 이젠 실제처럼 생생하게 느껴져, 마치 바로 앞에서 우리를 마주 바라보는 것 같다.


1980년 광주사태를 다룬 나의 소설 [소년이 온다]을 집필하고자 취재를 하던 도중에, 특히 계엄령에 맞서 시위를 주도한 대학생들을 탄압하려고 무장 병력을 이동시킨 남한의 군사독재정권의 당시 상황을 묘사하고자 나는 광주뿐만 아니라 권력이 시민을 학살한 사건이 있었던 지역의 관련 문서들을, 예를 들면 제2차 세계대전이나 스페인 내전, 보스니아 인종청소 사태와 미국 백인의 현지 원주민 탄압을 다룬 자료까지 살펴봤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바는 어느 특정 시공간이 아니라, 지구촌 역사에서 폭로된 보편적 인류애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으로 하여금 인간이 다른 인간을 아주 혹독하게 탄압하는지 묻고 싶었다. 또한 폭력의 심연 가운데서 인류애의 정신을 그나마 계속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도 궁금했다. 나는 야만과 존엄 사이에 크게 벌어진 틈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했다. [소년이 온다] 취재 과정에서 내가 인지했던 것들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과 학살에서 한 부류가 국적, 민족, 종교,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부류를 "인간 이하(subhuman)"로 취급했다는 핵심 쟁점이다. 하지만 그때 또 다른 깨달음도 나에게 찾아왔다. 인간이 인간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최후의 방어선은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이며 수많은 편향을 물리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에 대한 단순한 동정을 뛰어넘는,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의지와 행동이 매 순간 우리에게 요구된다는 진실을 품는 것이다.


6.25 한국전쟁은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의 대리전(a proxy war)이나 다를 바 없었다. 참혹한 3년의 기간 동안 수백만 명이 잔인하게 살해되었고, 국토 대부분이 황폐되었다. 비교적 최근에는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우리의 동맹이라 불리던 미국 군대가 한국 시민을 학살했다는 사례가 공식적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미국 군인들이 여성과 아동이 대부분이었던 일련의 남한 주민들을 마을 돌다리 부근에 몰아놓고, 양쪽에서 며칠 동안 총으로 사격해 사람들 대다수가 목숨을 잃게 된 노근리 학살이 대표적이다. 왜 이런 식이어야 했을까? 만약 그 군인들이 남한의 난민들을 "인간 이하"로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품위 있는 개체로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였더라면, 이 같은 사건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그로부터 약 7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미국에서 전해지는 뉴스에서 나오는 구절들을 꼼꼼히 듣고 있다. 마치 이런 내용인 것처럼 들린다. "우리는 몇 가지 전쟁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매일 2만 명의 남한 사람들이 사망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전쟁은 미국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다. 오직 한반도에서만 벌어진다."


급격한 정세 변화에서 대화와 평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한국 정부에게 미국 수장은 "한국인들은 한 가지밖에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건 정확한 말이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딱 한 가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평화가 아닌 다른 해결책은 무의미하며 "승리"라는 말은 공허한 슬로건에 불과하고, 추상적이며 비현실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우리는 잘 인식하고 있다. 지금 여기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은 또 다른 대리전이 한반도에서 발발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앞으로의 몇 달을 예상하려고 할 때 나는 문득 작년 겨울에 있었던 촛불이 기억났다. 일요일마다 남한의 주요 도시에서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함께 모여서 노래를 부르며 부패 정권에 대항하는 시위를 했었다. 그들은 촛불이 꽂힌 종이컵을 들고서 대통령 탄핵을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나도 나만의 촛불을 들고서 그 길거리에 있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이런 움직임을 "촛불 시위", 혹은 "촛불 데모"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의 "촛불 혁명"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촛불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수단을 통해 사회가 변화되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그 소망을 현실로 만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 우연히 생명체로 태어난, 약하고 순수하지만 존엄을 갖고 있는 수십만의 사람들이며, 날마다 카페나 찻집, 병원이나 학교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들이며, 매 순간 새롭게 펼쳐지는 미래를 위해 한번에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에게 평화가 아닌 다른 시나리오를 얘기해 줄 수 있단 말인가?


Han Kang is the author, most recently, of the novel "Human Acts"

This essay was translated by Deborah Smith from th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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