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식물의 교배
어떤 하루는 나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 불만족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속으로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라며 중얼거린다. 한참을 열을 올리다 뜨거웠던 머리가 차갑게 식으면 열심히 태웠던 생각들로 머릿속이 다시 백지상태가 된다. 상상은 특권과도 같다. 오롯이 나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백지가 되어 차가워진 머리에 마음대로 이미지를 띄워본다.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하루 중 생각대로 변형되는 상상의 씨앗이 싹트는 순간이다.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생각들을 줄지어하다가, 머리 밖으로 꺼내어 본다. 창조자가 된다는 것은 이런 기분일까. 상상에서 시작된 나의 창작은 씨앗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종교배로 만들어진 씨앗으로부터.
국립 어원 표준어 대사전에서는 '이종교배'를 '종이 다른 생물의 암수를 교배하는 일'로 정의하고 있다. 이종교배로 생명체를 탄생시키기 위해 나는 가상실험을 진행한다. 식물과 동물의 성분을 결합하기 위해 하나의 씨앗을 만든다. 씨앗을 만들어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분석하였다. 인간의 몸은 원소로 나누어 보자면 13가지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여느 다른 생물들 또한 인간과 별 차이가 없는 13가지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 13가지 원소는 산소, 탄소, 수소, 질소, 인, 칼륨, 염소, 나트륨, 마그네슘, 황, 칼륨, 철, 요오드로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물질들이다. 탄소는 가방 속의 연필, 인은 서랍 속 성냥, 염소는 화장실 한 편에 놓여있는 세제, 나트륨은 식탁 위의 소금, 칼슘은 바닷가의 조개껍데기, 요오드는 무릎이 까졌을 때 바르는 소독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물은 뇌, 심장, 폐 등 몸에서 각자의 기능을 관장하는 기관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상처를 입게 되면 생명에 치명적 이거나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식물의 경우 잎이 잘려도, 꽃이 꺾여도 자라나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동물의 살덩이를 가졌음에도 빠르게 자라나는 식물을 창조하기 위해 이종교배 씨앗을 만들게 되었다.
주변에서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성분의 대체 성분을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주로 건성 재료를 위조로 찾아보았는데 그 결과 모인 물질은 콩(칼륨, 마그네슘), 계란 껍데기(칼륨), 비료(질소), 카레가루(황), 다시마(요오드), 흙(철), 소금(나트륨), 성냥(인, 황), 연필(탄소)였다. 이 물질들을 믹서기에 넣고 갈아 가루 형태로 만들었다. 만들어진 분말을 자궁은 대체하는 젤라틴으로 만들어진 캡슐 안에 넣는다. 그리고 각자의 기능을 가진 장기가 없어도 자라나는 존재인 식물의 씨앗을 분말과 함께 넣어 하나의 캡슐로 만든다.
이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캡슐은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캡슐을 땅에 옮겨 심는다면 씨앗은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을 먹고 자라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이 씨앗이 뿌리를 내려 자라게 된다면'이라는 전제를 시작으로 나의 그림은 시작된다.
캡슐 형태로 만들어진 씨앗을 원하는 곳에 옮겨 심는다. 화분에서는 씨앗이 싹을 틔울 수도, 성장하지 못한 채 말라비틀어질 수도 있지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면 앞으로 어떤 열매를 맺게 될지 기대하고 상상하며, 불완전 변태를 거치는 이 생명체를 관찰할 수 있다. 마치 인간이 수정란을 수정하려 하여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자궁에 어렵게 자리를 잡고 태어난 아이가 어떤 아이로 성장할지 모르는 것처럼. 끝없이 자라나는 생명의 결실이 어떤 모습으로 끝맺을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과 같은 13가지 원소를 공급받고 자라나는 씨앗은 다양한 토질과 환경에서 자라남으로써 우리 인간과 같이 환경에 적응해 나가며 변이를 거듭하며 자라난다. 나는 이 씨앗에서 자라나게 될 생명체를 상상하며 드로잉으로 이미지를 기록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