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단 집밥메뉴 3탄: 집밥의 탈을 쓴 인스턴트 식품
집밥의 자격요건은 무엇일까? 신선한 야채, 고기, 해산물 등 가공되지 않은 천연재료를 사다가 조미료 없이 양념, 소스까지 모두 집에서 정성스럽게 만들어야만 집밥일까? 이게 집밥의 기준이라면 내가 차리는 밥은 집밥 자격미달이다. 그렇게 집밥을 차리자면 난 온종일 부엌에서 밥만 하다가 늙어죽을 것 같다.
나는 코인육수, 참치액, 다양한 시판 소스들, 가끔 다시다도 사용하고 밀키트와 인스턴트 식품들도 애용한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지만 맥시멀리스트의 대표주자인 나답게 우리집 냉장고 냉동칸은 돈까스, 치킨너겟, 만두, 함박스테이크, 새우튀김, 우동면, 어묵, 떡국떡, 가래떡, 식빵 등 각종 냉동식품들과 조리 후 소분해서 냉동해둔 불고기, 카레 등으로 테트리스 하듯 꽉꽉 차있다. 그런 것들로 차린 밥상이 어째서 집밥이냐 물으신다면 인스턴트 식품이지만 집에서 정성껏 조리했으니까, 그리고 채소와 과일도 곁들여먹으니까 그래도 배달음식이나 외식보다는 덜 자극적이고 영양면에서도 더 낫지 않을까? 누가 따져묻는 것도 아닌데 이런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인스턴트 식품을 먹이는게 좀 찔려서 그렇다. 그런데 요리 프로그램보니까 셰프들도 시판 소스랑 조미료 많이 쓰던걸요? 흠흠...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인스턴트 음식으로 차리는 집밥이다.
나도 어릴 때, 엄마가 햄이나 소세지 반찬을 해주면 엄청 좋아했는데 우리 아이들에게도 인기만점이다. 가공육이 몸에 안좋다는 건 알지만 아이들 있는 집에서 햄, 소세지를 아예 안먹고 살기는 어렵다. 그래서 조리할 때, 끓는 물에 한번 데쳐 기름기와 첨가물을 조금이나마 제거하는 것으로 나름의 정성을 더해본다.
첫번째, 스팸무스비는 스팸을 한 입 크기로 잘라서 끓는 물에 데쳐서 후라이팬에 구워놓고, 김은 길게 띠 모양으로 잘라둔다. 밥 위에 구운 스팸을 올리고 김으로 감싸주면 스팸주먹밥 완성!
두번째, 후랑크소세지에 칼집을 내서 끓는 물에 한번 데친 후, 후라이팬에 구워서 카레라이스 위에 얹어주면 소세지카레덮밥이 된다.
냉동 함박스테이크는 전자렌지에 데운 뒤, 후라이팬에 앞뒤로 살짝 구워주면 표면이 바삭해져 식감이 더 좋아진다. 같이 들어있는 소스는 봉지째 뜨거운 물에 데워 먹어도 되지만 조금 성의를 보태서 양파, 버섯을 볶은 것에 소스를 붓고 끓여서 함박스테이크에 뿌려주었다. (겨울이는 소스 많이! 여름이는 소스 없이! 남북통일보다 힘든 자매님들 입맛통일)
밥이랑 함박스테이크만 덜렁 주긴 좀 그러니까 냉장고 야채칸을 쓱 스캔해본다. 양파랑 파프리카는 잘라서 살짝 소금간 해서 볶아서, 브로콜리는 한 입 크기로 잘라서 전자렌지에 쪄서 같이 놔주고, 계란후라이 하나씩 해서 밥 위에 얹어주면 대기업과 엄마의 콜라보 함박스테이크 정식 완성! 디저트로 먹을 과일들도 예쁘게 담아주면 인스턴트지만 알록달록 예쁜 눈으로도 먹는 집밥같은 든든한 한끼가 된다. 냉장고 야채칸 상황을 봐서 양상추샐러드를 놓기도 하고 겨울이의 최애음식 크림스프를 곁들여주기도 한다.
햄과 맛과 향이 비슷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훈제오리!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데워지는 동안 쌈무랑 집에 있는 야채들 꺼내서 잘라서 담고 밥 푸면 15분만에 한 끼를 뚝딱 차릴 수 있다.
훈제오리를 에어프라이어에 데울 때는 오븐형 에어프라이어의 경우, 바스켓에 훈제오리를 펼쳐담고 기름받이 트레이는 알루미늄 호일로 감싸서 데우면 기름이 아래로 빠져 한결 바삭하고 담백하게 먹을 수 있다. 트레이에 떨어진 기름은 식으면 하얗게 굳는데 호일을 벗겨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면 뒷처리도 간편하다. (바스켓형 에어프라이어는 바스켓 위에 기름받이 트레이를 놓고 그 위에 기름망을 얹은 뒤 훈제오리를 펼쳐담으면 된다.)
냉동 우동면을 끓는 물에 넣고 면발이 풀어질 때까지 삶는다. 체에 받쳐 물기를 빼고 냄비에 물 500밀리 정도 붓고 우동간장 2~3큰술 (맛을 보면서 가감하기) 넣고 끓으면 우동면을 넣고 파를 썰어넣고 불을 끈다. 냉장고에 감자, 당근 같은 자투리 야채가 있는 날은 우동면 넣기 전에 야채 썬 걸 넣고 같이 끓이기도 하고 야채가 없을 땐 냉동실에서 어묵을 꺼내 끓는 물에 데쳐서 우동 위에 얹어서 낸다. 만두를 굽거나, 냉동 돈까스, 새우튀김을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우동과 같이 내면 엄마표 우동정식! 냉동실에 카레 얼려둔게 있으면 꺼내서 전자렌지에 해동하고 냄비에 부어 끓이다가 우동면 끓여둔걸 넣으면 내가 점심으로 간단하게 자주 먹는 카레우동이 된다.
집밥메뉴로도 외식메뉴로도 자주 먹는 카레. 아이들도 잘 먹고 야채를 많이 먹일 수 있어 고마운 메뉴다. 우리 식구들은 카레에 고기를 넣는 것보다 야채만 넣은 걸 좋아해서 카레라이스와 에어프라이어에 데운 돈까스, 새우튀김 등과 같이 먹는다. 돈까스랑 먹으면 카츠카레, 새우튀김이랑 먹으면 에비카레, 버터에 구운 닭다리살이랑 먹으면 버터치킨카레, 소세지랑 먹으면 소세지 카레. 메뉴도 다양한 엄마표 식당! 두부튀김을 곁들여도 별미다. 두부튀김은 두부를 깍둑 썰어 소금 좀 뿌려두었다가 위생봉투에 전분 넣고 두부를 넣고 흔들어준 뒤, 후라이팬에 기름 자작하게 부어 튀겨주면 된다. 미소장국을 곁들이면 더 식당같겠지? 냄비에 물 500밀리 붓고 코인육수 한알넣고 끓으면 두부나 파 좀 썰어넣고 우동간장(쯔유) 한 큰술, 장국된장 (나는 국산콩으로 만든 한살림 장국된장을 이용) 한 큰술 풀어주면 끝. 5분 컷이라 아침에 먹기도 좋다.
20대 초중반 영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는데 처음 슈퍼마켓에 갔을 때 냉동식품 코너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깜짝 놀랐다. Iceland 라는 냉동식품을 파는 마트 체인도 따로 있었다. 영국의 야채, 과일, 고기같은 식재료는 물가 대비 저렴한 편이었지만 인건비가 비싼 나라라 외식비가 비싸서 그렇다고 했다. 하긴 아무리 식재료가 저렴해도 집밥을 해먹는데는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하니 매일 요리를 하는게 힘든건 영국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이제는 한국도 외식물가가 점점 비싸지고 배달음식도 배달료가 부담스러워지다보니 인스턴트 식품, 냉동식품이 엄청 다양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인스턴트 집밥을 맛있게 먹어준다는 것. 겨울이는 늘 엄마 요리가 최고야! 라며 날 칭찬해주는데 그거 냉동식품이라고 하면 엄마가 냉동식품을 참 맛있게 데워준다고 또 칭찬을 해준다. 머쓱하지만 기분은 좋다. 엄마가 요리왕은 아니어도 조리왕 정도는 되어볼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