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땐, 이런 책] 걷기의 역사
걷습니다.
무조건 걷습니다.
운전을 할 줄 몰라 걷고,
자전거도 탈 줄 몰라 걷습니다.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정말, 운전 못 해?”
네, 정말 못합니다.
그래서 걷는다니까요.
걸으니까 생각이 많이 나기도, 생각이 정리가 되기도 합니다.
걷다가, 걷다가 이 책에서 제목을 빌려서 이런 글을 쓰기도 했죠.
https://brunch.co.kr/@youngmicholaf5/7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내게 자꾸 묻네요.
“정말, 운전 못 해?”
“거길 어떻게 걸어가?”
“걸어간다고? 지금?”
그래서 또 읽었습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381
(12)
아무것도 안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뭔가를 하는 척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 것이다. 걷기는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 즉 호흡이나 심장 박동에 가장 가까운 의도적 행위다. 걷기는 노동과 무위 사이, 존재와 행위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걷기는 사유와 경험과 도착만을 생산하는 육체 노동이다.
~
이상적인 걷기란 몸과 마음과 세상이 조화를 이룬 상태이다. 애써 서대화에 성공한 세 사람처럼, 불현듯 화음을 이루는 세 음표처럼 삼위일체가 구현된 상태다. 걷기를 통해서 우리는 육체와 세상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육체와 세상 속에 머물 수 있다. 걷기를 통해서 우리는 생각에 완전히 빠지지 않으면서 생각할 수 있다.
(13)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는 움직임은 사유 속을 지나는 움직임을 반향하거나 자극한다. 내적 이동과 외적 이동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음은 일종의 풍경이며 실제로 걷는 것은 마음 속을 거니는 한 가지 방법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생각이란 원래부터 거기 있던 풍경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유란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보자면 걷기의 역사는 사유의 역사가 구체화된것이다. 마음의 움직임은 자취를 따를 수 없지만, 두 발의 움직임은 쫓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한편 걷는 것은 생각하는 것인 동시에 바라보는 것이다. 모든 산책은 한가로운 관광이다.
~
사유를 가능케 하려면 육체의 움직임과 눈앞의 볼거리가 필요하다.
(23-24)
자기를 어딘가에 바치면 그곳은 그만큼 돌려준다. 당신이 어떤 장소를 많이 알면 알수록 그곳에서는 더 많은 기억과 연상이 자라나며, 그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과 연상은 당신이 그곳으로 돌아올 때 당신을 기다린다. 또한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사유,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다 준다. 세상을 탐험하는 것은 마음을 탐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걷기는 세상을 여행하는 방법이자 마음을 여행하는 방법이다.
(34)
루소 曰;
혼자서 걸으며 여행하던 때만큼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아 있음을 강하게 느끼며 그토록 강렬한 경험을 한 적은한 번도 없었다. 그때만큼 나 자신이 된 적이 없었다. 걷는 것에는 생각을 자극하고 생명력을 불어 넣는 뭔가가 있다. 한 곳에 머물러 있을 때는 생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정신을 움직이게 하려면 육체가 움직여야 했다. 시골의경관, 계속되는 기분 좋은 전망, 바깥 공기, 왕성한 식욕, 산책을 통해서 얻게 되는 건강, 여관의 편안한 분위기 내가 남에게 얹혀 살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모든 것이 없는 상태, 즉 지금 나의 상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든 것이 없는 상태. 이것들이나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 주며 내 사고를 좀 더 대담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나는 공포나 억압을 느끼지않고 여러 가지 생각들을 조합하고 선택하여 마음대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37)
이렇듯 구조화되지 않은 사유, 연상적 사유는 걷기와 가장 잘 설명된다. 이는 걷기가 분석적 행위가 아니라 즉흥적 행위임을 시사한다.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 설명.
(42)
키에르케고르 曰;
너무나 이상하게도, 나의 상상력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홀로 앉아 있을 때 가장 잘 발휘된다. 이때 상상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면 소란과 소음을 참고 이겨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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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우연하고 사소한 것들이다.
(45)
걸음으로써 인간의 사유가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의 토대 위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걷기의 의미는 대부분 철학이 아닌 다른 영역들(시, 소설, 편지, 일기, 여행기, 일인칭 에세이)에서 논의된다. 마찬가지로 기인은 자기의 소외를 조율하는 수단으로서의 걷기에 주목하는데, 이러한 유형의 소외는 당시 지성사에서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들은주변 사회에 빠져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종교적인 수도자의 전통에 따라 사회에서 물러나지도 않았다. <<코세어>>사건 이후 키에르케고르의 말년을 제외하면 그들은 세상 속에 있었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다. 고독한 산책자는 여정이 아무리 짧아도 정착하지 않고 장소들 사이에 있고, 욕망과 결핍에 힘입어 행동하고, 노동자나 거주자나 집단의 일원이 가지는 유대감 대신에 여행자의 초연함을 갖고 있다.
(52)
걷기는 육체가 자기를 대지와 비교하는 방법이다.
(54)
우리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은 직립 보행이 인간성의 기원을 보여 주는 최초의 표시라는 점이다.
(83)
도착 없는 여정은 여정 없는 도착만큼이나 불완전할 것이다. 목적지까지걸어간다는 것은 정당한 대가를 얻는다는 뜻, 여행 중에 닥치는 고난을 감내하고 변화를 겪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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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먼 곳을 향해 고초를 겪으며 길을 가는 사람의 이미지는 인간의 의미를 보여 주는 가장 매력적이고 보편적인이미지다. 여기서 그려지는 개인은 광활한 세계의 미미하고 고독한 존재로서 체력과 의지력에 의존 할뿐이다.
(191)
역사가 트레벨리언 <걷기>중;
나에게는 의사가 둘 있다.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말이다. 몸과 마음이 고장날 때 나는 이 의사들을 찾아가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다시 건강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머릿속의 생각들이 나와 함께 날뛴다. 피로 물든 폭도들이 자기가 빼앗은 배의 갑판 위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것 같다. 그러나 저녁이면 나는 그런 생각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193)
걷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는 중국 시인 이백의 뒤를 따라 여생의 고생을 겪어야 하고 수많은 갈림길을 지나야 한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광야를 지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보편적인 것으로 이제는 진부할 정도가 되었지만, 이 개념에 생물학적 진실이 없다면 지금까지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 어떤 혁명 영웅도 진정한 도정에 오르기전까지는 아무 일도 해낼 수 없다.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의 유목단계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마오쩌둥에게 대장정은 무엇을 의미했으며, 모세에게 출애굽은 무엇을의미했는지 주목하자. 운동은 우울증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약이다. 로버트버턴<<우울증의 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