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생활 일반]도서관 활동 3
나무(樹[shù]) Vs. 책(書[shū])
발음이 같다.
한 그루의 나무 Vs. 한 권의 책
의미도 같았다.
내가 만난 도서관이 그러했다.
가오슝시립도서관의 건축 테마는 “한 그루의 나무”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도서관 속의 나무, 나무 속의 도서관(「樹中有館,館中有樹的綠建築文化地標」)”을 표방했으며, 실제 그곳에서는 본관 내부를 가로지르며 자라는 한그루의 나무가 있다.
가오슝시에서는 “독서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공간, 도서가 풍부한 도서관”이 시급하다고 판단, 2008년부터 일 년에 한 개의 도서관 증축을 목표로 삼았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6개의 신관을 세웠고,현재 카오슝시에는 59개의 도서관이 있다. 2014년에 문을 연 카오슝시립도서관 본관은 증축 전, “백만장서 모아 대대손손 지식과 사랑을 전하자 「募新書百萬.傳愛智代代」)”는모토로 카오슝 시민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시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았으며, 기업들도 도서관 증축에 도움을 주었다. 많은 시민의 참여로 세워진 카오슝시립도서관은 카오슝시의 자랑이다.
가오슝시립도서관 http://www.ksml.edu.tw/
한 달 전, 도서관 직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부산시에서 책을 또 기증해 주는데 이번에는 시장님을 포함한 부산시정부 공무원들이 참석해 도서관에서 정식으로 기증식을 연다는 것이었다. 내게 그 행사의 사회를 맡아달라고 했다. 망설임 끝에 이렇게 답변해 주었다.
도서관 행사에 저를 초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사회를 맡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지만저는 한국어, 중국어 원고가 미리 준비되어야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즉시 그 자리에서 통역을 하는 일은 저에게는 무리입니다. 부디 저의 중국어 능력을 감안하셔서 다시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도서관 직원에게서 답장이 왔다.
중국어 담당 사회는 도서관 직원 한 분이 맡고, 한국어 진행은 선생님이 맡으면 됩니다. 물론 원고도 미리 준비할 것이며, 선생님이 그걸 보고 미리 번역해서 한국어 부분을 준비하면 될 것 같습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답장을 읽고 용기를 내었고, 결국, 하겠다고 했다.
행사 준비를 위해 두 차례 도서관에 가서 각각 세 시간 가량의 일정을 소화했다. 도서관 전반 이해를 위해 지하부터 지상 8층, 옥상까지 투어를 했다. 원래는 내가 도서관 소개 및 안내를 맡기로 했는데, 상세한 내용을 부산시 직원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도서관 직원들의 요구와 계획은 도무지 따라주지 않은 나의 중국어 실력으로 인해, 결국 전문 통역사를 고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나는 카오슝시립도서관의 건축 의도, 설계 방향 및 목표와 같은 구체적인내용을 이해하는 시간을 자체적으로 갖는 데에 만족하기로 했다.
대략적인 부산시 정부 관계자들의 일정표를 확인했으며, 진행자의 원고 초고를 받아 검토했다. 참석자가 바뀌고, 기념품이 추가되어 행사 당일 새벽 1시까지 진행 원고가 바뀌었다.
행사 리허설에는 도서관장님이 직접 오셔서 동선을 일일이 점검하셨다. 그리고는 내게 한국인들을 대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서, 물건을 받을 때는 두 손으로 받고 (이 말에 관장님은 “그건 당연하지”라고했다. 우리 학생들은 자주 내게 한 손으로 물건을 건네서 한 말이었는데…), 인사를 할 때에는 목례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함께 사회를 보는직원에게도 진행 시작과 끝에는 꼭 목례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직원들은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를 비롯해 참석자 명단의 적힌 성함들을 한국어식으로 읽는 연습을 했다.
<조 선생의 한국 책 교실>에이어 직원들을 대상으로 작은 <조 선생의 한국어-문화교실>을 연 기분이었다. 전문직 종사 대만인들(도서관 직원들) 사이에서 한국어와 한국인을 대하는 매너에 대해 알려주는 일은, 내가 그들 사이에서 중국어를 배우며(이번 일은 중국어 공부에 제격이었다! 기회가 되면 “생활하며, 일하며 중국어 배우기”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대만인들의 업무 성향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만큼이나 중요했기에 특별한 기회가 되었고, 중국어 사용으로 가끔씩 움츠러든 어깨가 조금은 펴진 기분이었다. 게다가 학교 밖 활동에 참여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내게 도서관은 또 다른 활동 영역으로서, 지역 사회 참여라는 관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부산시와 가오슝시정부는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자매 도시이며, 카오슝시립도서관은 부산시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2014년 11월 본관 개막식 당시, 부산시와 부산 금정 도서관측에서 도서를 기증해 주셨으며, 부산 금정도서관장님께서 친히 개막식과 세미나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부산시 측의 참여는 본 도서관이 내실을 기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부산시와 부산 금정도서관은 지속적으로 5천 여권의 새 서적을 기증해 주셨습니다. 기증해 주신 도서는 내용이 다양하고 풍부했으며, 그 중 어린이 그림책이 가장 많았습니다. 증정해 주신 도서는 본 도서관을 애용하는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산시가 얼마나 창의적이고 활력과 문화역량이 넘치는 곳인지를 알 수 있게끔 해 주었습니다. 이번에 친히 카오슝시를 방문하셔서 부산시정부와 금정도서관측에서는 본 도서관에 2백 권의 도서를 또 한 번 기증해 주셨습니다. 귀한독서 자료를 지원해 주신 부산시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사회를 진행할 때 준비한 원고를 한국어로 바꿔 읽은 내용이다.
부산시와 부산 금정도서관이 책을 기증해 준 덕분에 가오슝에서 한국 책을 볼 수 있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앞으로 부산시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해외도서관과의 교류를 활성화해서 도서 기증 교류 및 문화 교류가 확대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기증식에서 서병수 부산 시장님의 축사가 있었는데, 시장님은 부산에 최대 도서관을 건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긴장으로 목이 바짝 타 물병을 찾으려던 나는, 동작을 멈추고 시장님의 축사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말만 들어도 설레는 일이었다. 거대한 도서관,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를 키우듯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카오슝시립도서관은 건축물을 세우기 전, 건축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카오슝 시민의 활동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했다. 날씨가 더운 탓도 있었겠지만, 가오슝 시민들은 휴식 시간에 나무 그늘을 찾는다는 것을 자주 목격한 건축가는 나무와 책, 그리고 도서관의 연관성을 찾아 “한 그루의 나무” 같은 도서관을 짓게 되었다고 했다.
한 그루 나무와 한 사람을 키우는 도서관
그 나무가, 그 사람이 너이기를.
많은 아이들이 넓고 큰 도서관에서 마음껏 책과 친해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해, 도서관이 아이들이 찾아가고 싶어하는 ‘삶의 나무 그늘’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부디 책에 대한 작은 호기심을 품은 채 살아갔으면 좋겠다. 삶의 위태로운 순간에 자신들을 도와줄 수 있는 비법이 책에 있다는 것 또한, 알아갔으면 좋겠다.
공교롭게도(?), 최근, 비틀거리고, 휘청거리고, 거칠어진 십대 아이들의 기사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독서만이, 도서관이, 비틀거리는그들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부디 그들의 성장기에서 알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