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생활 일반] 도서관 활동 1
사람들이 종종 내게 묻는다.
“여기서 제일 힘든 게 뭔가요?”
난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배달”
1인1대 오토바이로 사는 대만에서는 배달 문화가 필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전화 한 통이나 버튼 한두 번으로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던 “배달의 왕국” 출신에게는, 배달없는 쇼핑은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남기곤 한다.
배달 없는 생활이 내게 육체적 고통을 준다면,
“할 말 똑바로 못 하고 사는 생활”은 내게 정신적 고통을 준다.
멀쩡한 성인이
말을 못해서
핸드폰이 안 되거나
심한 감기에 시달리거나
신용카드 문제로 경고장이 날라오거나
기타 등등 문제가 있을 때
나를 도와 줄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고
따지고 싶은 일이 벌어졌을 때,
내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아, 됐어요, 괜찮아요”라며
되지도, 괜찮지도 않은 상황을
짧은 말 몇 마디로 넘겨야 할 때,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그렇게 바닥에서 헤매며 자존감 회복을 위해 “기초 중국어 회화”를 연습하고 있을 때, 연락을 받았다.
카오슝시립도서관(高雄市立圖書館) 사서였다.
한국 동화책을 엄청나게 많이 선물 받았는데,
책이 참 좋은데,
아이들이 읽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날더러
대만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한국에 대해 소개도 하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내가 중국어를 못하는거, 아시나요?”
내 중국어 실력으로 말하자면, 편의점에서 1+1 행사하는 물건을 확인하고 사는 정도이다. 동화책 내용을 중국어로 번역해서 알려줄 수 있는 수준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해야 했다. 내 말을 들은 사서는, 중국어를 잘하지 못해도 좋으니,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와서 했으면 좋겠고, 중국어 부분은 대만 친구가 도와주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도서관, 어린이, 동화책, 이야기, 한국어, 중국어
내가 관심을 가질 만한 키워드를 나열했기에, 학교 수업을 빼고는 딱히 할 만한 일도 없었기에, 또 나를 찾는 사람도 별로 없었기에, 조금 망설이기도 했지만 결국엔 기꺼이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진짜
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아이들이 엄청 많이 와서도,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한국에 부쩍 관심을 갖게 돼서도 아닌, 그저 내가 ‘거주자’로서 혹은 ‘공동체일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난, 이곳의 공동체 일원으로서 제 몫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일 년 동안 네 번 헌혈을 했다. 관련 포스팅: 알고보면 쓸데있는 귀찮은 동네사람)
작년 6월에 처음 이 활동을 하게 됐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 활동은 지속되고 있으며, 한국 고등학생, 한국어가 유창한 대만 대학생들이 자원봉사로 함께 하는 행사가 되었다. 물론 나도 첫 회를 제외하고는 봉사활동 차원에서 참여하고 있다. 내가 카오슝 주민으로서 썩 쓸만한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만으로, 이 활동은 내게 큰 의의가 있었다. 바닥을 친 자존감이 조금은 머리를 든 느낌이랄까?
무엇보다도, 한국의 좋은 그림책들이 대만 시립 도서관에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한데, 그 많은 책들 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조금씩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는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첫 회 활동 관련 포스터 - 카오슝 시립 도서관 제작
한국 어린이 도서 진열대 앞
진열된 도서 일부
위의 도서들은 부산 금정 도서관에서 기증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