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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Mar 07. 2018

왜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가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외국 친구들은 종종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


 한국에서는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는 일이 실제로 많아?
 한국 시어머니는 다 그렇게 못됐니?


대만에 와서 처음 본 한국 드라마는 <사랑하는 은동아>였다. 이는 <힘쎈 여자 도봉순>과 <품위 있는 그녀>를 연이어 히트시킨 백미경 작가의 작품이다. 주진모의 대사, “오늘밤 남편이랑 자지 마요.”를 예능에 출연한 이들이 언급하기도 했다. 이 작품을 한국에서는 볼 기회가 없었는데, 대만에서 전편을 보게 되었다. 대만 성우가 더빙을 하고, 중국어 자막이 나오는데도 그 드라마의 스토리는 너무나도 이해가 잘 됐다. 교통사고로 인한 여주인공의 기억상실증, 그리고 삼각관계로 인한 등장인물의 분노와 갈등, 무엇보다도 첫사랑을 못 잊는 주진모의 절절하고 달콤한 대사는 중국어를 모르는 내 눈과 귀에도 쏙쏙 박혔다.  


대만에서의 한국 드라마의 열풍은 실로 놀라웠다.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보면, tvN 전문 채널도 있고, 한국 드라마 위주로 보여 주는 채널도 있다. 리모콘을 누르다가 나도 모르게 익숙한 얼굴이 나오면 채널을 고정한다. 결국, <닥터 이방인>, <내 딸 금사월>, <왔다, 장보리>, 그리고 제목도 낯선 아침 드라마와 일일 드라마를 섭렵하기에 이르렀다. 대만 성우의 정확한 발음, 큼지막한 중국어 자막, 한국인이기에 감으로 눈치채는 스토리 구성, 이 세 박자가 딱딱 맞아떨어지니 중국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단,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과 <내 딸 금사월>의 사월이 친구 목소리가 동일하게 들리다 보니, <왔다, 장보리>를 보고 있는 건지, <내 딸 금사월>을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기는 했다. 하지만 큰 문젯거리는 아니었다. 그저 신기했다. 대만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며 중국어를 배우게 될 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


<왔다, 장보리>는 대만에서 <화려한 대결>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내가 모임에 등장하면, 사람들의 주제는 갑자기 ‘한국 드라마(대만에서는 한국 드라마를 韓劇[한쥐]라고 한다)’로 바뀐다. 1990년대 후반에 대만에서 방영한 이영애와 이경영 주연의 <불꽃>을 떠올리며 박수를 치는 중년 여성들도 있다. 그들은 초창기 한국 드라마의 열풍을 함께 시작한 열혈 시청자들이다. 대만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는 바로 소지섭이다. 소지섭이 출연한 <주군의 태양>은 학부모 모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 소재가 되기도 했다. 소지섭이 얼른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게 전하는 이들이 있다.



자주 오가는 일상 공간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본다.  


카오슝 지하철 안에서 만난 공유


드라마 도깨비의 인기로 공유는 대만에서 휴대폰 광고를 찍어 지하철에는 공유의 사진을 볼 수 있다. 한 번은 동네 마트에 갔는데, 이동욱 사진이 붙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도깨비를 패러디하는 사진과 광고도 속속 등장했다.  


<대만 유명 마트 [全聯福利中心] DM지 표지 모델이 된 이동욱>


대만인들은 한국 드라마 열혈 시청자들은 내게 수시로 볼 만한 한국 드라마를 소개해 달라고 한다.

그 열혈 팬들은 학생도, 동료도, 동네 상가 직원들도 있다.  


그들은 왜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가?


1996년 피리위성(霹靂衛星)방송국이 한국 드라마를 수입하여 방영했다. 당시에도 시청률은 낮았으나 지역 방송국이기 때문에 중앙 방송국보다 시청률에 대한 부담감이 덜 했다는 점, 한국드라마의 구매가가 일본 보다 낮았다는 점 등으로 드라마 방영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것이 대만에서의 한류가 발생하게 된 배경이다. 방송을 보는 주요 시청자가 지역 주민으로 방송용어도 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민남어(閩南語)로 송출되었고, 한국 드라마 역시 민남어로 더빙해서 방송했다. 피리위성을 통한 방영을 계기로 한국 드라마의 주요 시청자가 된 대만의 남부 지역에 살고 있는 저소득층과 부녀층은 한국 사회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이고 동시대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이는 더 많은 한국 드라마가 대만에 소개되어 인기를 얻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 동문군(2012), “대만 한류의 발전과 번역 현황 – 한국 드라마를 중심으로 –”, 돈암어문학 제 25집, 75-100.


 대만 남부 지역 시청자들로부터 받은 관심이 대만 전역에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얻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실제로 현재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90년대 중후반 태생이라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이들이 가정에서 부모님과 함께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자랐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다. 실제로 대만 학생들은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에 꾸준히 노출되어 왔으며, 한국 드라마 시청은 한국어 학습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학생들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었다.  


<1> 저는 중학교 때 한국드라마를 처음 봤습니다. 그 때 드라마에서 본 한국 음식 문화나 들은 한국노래는 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문화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2> 난 이 년 전에 한국의 아이돌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됐다. 매일 열심히 드라마를 보면서 공부했다.  

<3> 나는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자주 봐서 경어와 반말을 가끔 잘 못한다.  

<4> 제가 본 최초의 외국인은 한국인이었습니다. 화면 속의 한국인들은 정말 멋있었어요. 게다가 한국어는 얼마나 듣기 좋던지요. 저는 그렇게 영상을 보며 중학교 때부터 혼자 한국어를 공부했습니다.  

<5> 저는 한국 문화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뽀로로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봤습니다

(* 학생들의 글은 이미 공개된 자료이거나 학생들에게 익명으로 게재해도 좋다는 허락 하에 사용하는 자료임을 밝힙니다.)


십대에 들어서며 타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학생들도 있었지만,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드라마를 보면서 자란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드라마 시청이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한국어 학습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 드라마는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져 가족 중심적인 대만인들에게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해 주고, 내용이 다양하며(사랑 이야기 중심이 아닌, <시그널>, <터널> 류의 추적 드라마도 대만에서 인기가 많았다), 편집에서 기술적인 능력이 돋보인다고 칭찬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의 멋진 외모가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80년대 ‘사랑과 야망’, 90년대의 ‘엄마의 바다’를 비롯해 주말 드라마는 빠짐없이 봐 왔다. 주말 드라마의 기억으로 일주일을 지내다 보니, 드라마 등장인물들이 가족이나 친구 같기도 했다. 오랜 기간 성장 과정에서 만났던 드라마는 더 실제적로 다가왔다. ‘전원일기’의 회장님 생가는 시골에 가면 정말 그렇게 있을 것만 같았고,  다급한 일로 112에 전화하면 ‘수사반장’ 팀원들은 언제라도 부리나케 우리집에 출동해 줄 것만 같다는 ‘그럴듯한 착각’을 했다.


오직 개인의 취향으로 그 동안 드라마를 많이 봐 왔는데, 드라마와 연기자에 대한 지식이 이국땅에서 능력으로 발휘될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여기서 드라마를 활용해 한국어를 가르치는 조 선생도 되고, 고객의 요구사항을 듣고 ‘맞춤 드라마 정보 제공자’의 역할도 맡는다. 집에 오면 ‘누워서 드라마만 보던 사람’이 새로운 ‘뒹구는 재주’를 발견했다고나 할까?  


한국 드라마는

십대 아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 주고,

(우리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보는 드라마가 항상 한 편 이상 있었다. 우리 모자는 드라마를 통해 강한 연대의식을 키워왔다.)

외국 생활의 고단함을 위로해 주는 오랜 친구가 되기도 하고,

낯선 사람들과 관계의 끈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고,

그 상대와 조금 더 가까워지게, 그들이 나를 찾게 만드는 비장의 카드가 된다.


다시 그들의 질문으로 돌아가 봐야겠다.  


 한국에서는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는 일이 실제로 많아?
한국 시어머니는 다 그렇게 못됐니?


출생의 비밀은 한국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니 그렇다고 말해 주면 되는데,

시어머니 문제는 답변해 주기가 간단하지 않았다.  

대만에도 시월드는 존재한다.

주말마다 시댁에 불려가거나 일정을 조정해 시댁 식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야 하는 대만댁, 그녀들을 보며, 이 지구상의 모든 “며느라기” (웹툰 [며느라기] 민사린의 신혼 일기에서 따온 말)의 수고로움에 왠지 숙연해진다.

                                                                                                     

관계의 고달픔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자신의 처지를 위로해 줄 누군가를 찾고자, 그 “며느라기”들과 시어머니들이 한국 드라마에 빠지기는 것인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이번 주말에도 착한 대만댁 “며느라기” 친구를 위해 그녀를 즐겁게 해 줄 드라마를 찾아봐야겠다.

지금 그녀들에게 필요한 건

대답 대신 위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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