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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Jun 17. 2018

강다니엘의 매력을 솔직하게 말했더니,

[살아 보니, 대만]솔직한 나, 솔직한 대만인


참 매력적이다. 

연예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강다니엘의 매력은 차고 넘친다. 

귀여운 강아지의 얼굴로 큰 오빠 목소리를 내는 그의 따뜻함에, 그의 미소에, 나는 오늘도 위로를 받는다. 


<프로듀스 101>을 시청하지 않아 그를 잘 몰랐는데, 어느 날 모 토크쇼에서 그가 자신의 성장과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참 잘 자란 청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에게는 악바리 근성과 얼어붙은 상대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따뜻함이 교묘히 공존했다. 그런 제 모습을 대중에게 적절히 보일 줄 아는 그의 능력이 놀라웠다. 또한 그의 성장 과정을 듣자니, IMF 이후의 한국 경제 상황,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등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출처: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80322005102591


이번 학기 <한국 유행 문화> 수업에서 “강다니엘로 본 한국 사회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에 관한 수많은 방송과 신문 기사를 찾았고, 소장하고픈 사진도 수없이 봤다. 자료 조사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1) 강의건에서 강다니엘로 개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디오스타, 해피투게터 편).(부산 사람들은 ‘의’ 발음을 정확히 하지 못해 ‘민주주의의 의의’ 발음을 어려워한다는 사실도 학생들에게 알려 주었다)

(2) 부담스러운 학비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봐 대학에 입학한 과정(라디오 스타 편)

(3) 일등부터 백등까지 줄 세우기를 서슴지 않았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라 <프로듀스 101>이 개인적으로는 불편하게 느껴졌다고도 했고, 강다니엘 그 또한 해당 프로그램의 시스템이 인도의 카스트 제도 같아서 “이게 뭐야?”라고 했다는, 그러나 막상 일등이 되니 기분이 좋았다는 솔직한 답변(냉장고를 부탁해 편)

(4)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강다니엘은 ‘국민 센터’라는 이름을 얻었고, 워너원은 ‘국민 내새끼’가 됐다(주간 아이돌 편). 국민 프로듀서(프로듀스 101 편)라는 명칭에서 보듯 ‘국민’이라는 말이 한국인에게 갖는 힘의 위력

(5) 빡빡한 일정으로 36시간 동안 잠을 못 잤다는 이야기(이불 밖은 위험해 편)

(6) 다양한 그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찢청(찢어진 청바지), 사녹(사전녹화), 미자(미성년자) 등 요즘 십대 이십대들이 자주 쓰는 줄임말(학생들은 자주 내게 한국 사람들이 줄임말을 너무 많이 쓴다고 했고, 나는 그 말에 크게 동의하지 않았으나, 아이돌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연달아 보게 되니 그들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수긍하게 되었다)



<활활>의 강다니엘 ‘직캠’ 을 함께 보며, 그 가사의 일부를 설명하기도 했다. 가사의 일부와 함께 ‘독한 근성’을 요구하는 한국의 경쟁적인 분위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인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강한 비트 때문인지 익숙한 가사의 메시지 때문인지 기운이 난다고도 말해줬다. 특히 객지 생활에서 기운이 빠질 때 이 노래를 들으면 힘이 난다고도 했다. 그 가사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유튜브 화면 캡쳐:https://www.youtube.com/watch?v=_UyQLveYyzI&start_radio=1&list=RD_UyQLveYyzI


 We'll make you 활 활 활
 우린 좀 Young & Wild
 태어날 때부터 치열하게 자라왔지
 조금 독한 Type 그저 앞만 보고
 어둠을 뚫고 왔지 


수업 시간에 왜 주제를 강다니엘로 골랐는지에 대해서도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나, 강다니엘이 좋아요.” 

이 말을 했을 때 표정 관리도 잘 안 되었을 것이다. 자주 그러했듯이. 


매 수업 시간이 끝나면 학생들은 각자 준비한 공책에 그날 수업의 감상을 적는다. 나는 한국어로 강의하지만 학생들은 감상을 한국어나 중국어로 쓸 수 있다. 나는 학생들의 감상문을 매주 읽으며 그들의 솔직함에 또 다른 문화를 체험하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과 자신들의 느낀 점을-선생이 읽는데도-가감 없이 쓰고, 때로는 이모티콘이나 그들만의 ‘급식체’로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강다니엘을 좋아한다는 제 감상문의 독자인 선생에게 이러한 메시지도 남겼다.  


 “나도 워너원 팬인데 선생님이 강다니엘 얘기해 줘서 정말 행복해요.” 

 “선생님, 다음 주에 워너원 콘서트(8월 말에 타이베이에서 워너원 콘서트가 있다) 티케팅 시작해요. 선생님, 살 거예요? 빨리 사세요. 표가 매진할(*매진될) 거예요.” 

 “나는 배진영 팬이에요. 선생님, 배진영도 예쁘게 봐 주세요.” 


이뿐만 아니라, 실제로 한 학생은 내게 직접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방금 전 한국 시간 6시에 워너원 신곡이 발표됐어요.” 라고 소식을 알려 주는 학생도 있었고, 

 “이거 제가 한국에서 샀어요. 선생님, 드려요.” 라며 사진 속의 초콜릿을 내게 건넨 강다니엘 팬도 있었다.  

 게다가 ‘활활’로 위안을 받았다는 내게 힐링이 되는 음악을 소개해 준 학생들도 있었다. 덕분에 양요섭의 <엄마>와 방탄소년단의 <Young Forever>와 <낙원>을 좀 더 가사에 집중해 듣게 되었고, 수업 시간 종료 오 분 전에 학생들에게 그들의 ‘신청곡’을 틀어주는 DJ 역할도 자처했다.  



나는 감정에 충실한 편이다. 

감정의 강약조절이 안 돼 낭패를 본 적도 적지 않았다. 

상대를 봐 가며 감정을 표현했어야 했는데, 자주 그렇게 하지 못했고 일을 그르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직장에서였다.  

불편한 일을 꾹 참고 넘기는 일에 서툴렀고, 마음에 맞는 동료를 챙기는 일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눈치가 없었고, 사회는 때론 공평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때론 미성숙함과 내공부족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좀 더 세련되고 현명하게 감정을 표현했어야 했을까, 라는 강요된 후회를 한 적도 있었다. 


개인간의 만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내 감정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가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나의 솔직함’을 내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나의 치명적인 단점이자 사회 생활 부적응자의 흔한 변명이라고 못 박기도 했다.  

종종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행운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나의 솔직함은 분명, 단점이었다.  



이곳에서도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어가 서툰 이들에게는 단순한 한국어로, 한국어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나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깨진 바가지”가 되어 밖에서도 감정의 수도꼭지를 조절하지 못해 감정을 줄줄 새 버리게 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이불킥을 날리기도 한다. 그래도 이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몇 달 전 내게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졌고, 

누군가가 손가락질할까 봐 말할 수 없는 일이니 

제발 잠자코 견디자고 스스로에게 말했고, 

그날은 마침 

대만 친구들을 만난 자리였고, 

그들은 내게 “요즘 잘 지내니?”라고 물었을 뿐이었는데, 

나는 “요즘 *** 일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해 버렸다. 

그리고 난 또 후회했다.
 “아우씨, 괜히 말했어.”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일들이 벌어졌다. 

나와 함께 있던 두 친구들은 자기들도 내게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해 줬고, 

그 일로 자신들도 힘들어했다며, 괜찮다고, 나를, 위로했다. 

그 말에 나는 “그래도 난 이것 때문에 얼굴을 들 수가 없어.”라며 감정을 폭발시켜 결국 울고 말았다. 그 날, 그들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벅스에 나를 데려가 신제품의 달달하고 따뜻한 음료를 사 주며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 주 동안 라인으로 내게 “영미, 이제 기분 괜찮아졌어?”라며 번갈아 가며 내 안부를 살폈다. 




내가 대만에 언제까지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한국에 완전히 돌아갔을 때 누군가가 내게 

“대만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나의 솔직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 대만 친구들”이라 말할 것이다. 

요즘 향수병에 걸렸다고, 망고와 토란 맛에 빠져 있다고, 이사할 때 보증금을 내는 문제가 좀 헷갈린다고, 저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말했는데 그 말의 의미를 도통 모르겠다고, 상황에 따라 있는 그대로 사실을 전하는 나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져 주고, 내 감정을 평가하지 않고 나를 한 개인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친구들이 그립다고 서슴지 않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강다니엘을 좋아한다고 한 선생에게 자신도 한 인간에게 느끼는 호감에 대해 거리낌없이 서술해 준 학생들, 그들이 내게 보여준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 관심들은 내가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나의 어린 학생들은 공감 능력은 뛰어났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며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할 줄 안다는 점에서 나보다 어른스럽기까지했다.  




솔직함은 상대에게 위안이 된다, 고 나는 믿는다. 

내가 먼저 솔직하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솔직하게 반응해 준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인간미를 중시하고, 자신도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소중히 다루려 한다고, 나는 믿는다. 

솔직함으로 많은 낭패를 보았으나,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준 따뜻한 이들과 함께 지내며 정신의 치유를 경험하고 나서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참, 잘했다. 

상처 받은 일을 친구에게 털어 놔서, 

강다니엘이 좋다고 솔직하게 말해서, 

이 과정을 글로 드러내서, 

솔직하게 말하고 후회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글로 토닥토닥, 해 줄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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