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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May 19. 2020

땡전뉴스를 아시나요?

[살아보니, 대만]

"9시를 알려 드립니다. 뚜뚜뚜, 땡, 전XX 대통령은~"

그가 대통령이었던 때 나는 초등학생(사실 국민학생)이었는데 그 시간이 되면 보통 우리집에서는 티브이를 껐다. 어린이는 9시에 취침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가끔 뉴스를 보는 날도 있었는데 그 특별한 날은, 

나와 72세 띠동갑이신 할머니가 우리집에 계실 때였다. 

할머니와 함께 땡전뉴스를 보던 날이었다. 

나는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이렇게 외쳤다.

“대통령이 대머리야.”

“야를 보라.” (“어마마마, 얘 좀 봐”의 함경도 방언)

할머니가 갑작스레 윗입술을 심하게 움직인 탓에 틀니도 함께 들썩였다. 할머니의 이가 입술과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이 무슨 묘기라도 되는 줄 알던 나이였다. 할머니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바짝 다가앉아 낮은 목소리로 ‘인생의 지혜’를 일러 주셨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대머리”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대통령한테는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고. 나는 물었다. 왜 안되느냐고, 맞는 말인데 왜 하면 안 되느냐고. 

“저~기로 끌려간다.”

할머니는 허공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기”라고 힘주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말했고, 나는 할머니의 손끝을 따라 정말 저쪽 어딘가를 보았다. 그때, 어린 내게 난데없이 검은 기운이 밀려왔다. 

.

.

.

40년 전이었다.




출처: 다음 영화


2017년 여름 같은 가을이었던가, 대만에서도 <택시 운전사>가 개봉되었다.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오랜 시간 동안 해 왔던 대만인들에게도 <택시 운전사>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굳이 나를 찾아와 <택시 운전사>를 보고 많이 울었다고, 감동을 받았다고, 공감했다고 말해주는 대만인들이 있었다. 


경제적 발전을 기반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 대만은 서서히 정치적 민주화를 겪게 된다. 대만의 국민당(國民黨) 정권은 정부기구와 사회에 깊이 침투된 고도의 집중화된 지도력과 당 기구를 지닌 ‘준 레닌주의적’ 권위주의 정권이었다. 계염령이 1947년부터 1987년까지 시행되었고, 정치적 야당과 전국적 선거는 금지되었다. 그러나 1986년 야당인 민주진보당(民主進步黨)이 생기고,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정치적 민주화가 위로부터 집권층의 통제 하에 서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 김범석(2005), 대만민주화와 양안관계의 변화, 국제정치논총 45(2), p.58


대만의 민주화 과정은 시기적으로 우리와 맞물렸다. 그들이 공감을 느끼는 이유를 또 한번 찾아볼 수 있었는데 대만 영화 “여친, 남친”에서였다. 이 영화는, 지난 4년 간 살았던 남부 가오슝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자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겪은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이전 포스팅, “대만, 동성혼인 합법화”에도 소개했다.


 

출처: 다음 영화


오래 전 티브이의 시계가 9시를 알렸을 때, 내가 대통령을 대머리라고 불렀을 때, 할머니가 나를 겁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제시대를 지나 6.25 피난민으로 살다가 독재정권을 겪은 할머니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서서히 키워 오셨을 것이다. 숨죽이며 살아야 죽지 않는다는 당신만의 삶을 철학을 내게 알려주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억압 받아온 생이 무엇인지 나는 그렇게 배워갔을지도. 



올해 땡.전.뉴스를 기대해 본다.

9시 뉴스가 시작되자마자 전해 듣는 그 소식, 그가 드디어 사과했다는 그 말,

그가 무참히 짓밟은 생生을 향해 무릎 꿇고 사죄했다는 그 말,

올해의 땡전뉴스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대문 사진: 픽사베이

*영화 자료: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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