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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May 14. 2020

해와 달이 된 오누이 Vs. 호랑이고모

[살아보니, 대만]"나는 고양이로 태어라리라" 패러디 시


돼지, 쥐, 소, 그리고 호랑이. 모두 우리 반 동물이었다. 그 중에서도 98년생 호랑이와 97년생 소가 제일 많았다.


학생들에게 자기 띠 동물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적어 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먼저 호랑이를 생각하며 시를 썼다.


호랑이는 엄마가 아니었다.
호랑이는 약간 멍청했다.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을 타고 올라갔다. 결국 그는,


호랑이를 떠올리면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난다.

위의 세 문장을 학습용으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호랑이는 한국 옛날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호랑이는 크고 무섭다.
호랑이는 주로 밤에 돌아다닌다.


“학습용”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명사, 형용사, 동사 등 품사별로 문법을 제시하고,

2.    과거형보다는 현재형을 먼저 제시하며,

3.    학습자의 한국어 수준에 맞는 어휘와 문법을 사용하며,

4.    첫 번째 드는 예문에서는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예를 들고,

5.    가능하면 받침이 없는 어휘(돌아다니다)와 받침이 있는 어휘(다)를 두 개 모두 제시한다.


한국어 초보 선생들이 가장 많이 헷갈려하는 부분은 3번과 4번이다(이 부분은 기회가 되면 차차 설명할 계획입니다).


 학생들에게 내가 왜 호랑이를 이렇게 생각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때, 한 학생이 내게 말했다.


“그거 대만에도 있어요.”

그 이야기는 바로 호랑이고모(虎姑婆)였다.


https://youtu.be/AXYez4ntOro


<호랑이고모>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호랑이는 자신을 (엄마가 아닌) 고모라고 우긴다.


찾아보면 나라별로 유사한 전래동화가 많다. 학습자 문화권에 있는 유사한 전래동화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대만의 <호랑이 고모> 이야기와 함께 한국의 <해와 달이 된 오누이>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한국어 교수-학습 방안에 대한 논문도 꽤 많이 발표가 되어 있는 상태다. 나는 본의 아니게, 양국의 전래동화를 활용해 ‘상호문화적’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된 경우였지만...




학생들에게 각자의 띠로 세 문장 시 쓰기를 해 보았다.

다음은 학생들의 글이다.


호랑이는 단체 생활에 잘 어울리는 동물이다.

호랑이는 성격이 날카롭다.

호랑이는 초원에 돌아다닌다.


쥐는 작은 동물이다.

쥐는 민첩하다.

쥐는 밤에 쓰레기통에 돌아다닌다.


두 번째 시는 대만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대만에는 교내에 혹은 거리에도 쓰레기통이 별로 없다. 그 이유는 쥐 때문이라고 들었다. 거리에 쓰레기봉투를 두면 벌금을 내야 한다. 이 또한 벌레와 쥐 때문이라고 들었다. 더운 지방에서는 위생에 더 철저해질 수밖에 없는데 대만에는 위생문제에 있어서는 정말 엄격할 때가 많았다.





그 다음으로 10문장 이상의 시 쓰기에 도전했다.

그 전에 먼저 시를 한 편 배웠다.

그것은 바로 황인숙 시인의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이다.

(이전 포스팅 클릭!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참고)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서시, 김춘수의 꽃,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러한 작품들은 내 수업이 아니더라도 다른 교재에서 접할 수 있을 것이고,

한국의 정서 이전에 보편적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

위의 시를 고르게 되었다.

황인숙의 시를 배운 뒤,

황인숙의 시를 패러디한 조영미의 시를 배웠다.

이 또한 ‘학습용’ 원칙에 따랐다.


이 다음에 나는 호랑이로 태어나리라

호랑이는 옛날 이야기의 주인공, 어린이를 잡아먹는 나쁜놈이다, 하지만 나는

이 다음에 채식주의자 호랑이로 태어날 것이다.

다른 동물을 먹지도, 괴롭히지도 않고

들판에서 잡초만 먹고, 사람들의 일을 돕는 성실한 호랑이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튼튼한 동아줄을 타고 올라갈 수 있게

다이어트도 해야지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 올라

해님과 달님이 된 오누이와 함께 놀아야지



교사의 ‘모델 텍스트’를 읽고 배운 뒤 학생들은 자기들만의 시를 썼다.


이 다음에 나는 개로 태어나리라.

검은색이나 하얀색이 다 좋다.

체형이 크거나 작거나 다 좋다.

어떤 생김새 어떤 품종이든 다 좋다.

나는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개다.

아무 생각이 없고 먹고 자고 깨고 논다.

기분이 좋을 때 멍멍하고 인간과 손을 잡고 간식을 먹는다.

이 다음에 나는 태연이나 영재가 키우는 개로 태어나리라.


갓세븐 영재를 사랑하는 한 학생은 그가 키우는 개가 되고 싶다고 했다. 팬심이 진하게 느껴졌다.



이 다음에 나는 북극곰으로 태어나리라.

열대 지역에서 항상 땀을 뻘뻘 흘린다.

북극에 살면 그렇지 않겠지.

하루 종일 시원한 얼음 위에서 뒹굴뒹굴할 것이다.

나는 이 겨울 왕국의 왕이다.

아무 것도 안 무섭다.

하얀 만토 같은 털이 있어서 든든하다.

물 속에서 물개를 꽉 잡아 먹는다.

여우 친구들이 내 뒤에서 살금살금 따라간다.

“어! 들켰다!”

우리는 싱글벙글 웃는다.

먹고 눕고 먹고 또 놀고 이런 인생.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눈이 그만 녹으면 안 돼?

나는 내 집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겠다.


위의 작품은 원문의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를 잘 이해했고, 교사의 (학습용) 지시사항을 충실히 따랐으며, (감히 평가하자면) 작가로서의 재능이 엿보인 문장이 보였고, 대만의 문화적 특성(너무 더운 날씨)을 여실히 드러낸 좋은 작품이었다.


나는 학생들과 시 쓰기 활동을 종종한다.

(이전 포스팅 클릭! <우리가 사랑한 한국 음식>)


나는 그렇게 각국의 시인들을 만난다.



<사족> 저는 대만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대만 이야기는 당분간 계속 됩니다. 할 말이 아직 남았거든요~


* 위의 '호랑이고모' 관련 정보는 소완진 학생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 대문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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