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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 Aug 07. 2020

죽음이 문을 두드릴 때 (2009)


뉴욕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내 발등 위로 신문하나 가 떨어졌다.
“신종플루 사상자 1명...”
조금 어지럽던 머리가 더 무겁게 느껴지고, 얼굴의 온기가 더 뜨거워진 느낌에 살며시 그 신문을 옆으로 밀쳐놓고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움켜쥐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앞주머니에 있는 담요를 꺼내 들어 온몸에 두르고 웅크려 눈을 감았다.

 그가 점점 내게 가까이 오는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그가 내 발끝을 건드리는 느낌에 나는 눈을 떴다.

 그의 이름은 D이다. 만난 적도 없지만 늘 들어왔던 그의 이름...을 다 부르기도 두려워 나는 그를 D라 부르기로 했다.

큰기침과 함께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기를 여러 번, 승무원이 나에게 다가와 타이레놀을 쥐어주며 열을 쟀다. 39도란 소리와 함께 나는 분명 그의 웃음소리가 들었다. 정신이 몽롱해지다가 잠이 들었고 열은 점점 가라앉는 듯했으나 D는 여전히 내 옆을 서성이는 것만 같았다.

여러 번의 식사와 햄과 치즈가 두툼히 들어있는 샌드위치가 나왔지만 나는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비행기 착륙과 함께 나는 서둘러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공항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안전 요원 두 명이 온도계를 들고 양쪽에 서있었다. 그들은 우르르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귀 속에 온도계를 찔러 넣고 있었다. D는 재빨리 내 뒤로 숨었다. 그리고 안전요원은 드디어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귀위 머리에 그저 스치듯 체온계를 대고 급하게 확인하더니 “통과!”라고 외쳤다.

안심이 아닌 불안과 분노를 느꼈다면 나는 이상한 사람일까?
그대로 쭉 걸어 나가다가 나는 뒤를 돌아서 다시 그 안전요원에게 다가갔다.
“저 잘 못 재신 것 같아요. 저 지금 열이 나고 있거든요.”
안전요원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내 귀에 온도계를 꽃아 넣었다. 그리고는 심각한 얼굴로 따라오라며 나를 인도했다.

옆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본 동행인들은 나에게 의아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왜 그랬어?”

나는 앞에 먼저 의심자로 끌려가는 친구를 바라보며 “혼자 가게 둘 순 없잖아”라고 답했다.

마치 의리가 충만한 사람처럼...

차마 ‘통과!’라는 외침으로 내 발끝을 간질이며 지금 내 뒤에 숨어있는 D,그의 자취를 무시한 그 사람에게 조금 화가 났다는 말을 하기엔 내가 너무나 이상해 보였다.
그렇게 나는 격리실로 따라갔다. 흰 마스크를 쓴 직원들이 다가와 내 혀에 면봉을 문질러 대더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눠준 파란 마스크를 꼭 쓰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내 앞에 한 친구는 어머니와 통화하기 바빴다. 전화기 너머로 쨍쨍한 그녀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충 들어보니 마치 그녀가 신종플루에게 ‘어서 이리 와’ 하고 끌어안고 격리실로 오고 싶어 안달이 나서 스스로 걸어온 것 마냥 그녀를 다그치고 있었다.
무언가 찔리는 마음으로 나도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나의 어머니는 ‘여기 와서 양성반응 나오면 치료도 힘들고 여러 가지로 힘들 수 있는데 오히려 거기서 확인받고 오는 게 좋을 수도 있다며 걱정 말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다독였다.
한 언니는 남자 친구에게 통화를 하겠다며 내 핸드폰을 빌려가 한참을 통화했다. 마음껏 쓰라며 핸드폰을 내주었다.

사실 지금 D, 그가 문을 두드리며 내 앞을 서성이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핸드폰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싶었다.
격리실 작은 방 안에는 파란 간이침대가 두 개 있었다. 거기에 누워 있는데 아까 그 쨍쨍한 목소리를 가진 어머니의 딸이 나에게 불안에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에 내가 음성이고 네가 양성이면 나는 지금 너랑 같이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나는 그 엄마의 그 딸이라 생각하며 "반대 일지도 모르지”라고 답했다.

사실 아무렴 상관없었다. 곧 D,그가 나에게 덮쳐 와도 별로 크게 슬플 것 같지 않았다.

한참을 누워있는데 한 직원이 문을 조금 열더니 우리를 마치 우리 안에 돼지 보듯 보았고 김밥 몇 개를 던져주었다. 캐리어 안에 있는 컵라면이 생각나 뜨거운 물을 받으러 나온 곳에서 나는 '웬만하면 돌아다니지 말고 마스크를 꼭 착용하라' 는 직원들의 채근을 들어야 했다. 머리가 찝찝해서 화장실을 가야겠다고 하자 직원들은 나가서 노란 선으로 표시된 화장실로 가라고 말해주었다. 수건 하나를 목에 두르고 손엔 샴푸를 든 채 그 격리실을 빠져나왔다. 어지러웠고 길도 몰랐고 노란선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멀리 와버렸다. 분명 내가 들어간 공항 화장실은 노란 선이 표시되어있지 않았다. 인적이 드물었지만 분명 격리된 곳은 아닌것 같았다. 그곳 세면대에 나는 머리를 물에 파묻고 샴푸질을 했다. 그리고 수건으로 대충 말리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노란색 선이 둘러진 화장실을 그제서야 발견했다. 무언가 알수 없는 묘한 기분을 안고 아무일 없는 듯 다시 그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삼십 시간을 공항 격리실에 감금되어 있었다. 음성 판정이 난 사람들은 떠나가고 양성 판정받은 사람은 대기 순서를 기다렸다.


나오라는 소리와 함께 공항 건물 밖으로 캐리어를 질질 끌고 따라가자 엠뷸런스가 대기 중이었다.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누구 하나 우산을 씌워주지 않았다. 타라고 하기에 올라타 문이 닫혔다. 차 안에는 인도네시아 사람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포함한 세네 명의 사람이 있었고 우리는 목적지도 모른 채 마치 갑갑한 이 파란 마스크가 침묵을 강요하듯 조용히 덜컹거림을 느끼며 있었다. 마치 죄인이 된 느낌에 나는 앞에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내리라는 소리와 함께 뒷문이 열리고 내리자 인천의료원이라는 병원 앞에 서있었다.


한 남자아이가 파란 마스크를 쓴 우리가 멋있어 보인 건지 꼼지락 대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이의 불안한 걸음을 엉거주춤하며 바라보았다. 그때 그 아이의 어머니는 뒤를 돌았고 별안간 “안돼!!!”라고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안고 도망갔다. 그때 도망가듯 달리며 뒤돌아 흘겨보던 그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마치 이곳은 한강이고 나는 괴물이 된 느낌이었다. 한강의 괴물이 출현한다면 그런 반응일 것이랴. 그 순간만큼은 그 괴물의 심정을 이해했다.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도 전에 우리는 병원 끝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디론가 올라갔고 흰 복도에 서서 지시에 따랐다. 그들은 나에게 지독한 냄새에 소독약들을 뿌려댔고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통과하는 4 중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나를 병실로 인도했다. 정신병동이 아닐까 싶었다. 병실은 모두 하얗고, 창문은 모조리 다 실리콘으로 막아져 있었다. tv 채널은 ‘세상의 이런 일이’한 프로그램만 나오는 것 같았고, 병실엔 이미 한 남자아이가 자리 잡고 있는 2인실이었다. 그 남자아이는 하루 종일 노트북을 가지고 놀았다.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누워 내 발끝을 기어 올라 허리춤까지 올라탄 것만 같은 D의 무게를 온 몸으로 느꼈다.
새벽 3-4시쯤엔 저 밑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기침을 참지 못하고 눈을 떠 한 손에는 가래기침 물약을 들고 그 녀석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병실로 매일 들어오는 밥은 소독약 냄새가 나는 듯했고 나는 한 두 스푼을 뜨다가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기 일쑤였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일기를 끄적이는 일뿐이었다. 그런 내가 불쌍했는지 남자아이는 한두 시간 노트북을 빌려주기도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주복을 입은 의사는 오전마다 병실을 방문했다. 들어와서 그 우주복 유리창과 같은 얼굴 그 사이로 그의 입술은 쉴 새 없이 지금 내 바이러스와 새로운 바이러스가 결합되면 D가 다시 찾아올 거란 말을 해댔다.

그리고 까만 판을 내 등에 대고 X-ray를 찍어댔으며, 팔을 걷어 피를 매일 뽑아갔다. 마치 새로운 바이러스 연구에 쓸 실험쥐가 된 느낌이었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다가 병원측에서는 병실을 옮겨주겠다고 했다.

 나는 새로운 병실로 이동했다. 함께 뉴욕에 갔던 동행 인중 한 명이었다. 그다지 정이 가는 친구는 아니었으나 그냥 지금 이 순간 아는 얼굴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안도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인천에 사시는 지인의 연락처를 남겨주고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분께 넣어달라고 부탁하라고 했다. 어차피 올라오셔도 격리된 나를 볼 수 없었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새로운 병실에는 한 청소부 아주머니께서 들어와 마스크를 의지한 채 이곳저곳을 쓸더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청소를 했다. 그리고는 계속 구시렁구시렁 하며 이것저것을 쿵쿵 집어던지듯 놓고는 했다. 그러다 갑자기 내게 가까이 와서는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생리대를 그런 식으로 버리면 어떡하냐 머리가 왜 이렇게 많이 빠지냐는 둥 나는 맞받아칠 힘도 없었고, 속으로 그게 미화청소부의 일 아닌가 싶어 가만히 그녀를 응시했다. 지금 고약하고 괴팍한 D가 나의 허리위로 올라타려하는 것을 피하려 발버둥치고 홀로 견디는 불쌍한 나의 모습을 보고도 굳이 나를 다그치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화를 내며 쿵쿵거리던 아줌마는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며 내 옆에 와 앉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나도 그가 무서워....정말 무서워 그래서 그래 이 일하다가 D, 그를 만날까 봐 두려워서 그런다고... ” 이해했다.

아니 다 이해할 순 없어도 표현이 이상하긴 해도 그 두려움은 이해했기에
“괜찮아요. 죄송합니다”라고 답해줬다.
그리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주머니가 나가시고 그가 정말 나를 온몸으로 덮쳐온다면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 당장 그가 나를 끌고 간다 해도 별로 아쉬울 건 없었다. 아직 16년의 시간밖에 보내보지 못한 나지만 이때까지의 삶도 나름의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마음에 딱 두 가지가 걸렸다. 참 철이 없게도,
아쉬움의 첫째는 나 남자 친구도 한번 못 사귀어보고 죽는 건 억울했다. 결혼은 아니더라도 연애는 해보고 싶었는데,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죽고 못 사는 사랑을 해보고 싶었다.
아쉬움의 둘째는 그가 오기 전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가 달려오는 속도 만큼 최선을 다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인천에 사신다는 지인분께 문자를 보냈다. ‘죄송하지만 저 요플레랑 그 서점에 가면 완자 문제집이 있어요. 그거 국어 좀 사주세요.’ 요플레는 간절히 먹고 싶었기 때문이고 2가지 아쉬움 중 한 가지는 지금 여기서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도착한 요플레를 먹으며 갑자기 그 열나는 머리로 끙끙대며 문제집 한 권을 다 푸는 내 모습을 보는 친구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병실에서 새벽 어스름마다 나는 그와 대면하기가 조마조마하면서도 괜찮다고 여겼다. 일주일이 흘러 나의 발끝을 간질이던 D,그는 점점 내게서 멀어졌고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물론 학교에서 다른 반에까지 들리는 아저씨 같은 기침 소리가 내 몸에서 울려 퍼질 때마다 그는  종종 찾아와 내 발끝을 간지럽혔고, 교장 선생님과 그 녀석을 만날 뻔했단 사실만으로 무릎을 맞대고 앉아 면담할 때도 그는 자신을 잊지 말라며 내 옷깃을 스치고 갔다. 덕분에 나는 교장 선생님 앞에서 미친 듯이 땀을 흘려야 했다. D, 그의 정체를 알 리가 없는 교장선생님은 나의 흐르는 땀을 위해 선풍기를 이리저리 내게 가까이 놓기 위해 애쓰셨다.

D 덕분에 나는 아쉬움 두 번째를 이뤘다. 성적은 꾸준히 올랐고 내 기준에서 최선을 다했다.
 
 여전히 가끔 D가 나를 스치듯 찾아온다. 그는 내 땀보다 내 눈물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얼굴을 이불 속에 파묻고 울 때마다 그는 내 옆에 허리를 D구부려 내옆에 누웠다. 나는 그가 아주 무섭지는 않았다.솔직히 말하면 그가 찾아와주기를 간절히 바란 적도 있다.

아쉬움의 첫 번째 이룰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는 D가 영영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여정의 끝에 이별을 마주했을 때 , 나는 D를 종종 찾았다. D,그는 내가 애타게 찾을 땐  멀리 달아나 문 뒤로 숨어버린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문 너머에 있는 그를 만나면 그래도 당신이 먼저 문을 두드려주었기에 내 인생이 당신을 기억하며 더 빛났노라고 말하고 싶다.      




2020년, 그의 친구가 나타났다. D의 친구들은 되도록 마주치지 않았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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