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엘라 휠러 윌콕스의 고독에 나온 말이다.
영화 올드보이의 명대사로도 유명하다.
어느 순간 우리네 삶은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이
약점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는 그것을 이용하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위안 삼으며
그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널리 퍼트린다.
그래서일까
SNS에는 온갖 행복한 시간들로 포장된
연기들이 펼쳐진다.
행복한 시간들로만 가득 찬 것 같은 삶
그 이면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픔들이 가득하다.
얼마 전 나는 누군가의 일기를
우연히 발견했고
그것을 읽었다.
몰래 읽은 건 나의 잘못이었으나
그의 일기장 속 내용은 정말 너무나도
처절했고 아팠고
그의 인생의 모토는
그의 아버지가 수도 없이 말했던
"인생은 끝도 없는 연기다"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포장했고,
누군가의 잘못을 감췄고,
그 비밀들로 인해
끔찍하게 괴로운 나날을 보냈고,
결국 그것이 드러난 순간
수치심에 몸부림쳐야 했으며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었다.
과연 그의 말처럼
'인생은 끝도 없는 연기인 것일까?'
어린 시절 나는
무언가 과묵하고
알 수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저 사람은 무언가
생각이 깊은 사람인 것 같고
알고 싶고
묘한 매력을 느꼈었다.
지금의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딘가 불편하고
그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나도 굳이 내 이야기를 진실되게 하지 않는다.
그 사람도 일기에는 자신의 본모습을 털어놓듯
사람은 누구나 그 어느 사람 혹은 어떤 것에든
연기가 아닌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털어놓는다.
이 세상을 매 순간 연기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밖에서 아무리 아름답고 빛나는 액세서리와 옷으로 치장하고 당당하게 걷는 사람일지라도
집에 들어오면 쓰레기장 같은 방에서
과자 부스러기를 흘리며 누워 뒹굴거리며 비어버린 통장잔고에 좌절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연기는 언젠가 막을 내린다.
그 막이 내린 순간
쓰고 있던 탈을 벗을 때
발가벗겨진 기분과 함께
수치심이 느껴진다면
당신은 지금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은 어느 정도 자신을 포장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삶은 끝도 없는 연기가 아닌
매 순간 진실되게 살려 애쓰는 것이어야 한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그 탈을 벗어 드러난 민낯도
스스로 당당한 사람이다.
끝도 없는 연기로 삶을 채워
정작 중요한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면
당신은 탈을 벗게 될 때
수치심에 몸부림치거나
절규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 최악은 그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다른 이들까지 파국으로 치닫게 할지도 모른다.
나는 성공한 인생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탈을 벗었을 때나 썼을 때나 별로 간극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아는 나
네가 아는 나
집에서의 나
밖에서의 나
이 간격이 멀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에게 늘 당당할 것이며
자신의 생을 사랑할 것이다.
삶은 끝도 없는 연기가 아니라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