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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Apr 29. 2020

남성들에게는 흥을 깰 용기가 필요하다

여성을 도구화하며 강화되는 호모소셜, 이제라도 "하지 마"라고 말해달라

술자리에서 'n번방에 들어갔다'고 밝혔다가 영상에 찍힌 남성에 대한 수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뒤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n번방에 들어간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말을 하는 즉시 수사대상이 된다는 걸 똑똑히 깨닫게 해야 한다.


사실 그 영상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n번방에 들어갔다고 말하는 남성의 '자신만만함'이 아닌, 주변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아는 사람 중에 한 명은 나올 줄 알았는데 쟤인줄 알았거든."

"(박수 치며)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이들의 행태를 영상으로 남겨 고발한 여성은 "범죄자 친구들은 약간 당황했지만 어떤 이유인지 모르게 받아주는 분위기"라고 자막을 달았다. 추측컨대 "내가 n번방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을때 저들도 "네가 진짜 들어갔다고?" 정도의 말을 하거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조차 안 잡혔을 것이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자연스럽게 박수치며 '괜찮아'를 외치는데까지 이르렀다는 게 문제다.


나는 범죄자로 추정되는 그 남성이 이렇듯 '성범죄마저 옹호하는, 적어도 대놓고 욕하지는 않는' 남성문화 속에서 키워졌다고 생각한다. 아마 주변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 성매매, 불법촬영물 시청, 갖가지 성범죄 등에 관해서도 이런 식으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또래 남성들 안에서 정당화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n번방' 이야기도 서슴없이 한 것이고, 여지없이 이 친구들은 '괜찮아'로 화답한 것일테다.


만약 그러한 과정 속에서 단 한 명이라도 그에게 충고하는 친구가 있었다면, 친구들끼리의 즐거운 술자리를 망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일갈했다면 어땠을까. 범죄자로 추정되는 남성과 저 친구들이 저 지경까지 됐을까 싶다. 


물론 여성의 성을 매개로 우정을 다지는 것은 꽤나 주류적인 남성문화이며, 이런 문화에 태클을 거는 것은 남자들간의 관계에서 외면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너 혼자만 잘난척 하느냐", "선비질 하네"부터 온갖 조롱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남성들이 그저 '함께 웃는다.' 술자리나 단톡방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조롱하고, 성범죄 사실까지 고백하기도 하지만, 누구 하나 말리지 않고 웃거나 호기심을 드러내기까지 하니 수위는 더 심해진다. '제동'이 걸리지 않는 남성문화는 n번방 성착취 앞에서 '괜찮아'를 외치는 수준의 패거리가 수도 없이 탄생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남성들은 성범죄자들과 똑같은 수준의 사람이 되기 싫다면 침묵하거나 참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요즘에는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명분이 있고,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어느때보다 크다. 내 옆에 있는 남성이 '그런 말을, 혹은 그런짓을 하면 안되는 이유'는 지금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뉴스가, 온라인 댓글이 증명해준다. 최소한 "너 그러다가는 큰일 난다"는 말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함께 웃어준다는 것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전히 내가 후회가 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20대 시절에 만난 친구들이 자신이 성매매를 했다고 말했을 때, "하지 말라"고, '왜 하면 안 되는지' 분명하게 이야기해주지 못한 것이다. 그때는 '아 그렇구나'라고 넘겼던 것 같은데, 내 불편함을 설명할 지식이나 논리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이 계속 성매매를 했다면, 그때 분명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내 책임도 있을 것이다.


물론 최근엔 단톡방성희롱 사건에서 남성이 내부고발자가 된다거나, 성폭력 문제에 공동체의 남성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남성들이 많은 집단에선 기성의 관습이 지배하는 경우가 많고, 그곳에서는 여성을 도구로 생각하는 언행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오거돈, 안희정의 케이스 역시 남성중심의 조직 문화에서 제어되지 못한 남성이 어떤 인간이 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는 그들이 어떤 인물인지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들에게 제대로 조언 한 번 해준적이 있을까? 아랫사람은 물론,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들의 행태를 '눈 감아줬다'고 밖엔 볼 수가 없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은, 이제 끝까지 눈 감아주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제 여성들이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해선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까.


언제든 어떤 자리에서든 호모소셜을 위해 여성의 성이 수단화된다면, 바로 흥을 깨는 '한 명'이 되어주시길 남성들에게 당부드린다. 편한 자리라면 강력하게 상대방을 비난해도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표정을 구기고 웃지 않아서 적어도 분위기는 망쳐버리길 바란다. 옳은 길로 가고 싶다면, 내 주위 남성들이 엉망이 되어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삶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정색하고 "하지 마"라고 말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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