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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May 09. 2020

이성애자 남성은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랑은 페미니즘적 사유와 행동에서 나온다 


1. "그때의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온몸이 푹 젖는 느낌이었다. 그를 여전히 사랑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다는 건 자명했다."(121p)


김봉곤의 새 소설집 <시절과 기분>을 읽었다. 읽지 않은 세 개의 소설과 읽어본 세 개의 소설이 담겨 있는 소설집이었다. 읽지 않았던 <나의 여름 사람에게>-<엔드 게임>-<마이 리틀 러버>를 읽으면서 눈물콧물 다 짰던지라, 나머지 세 편도 다시 읽을수밖에 없었다. 


사뭇 통속적으로 비칠 수도 있는, 오직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저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서만 써도 소설이 가능하구나 싶었다. 물론 김봉곤의 에너지, 독창성, 시간과 공간을 배치하는 능력, 퀴어의 사랑을 그린다는 점 등등 작가 개인역량에 기댄 것이 크겠지만, 나는 불쌍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은, '둘의 사랑'은 상상조차 못했기에 적잖게 감동했다. 


누군가는 김봉곤의 소설을 '일기 쓰냐'며 조롱하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1인칭 소설에서 타인에 대해서, 혹은 타인의 감정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입체적으로 이야기한 소설이 있나 싶다. 특히 남성 작가들이 작중 화자의 애인이나 만났던 여성에 대해 서술하는 방식이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다. 여성은 소설의 중심에 서지 못한채 주변화-도구화되어 남성 화자의 특정한 감정이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용된다. 이렇게 '나'에 도취된 소설들이야말로 오히려 타자를 지워버리는 폐쇄적인 서사가 된다. 사실 이런 소설들이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당한지는 조금 됐지만, 그 이후에 이성애자 남성 작가들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김봉곤의 소설은 부럽기까지 했다. 


"소설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나 어떠한 시간을 겪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데이 포 나잇>의 '나'는 학생들과의 합평이 끝날 때쯤 소설에 대해 규정한다. 이 정의에 따르 페미니즘이 많은 여성 소설가들의 주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돌이킬 수 없는 변화', 그 자체가 현재의 페미니즘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많은 여성 작가들이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자신의 세계를 펼치면서 사랑 혹은 연대를 말해오고 있다. 반면 현재 남성 작가들은 어딘가 길을 잃은듯이 느껴진다.


물론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강희영의 <최단경로>등은 남성이 그리는 여성서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남성이 여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또 그려낼 것인가'의 문제가 남았다. 하지만 동성연애를 다루는 퀴어 문학은 동성을 난제를 아예 비껴간다. 하지만 이성간의 관계는, 또 남성의 이성애는 어떻게 그릴 것인가. 이전처럼 관습적으로 여성을 '경유'하는 것이 얼마나 여성혐오적인지 낱낱이 드러난 시점에서, 남성들은 이제 여성을 향해 어떤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2. 이성애는 구조적으로 불평등하다. 이야기를 통해 남성이 여성을 향한 사랑을 그린다면, 자신이 여성과 맺는 관계가 억압적이라는 측면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절절하고 애틋한 사랑을 보여줄 수야 있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기만적인 요소를 포함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가부장제 하의 억압적 관계를 어떻게 해소하거나 전복시킬 것인가가 서사적으로 풀어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다만 그것은 남성화자의 입을 빌려 손쉽게 쓸만한 내용이 아니다. 자칫하면 도식적이고 유치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억압자'로서의 인식을 갖고 사랑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구애→연애→결혼→가족 구성의 이성애의 모든 과정이 전부 여성에게 불리한 구조다. 이성애로 인한 관계 속에서 물리적 정서적 폭력의 가해자는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았다. 나아가 '남성중심적'으로 구성된 사회적 자원을 활용해 남성들이 애인과 아내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해온 역사가 있다. 젊은 여성들이 '이성연애'를 비교적 남성들보다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남성의 폭력이나 가부장제 구조에 의한 여성억압은 굳이 더 설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정말 '착한 남자', '평범한 남자'라고 해도 상대방을 불평등한 조건에 처하게 한다는데서 더 큰 문제가 있다.


섹스를 할 때 불안감에 휩싸이는 것은 대체로 여성일수밖에 없다. 노콘돔이거나 피임을 안하는 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콘돔 역시 완벽한 피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똑같이 섹스를 했지만, 그 이후의 부담은 여성들이 대부분 짊어져야 한다. 월경이 조금 늦어져도, 일상 속에서 큰 부담감과 불안을 떠안게 된다. 하물며 임신을 하게 된다면? 정말 남성들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큰 짐을 짊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그런 여성들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넉넉한 지원을 주느냐? 알다시피 오히려 그간 '죄인' 취급을 해왔다.낙태죄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대체입법이 어떤식으로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젊은 여성들은 이성연애에서 언제나 리스크를 짊어질 수밖에 없다. 이 점을 남성들이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지, 또 그에 맞춰 '안전하게' 섹스하려고 하는지 의문이다.


결혼과 가족구성은 그 자체가 이미 여성들에게 어마어마한 압박이다. 남성은 그저 뚜벅뚜벅 자기 할 일을 하고, 여성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선택의 폭을 좁히거나, 삶의 방향을 변경해야만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사랑 때문에' 자신의 삶 속에서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한다. 이렇듯 여성들에게 이성애는, 또 이성애가 가져오는 숱한 사건들은 삶의 가장 큰 불안 요소다.


많은 여성들이 그 불안을 이겨내고 자기 삶을 성실히 꾸려나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남성들이 어떤 '위기의식'도 느끼지 못한채로 가만히 있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자기 앞날이 나의 사랑 때문에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단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그저 '미녀 여친'이나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같은 자식'를 원하던 이들이 무슨 사랑을 말할 수 있겠는가.


3. '한국남자'들은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른다. 나도 계속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책임감'이 중요하다고 배웠지만, 실제로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모른다. '매너'가 중요하다고 배웠지만, 실제로 어떤 데서 매너를 발휘해야 하는지 모른다.


'평등해져야 한다'는 말 지겹도록 하지만, 실제로 나도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일들 속에서 어떤 식으로 '평등한 관계 맺기'를 실천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성별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태도, 의식적으로 '여성성 강요'에 대해 경각심을 갖는것 등등 개인적으로 실천해야 될 부분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앞서 이야기한 이성애 관계가 발생시키는 구조적 불평등의 틀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흔히 아내와 딸을 가족으로 둔 이들이 '폭력적인 남성'들이나 성범죄자들에 분노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왜 그 정도에서만 그치는지 항상 의문이었다. 내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금 나와 만나면서 어떤 부분을 희생하고 있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끼는지 살피길 바란다. 꽤 많은 문제가 당신과의 관계가 형성된 후에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면, 그런 '벽'들을 깨부수거나 최소한 함께 넘어서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책임감'이다. 


이성연애가, 이성간의 결혼이 여성의 앞길을 가로막는 이상, '평등한 사랑'은 불가능하고, 남성의 사랑은 언제나 불완전한 '억압자의 사랑'으로 끝난다. 아니,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가면을 쓴 '지배'일지도 모른다. 임신과 출산이 오로지 여성 개인이 감당해야 할 일에 그치지 않고, '섹스'가 평등해지고, '출산으로 인한 사회적 단절'이 오히려 사회적 배려를 받고, 궁극적으로 가부장제가 사라져야만 온전한 남성의 이성애가 가능해진다.


그래서 이성애자 남성에게 페미니즘은 '사랑하는 법'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한국 남자'들이 정확히 인식할 때에만, 남성의 이성애도 아름답게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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