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제주도 비자림에 갔을 때였다. 앞에서 길을 걷던 커플 중 남자가 갑자기 슬그머니 옆길로 빠졌다. 그리고 돌멩이로 쌓아올린 돌탑을 발로 찼다. 눈 깜짝할 사이에 '와장창' 돌이 무너지며 나뒹굴었다. 나와 일행은 너무 놀라 도망치듯 빨리 걸어갔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지' 싶었다. 누군가가 공들여 만든것을 굳이 부수는 심리가 궁금했다.
요즘엔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가수 이적씨는 눈사람을 사정없이 걷어차며 크게 웃는 남자친구를 보고, 결별을 결심한 여자의 이야기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썼다. 이야기 속 여자는 "눈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면 동물을 학대할 수 있고 마침내 폭력은 자신을 향할거라는 공포"를 언급하기도 했다.
눈사람이나 돌탑을 파괴하는 행위가 곧바로 동물이나 사람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눈사람을 파괴하는 이들이 공포스러운 것은 분명하다. 이들이 '타인'의 존재를 전혀 상상하지 못한 채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탑은 돌멩이 몇 개가 단순히 쌓인 게 아니다. 혼자 혹은 각기 다른 사람들이 정성스레 무너지지 않게 돌을 쌓던 순간들이 모인 것이다. 그 앞에서 누군가는 소원을 빌기도 했고, 소원을 빌지 않더라도 어떤 '마음'을 담아 쌓아 올렸다.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내가 무너트리면 어떡하지' 걱정하면서, 그런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돌탑이 완성된다.
눈사람은 어떨까. 코로나로 밖에 나오지 못하던 아이들이 오랜만에 밖에 나와 같은 동네 친구들과 꼬마 눈사람을 만든다. 고사리손으로 눈 덩이를 뭉치고 살살 굴려서 부피를 키워가며, 드디어 '완성'이라고 기뻐하고, 사진을 찍는다. 아이들은 다음날도 눈사람이 잘 있는지 구경을 나올 것이다.
아주 작고 무너지기 쉬운 것들이지만, 그것에 마음을 쏟았을 누군가를 상상할 수 있다면 감히 그걸 '망쳐놓을' 생각은 할 수 없다. 누군가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상상하지 않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 '눈사람과 돌탑 부수기'다.
타인의 노력과 마음에 대해 상상하지 못하던 이들이, 눈사람만 부수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까지 부술 때가 있다.
얼마 전 농성중인 LG 트윈타워 청소노동자에게 악다구니를 퍼붓는 댓글들을 수없이 읽었다. 아무리 이것이 부당한 해고라고 외쳐도, 기자들이 그 말을 정리해서 기사로 내도, 악플러들은 "민노총 아웃", "과도한 요구다", "감히 정규직을"(정규직은 청소노동자들의 요구사항도 아니다)등의 댓글을 달았다. 내겐 그들이 '눈사람 파괴자'처럼 느껴졌다. 아니, 더 공포스러운 이들이다. "여기에서 내가 일하고 싶다, 일하고 있었다"고 사람이 앞에서 외치는데도 외면한 채 눈사람을 뻥 차버린 것이니까.
그런데 길가의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이나, LG 청소노동자에게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악마’가 아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에 가깝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는 공포스럽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존재를 읽고 그려내지 못하는 순간,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순간, 나 역시 '눈사람 부수기' 같이 무심·무감한 행동을 하게 될지 모른다. 나와 상황이 비슷한 누군가가 아니라, 내게 잘 보이지 않는, 아니 보여도 '투명인간'이길 요구받는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으려고 나는 충분히 노력하고 있을까?
눈사람을 만드는 데는 꽤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하지만, 그걸 부수는 데는 1초면 충분하다. 나는 눈사람을 지키는 사람인가, 아니면 부수는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브런치에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모두 잘 지내셨는지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는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는데, 막상 브런치에는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분명 브런치로 제 글을 보는 분들이 계실텐데, 그분들에게 정말 죄송스러운 마음 뿐입니다.
어느새 한 해가 지났습니다. 이렇다할 계획은 세우지는 않았지만, 타인에게 마음을 쓰는 일과 '연대'는 절대로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만은 꼭 지키고자 합니다. 뒤늦게나마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새해 복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