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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Feb 10. 2019

박원순의 '위력', 안희정의 '위력'

박 시장 비서관 행동엔 공감하면서, 왜 안희정 성폭력 사건은 이해 못 하나


KBS2의 설날특집 예능 <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박원순 시장 출연분이 논란이다. 특히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비서관이 박 시장과 함께 새벽 마라톤을 뛰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무엇보다 이 비서관은 발목이 안 좋아서 뛸 때 통증을 느끼고 있고, 무릎 수술도 두 번이나 한 상태였다. 그러나 비서관은 박 시장에게 투정 한 마디 하지않고 묵묵히 뛰었다.


심지어 비서관의 아내가 "무릎수술 두 번 했는데 마라톤 뛴다면 주변에서 걱정한다"고 하니, 오히려 비서관은 "마라톤 좋아하는데 왜 그런 불편한 이야기를 시장님께 하는 거야"라고 멋쩍게 대꾸하기도 했다. 


비서관은 "다리 아프다"는 말도 제대로 못한다. 이것이 서울시장이 보좌진에게 갖는 '위력'이다.


비서관이 방송을 통해 새벽 마라톤의 어려움을 토로하자,  박 시장은 ""좋을 줄 알고 (마라톤) 같이 했다.싫다는 이야기를 안 했다", " (무릎 수술한 것을) 나한테 얘기를 해야지"식으로 답변했다. 그러나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왜 비서관이 차마 말을 못했는지 말이다.


이 프로그램은 어쩌면 '위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적절한 대답일지도 모르겠다. 박 시장과 비서관의 행동은 '위력이 존재하나 위력이 일상적으로 행사되거나 남용되지는 않았다'는 안희정 1심의 판결 내용이 얼마나 얼토당토하지 않은지 증명한다. 위력은 존재 자체로 강제력을 지니며 사람의 행동을 통제한다. 


위력이 물리적 폭력이나 압력이라는 형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해서, 위력이 갑자기 사라질리 만무하다. 박 시장이 강제로 달리기를 시킨 적은 없다. 그러나 비서관은 다리가 아픔에도 거부하지 못했다. 거부할 생각조차 안 했다. 위력이 행사되거나 남용되었을 때에만 '위력에 의한'것으로 간주한다면 이것 역시 '자발적 행동'으로 봐야 하나?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성폭력 사건은 그렇게 보지 않는가?


안희정 1심 무죄 선고 이후 벌어진 서부지법 앞 항의 시위 ⓒ오마이뉴스 권우성


교수가 제자, 회사 임원과 사원, 감독과 신인배우 등등 남자들은 이렇게 위력이 형성되는 관계에서의 만남을 '로맨스'로 착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착각하려고 든다. 그래야 자신의 행동을 포장할 수 있으니까. 이들은 위력에 의해 만들어지지는 '거부할 수 없음'을 이용해서, 만남과 성적인 접촉을 강요했다. 더러는 불평등한 연인 관계를 형성해 착취했다. 만약 성폭력이라는 문제가 제기되면 남자들은 '말은 안해도 너도 암묵적으로 동의한 게 아니냐', '너도 즐기지 않았느냐'고 반박하곤 했고, 그게 실제로 재판에서 먹혀들었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가 방영된 뒤 박원순 시장은 "굉장히 많은 반성을 했다"고 밝혔다. 물론 박 시장은 반성, 또 반성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위력을 이용해 여성들에게 성적 관계를 강요하던 이들, 주변에서 '로맨스'니, '합의된 관계'이니 떠들며 가해자를 두둔한 이들은 언제 반성을 할까? 여전히 떵떵거리고 사는 남자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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