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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Feb 16. 2019

검정치마 여성혐오 논란의 핵심: '홍대 인디신 남성성'

팬들을 성적대상화하고, 여성 음악가를 동료로 생각하지 않는 남성성의 반영

검정치마의 새 앨범 <THIRSTY>를 들어봤다. 처음 들었을 때는 유명 음악가가 대성공 뒤 만드는 졸작을 듣는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메탈리카 팬들이 <Load>를, 오아시스 팬들이 <Be Here Now>를 처음 들었을 때 이런 느낌이었까 싶었다. 두번째 들었을 때는 '난해하다,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나' 싶었다. 그동안 나온 앨범중에 가장 콘셉트가 불명확하다. 유기적이지도 않고, '상'이 잘 떠오르지 않는 곡과 앨범이다. 본인 말로는 '뻔뻔하고 그로테스크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으니, 의도한대로 이뤄진 걸수도 있어서  '졸작'이라는 평은 보류했다.


이번 앨범이 난해한 이유는 가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전부터 추상적인 가사를 써왔지만, 곡에서 무엇을 상상하고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분명치가 않았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풋 미 온 드럭스>나  <그늘은 그림자로> 정도가 음악 문법적으로 그나마 익숙했다.


직관적으로 곡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니 '여혐' 논란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접근해야만 했다. 맥락이 불분명한 가사 구절 하나하나를 이야기하기보다는, 그가 1집부터 뻔뻔하게 보여준 '홍대 인디신 남성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맞을 것 같다.


3집 part2로 나온 <THIRSTY>


이번에 특히 문제가 된 <광견일기>라는 곡은 1집 수록곡인 <강아지>의 연작이다. 여러모로 비슷하다. 개가 짖는 것으로 시작하는 곡들이고, 화자를 '개'로 묘사한다. 그리고 이 '개'가 이야기하는 여성은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성매매를 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이 맥락으로 보자면 강아지는 광견이 됐고, 1집에서 '돈만 쥐어주면 태워주는 차'로 표현한 여성은 이번 앨범에서는 '가볍게' '감정 없이' 성관계를 맺는 대상이 된다.  


“우리가 알던 여자애는 돈만 쥐어주면 태어주는 차가 됐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개가 되려나봐 손을 댈 수 없게 자꾸 뜨거워” (강아지)


“우리 정분 났다고는 생각지도 마/내가 원하는 건 오분 길게는 십오분/모든 소릴 삼켰던 너의 입에 반쯤 먹힌 손이 어딜 훑고 왔는지/신경 쓰지 않는 니가 신기할 뿐이야/사랑 빼고 다 해줄게 더 내밀어봐 (...) 내 여자는 멀리 있고 넌 그냥 그렇고" (광견일기)


애인을 두고 성매매를 하거나 섹스파트너를 두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심지어 스스로를 '광견'이라고 했으니 자조나 풍자의 의도가 있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러나 그런 의도를 드러내는 장치도 없고, 그렇게 생각할만한 맥락도 없다. 미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상수역>과 모호한 성찰적 메시지<발리우드> 사이에 왜 갑자기 이 곡이 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러니 당연히 <강아지>를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돈만 주면 차가 되는', '다른데서 퇴짜 맞고 와도 넌 오케이' 같은 가사 등으로 '쉬운 여자'를 규정하고 동시에 그를 착취한다고 떠벌리는 것은 사회에서 부도덕한 행위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화자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구현하고 싶은 세계가 분명해야 청자들이 이곡을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광견일기>를 아무리 들어봐도, 여러 인간군상 중 하나를 표현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문학평론가 김명인 교수는 "어떤 금기를 위반하는 일이 새로운 윤리를 만드는 일이 될 때 문학의 금기위반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가사 역시 일종의 문학이라면, <광견일기>의 가사는 '실패'이며, 여성혐오가 담긴 작품으로로 규정되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사실 이전까지 검정치마의 문제작은 2집의 <음악하는 여자>였다. 특히 '나는 음악하는 여자는 징그러/시집이나 보면서 뒹굴어 아가씨'라는 가사는 논란이 됐는데, 이에 대한 검정치마의 해명은 조금 아리송하다. 


"‘음악 하는 여자’는 누굴 비난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에요. 2009년에 있었던 일 중에 그런 영감을 주는 게 있었을 뿐이에요. 진심도 들어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썼다고 생각해주세요. 특히 후렴구는 기타를 치다가 저절로 나왔죠.(얼루어 2011년 8월 인터뷰)"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진심도 있는데 무의식적으로 썼다  생각해달라", 뜯어보면 황당하고 무책임한 발언이다. '영감을 주는 게' 있다고 해서 이런 가사를 쓰는 것은 음악가로서 오만한 태도다. 만약 유명한 여자 싱어송라이터가 '음악하는 남자'라는 곡을 저런식으로 썼다고 생각해보자. 심지어 '해명'이랍시고 저런 말을 했다면 그냥 넘어갔을까? 


2집 수록곡 <음악하는 여자> 가사 일부분


나는 문제의 세 곡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홍대 인디신 남성성'을 담아냈다고 본다. <강아지>와 <광견일기> 연작은 '인디계 내 성폭력' 운동을 통해 고발된, 여성팬들을 마치 '섹스 파트너'처럼 생각하며 성폭력과 데이트폭력을 일삼는 남성 음악가들을 떠올리게 했다. <음악하는 여자> 역시 한 밴드 보컬이 술자리에서 '자궁냄새 나는 음악'운운해서 문제가 됐듯, 고질적인 음악계의 편견과 차별을 담아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관련 글: '여자치고'라는 말, 칭찬 아니라 차별입니다


팬들을 '그루피'인양 여기고, 여성 뮤지션은 '동료'로 취급하지 않는 인디음악계의 남성중심적 문화는 그동안 '예술' 이나 '록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돼왔다. 당연히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관점이 그들의 곡에서 드러나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의 흐름은 그들이 해오던 것이 예술이 아니라 '여성혐오'라는 것을 드러냈다. 검정치마가 1집, 2집에서 보여준 '남성성'의 일부는 지금 시점에서는 폐기되어야 맞는 것이다. 하지만 검정치마는 성찰하지 않았으며 어떤 부분에선 게을렀던 듯하다.


 <광견일기>도 그렇지만 <빨간 나를>에서 '넌 내가 좋아하는 천박한 계집아이'라는 가사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천박한 계집아이'는 신중해야 할 표현이다. 이것이 어떤 심상을 만들어내는가를 생각해보면, '비하적 표현'임에도 꼭 써야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가사가 그렇게 성실한 고민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껏 예술 작품안에서 여성은 별다른 이유 없이 대상화됐고, 어떤 감각이나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쓰인 적이 많았다. 하지만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들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된 여성혐오적 관습을 용납하지 않게 됐다.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이 나타나거나, 남성의 심리 표현을 위해 도구화되는 여성 인물들이 등장하는 '남성중심적' 작품이 계속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국면에서 남성 창작자가 갖춰야 할 윤리적인 태도는 대중의 반응에 귀기울이고, 주변의 남성성과 관습적으로 사용했던 여성혐오 표현에 대한 '성찰'이다. 기존의 세계관에 대한 수정이 없다면, 게으르고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말은 더 이상 면죄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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