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을 떠난 노회찬의 운구 차량이 국회로 들어올 때, 19명의 여성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일렬로 서서 고개를 숙인 채 노회찬을 배웅했다. 한 노동자는 오열했고, 다른 이들도 비통한 표정을 한 채 눈물을 닦아냈다.
그날 청소노동자의 배웅은 노회찬이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 증명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청소노동자들에게 노회찬은 그저 한 명의 의원이 아니었다. 그는 청소노동자들을 국회의 '동료'로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다. 초선 때부터 청소노동자들의 '직접 고용'을 위해 힘썼고, "휴게실이 없어지면 정의당 사무실을 쓰라"고 말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이면 여성 청소노동자들에게도 장미꽃을 돌렸다.
진보진영에서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은 따로 있는 것처럼 이야기됐고, 실제로 여성운동은 노동·학생운동이 주가 된 민주화운동에서 주변화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노동운동가 출신의 노회찬은 '노동해방'을 가로막는 중대한 방해 요소가 '젠더 문제'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또한 일찍이 독재정권이나 대자본과 공조하는 '남성체제'의 폭력성을 깨우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곁에 머문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호주제 폐지 법안' '차별금지법' 대표 발의 등은 그가 누구의 편에 서서 정치를 했는지 잘 보여준다. 최근엔 피해자의 무고 혐의 역고소를 수사하지 않는 ‘성폭력특례법 개정안’ 발의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을 취임 이후 처음 만난 자리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을 주면서 화제를 모았다. 그는 남성임에도 '페미니스트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선구자였다.
“사회에 눈을 뜨면서 내게는 너무나 상식인데 우리 사회에선 안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남녀문제란 걸 알았다. 우리나라에는 (남자와 여자라는) 두 종류의 국민이 있는 셈이다. 사회 정치적으로 강자인 남성이 봉건문화, 유교문화, 가부장적 질서 등 힘과 폭력에 의해 차별과 억압구조를 만들어 간다." (2005년 여성신문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인터뷰 중)
2. 노회찬만큼이나 여성의 날 떠오르는 남성 정치인이 한 명 더 있다. 노회찬과 함께 마석 모란공원에 잠들어 있는 '민주주의자 김근태'다. '성평등은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말처럼, 민주주의자였던 김근태는 성평등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가 노회찬처럼 전면에 나서서 '페미니스트 정치'를 펼치는 정치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인재근 의원과 결혼할 때 '평등부부로 살자'고 다짐했고, 가사노동을 확실하게 분담했다. 김근태의 딸인 김병민이 김근태와 인재근의 편지를 엮어서 낸 책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에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김근태는 양성쓰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자식들을 '인병민, 인병준'이라고 불렀고, 가사노동을 철저하게 분담 못 했음에 반성하기도 한다. 딸이 사회에 나가서 부당한 일을 겪을까봐 미리 걱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중 91년도 5월 홍성교도소에서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는 유독 돋보인다.
"아빠가 남녀차별 문제, 여성 평등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한 이유는 사람이 사는 이 세상을 어떻게 하면 보다 밝고 사랑스럽고, 눈물과 한숨 그리고 원한이 없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병민이가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혹시라도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을까,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싶어 아빠는 잔뜩 긴장하였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고 하는 이 사회의 말 없는 암시 때문에 활발하고 적극적인 병민이가 머뭇거리고 소극적인 아이가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였다."
"이처럼 아무런 근거도 없는 비뚤어진 생각이나 거짓에 따른 남녀 차별, 남성우월감은 남자 스스로를 타락시키고 구렁텅이로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김근태의 딸 김병민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오히려 집에서는 오빠보다 더 대우를 받으며 자랐다고 했다. 집에서 단 한번도 '여자애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단다. 그러다보니 '성차별'은 그에게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오빠에게는 뜨거운 밥을, 자신에게는 찬 밥을 주는 외할머니댁의 교묘한 차별에 문제제기한 적도 있다고 했다.
'진보'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도 룸살롱 출입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거나, 성폭력을 두둔하는 이들을 보면 김근태가 그리워진다. 그는 아내와 동지적 관계를 맺었고, 스스로 '가부장'이 되는 것조차 거부했던 사람이다.
다만 김근태는 자신의 성평등적 사고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고가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는 '페미니스트 정치'는 아내인 인재근이나 여성운동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못내 아쉽다.
3. 노회찬과 김근태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인천지역에서 노동 운동을 하며 아내를 만났고, 아내와 동지로서 함께 사회운동을 해나갔다는 점이다.
김지선은 노회찬이 "이 사람과 결혼하면 나도 활동(노동운동)을 계속할 수 있겠구나" 생각해서 결혼했다고 한다. 실제로 김지선은 결혼 후에도 쭉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에 헌신할 수 있었다. 인재근 또한 '평등 부부'로서 살았고 옥중에 있는 '김근태의 바깥사람'으로서 활발히 민주화운동을 했다. 결국 그의 이력은 국회의원으로 자리잡는 밑바탕이 됐다.
두 남자는 자신과 똑같이 아내에게도 하고 싶은 일이, 꿈이 있다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보조자가 되기를, 희생을 통해 '내조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 시절 흔히 볼 수 없는 건강한 남성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111주년 '여성의 날'을 맞아 이 두 정치인을 거론한 이유는, 지금 한국 남자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여성과 '평등한 관계 맺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의 남성들은 여성을 동등한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가부장제와 군사문화를 기반삼아,기본적인 인간관계 맺기의 원형을 '수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남성들은 여성을 대할 때도 자신도 모르게 지배하고, 억압하려고 든다. 이런 문화를 참다 못해 터져나온 것이 '미투'다. 그러나 1년도 안 돼 '가짜미투'니 '역차별론'이니 나오는 상황을 볼 때 남성들의 변화는 아직 한참 멀게만 느껴진다.
물론 우리가 두 '거인'처럼 살 수는 없다. 그래도 세상이 더 나아지길 바란다면 '여성의 날'을 남의 이야기인양 무관심하게 지나가진 않았으면 한다. 노회찬은 지난해 여성의 날에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수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하물며 평범한 남자들은 얼마나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이 많겠는가.
'성평등'이 민주주의이자 진보라고 여겼던 두 남성 정치인을 기리며, 여성의 날이 남성들에게는 반성과 변화를 다짐하는 날로 굳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