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경 혐오' 사건은 '여성혐오'의 구조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애초에 전제 자체가 "여성은 ~을 못한다"에서 시작됐으므로 이 프레임을 깨느냐 마느냐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다. 논란은 결국 현장에서 여경의 주취자 제압을 도와준 교통경찰과 표창원 의원등의 발언으로 그나마 정리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대로 만약에 여경이 제대로 제압을 못한 사건이었다면 여론이 어땠을까?
간단히 말해서 남경에 대해선 정준영 불법영상 수사를 엉망으로 하든, 버닝썬과 유착관계를 맺든, 주취자를 제압 못하든 '남자라서' 그렇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건 '경찰 전체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여경이 어떤 행동을 잘못했다는 의혹이 있으면 그건 '여자'의 문제가 된다. '여자라서', '여자가 경찰이 되어서', '여경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로 취급된다는 말이다. 여경은 경찰이 아닌가?
경찰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범법자를 잡는 것은 중요한 업무이긴 하지만, 업무의 일부일 뿐이다. 자잘한 대민업무부터 온갖 지능범죄에 대한 수사도 다 한다. 특히 요즘 검경수사권 논란 때문에 말이 많지만, '수사'는 경찰 능력의 핵심이다. 무조건 때려잡는 게 능사라면 격투기 대회 열어서 경찰로 뽑으면 된다. 그런데 경찰 업무는 그게 다가 아니다.
범인도 못 잡고, 수사 보고서도 제대로 못 쓰는 남경들은 단 한번도 이슈화 된 적이 없다. 나이 50살 넘은 남경이 20대 조폭을 제압할 수 있나? 당연히 그렇지 않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경이 시민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허술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이번 사건처럼 "해고하라" "여경 없애라"며 난리가 나지 않나. 조직 밖 분위기가 그런데 조직 안이 오죽하겠는가. '여경이라서' 못한다는 이야기를 안 듣기 위해서 언제나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자신이 원해서 내근직에 간 게 아니라도, 내근하며 소위 '꿀 빤다'는 편견에 맞서 싸워야 한다.
'남성은 강해야 한다'는 그 고정된 남성성이 싫은 젊은 남성들이 정작 경찰은 남성만 뽑으라고 말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극도의 '자기중심적 관점'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이전에 나는 남초 커뮤니티가 얼마나 여경을 비하해왔는지 이야기 한적이 있다. 여경 경쟁율이 남경의 3배, 필기 커트라인은 20점이 높은(서울, 2018년 1차 시험 기준) 상황에서도 이들은 '여경 되기 쉽다'며 '국가가 정한' 여경의 체력검정기준만 갖고 늘어진다. 여경은 여기서도 또 한번 증명해야 될 대상이 된다. "너 팔굽혀펴기 제대로 할 수 있냐"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 여경 지망생은 자신의 운동하는 모습을 '증명'하며 체력검정기준이 남성과 같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본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은 '흔하지 않은 여경 준비생'이라며 치켜세웠다. 그런데 '흔하지 않은'이라는 말 속에는 '흔한' 여경 혹은 여경준비생들에 대한 멸시, 그리고 "너도 증명해봐라"는 권력자의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반면 남성들에겐 아무도 증명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남성은 '보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어떤일을 하든, 사람들이 의문을 품지 않는다. 몇 안 되는 여초 직업들에서 '남자기 때문에 못한다'는 말이 나오기는 하는가. 그들은 증명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더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힘을 키운다. 서울교대 단톡방-대면식 사건만 봐도 잘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