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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May 28. 2019

그 화장실이 남자들 차지가 된 이유

도시의 공간은 '남성'을 기본 주체로 상정해서 만들어졌고, 또 유지되어왔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자주 불편을 겪거나 위험에 처했다. 


좁고 가로등이 설치 안 된 골목길, 언제나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걱정하며 타야하는 택시 또는 만원 지하철, '돌봄' 노동을 주로 여성이 맡는 현실에서 아이를 데리고 가기 힘든 식당들, 그리고 '노키즈존'. 여성 휴게실이나 탈의실을 제공받지 못하는 남초 일터, 수유시설이 없는 화장실, 심지어 여성 운전자라고 차별받는 '도로' 까지...


도시 공간의 주인은 남자이며, 남자가 이용할 것을 기본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하듯 상당수의 공간은 성차별적이다. 특히 나는 요즘 PC방을 갈 때마다 PC방의 공용화장실이 사실상 여성들의 이용을 배제하고 만든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종종 게임을 하러 두 곳의 PC방을 이용한다. A는 70석 규모의 중형PC방이고  B는 150석이 넘는 대형 PC방이다. 그런데 두 곳 모두 화장실을 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A는 PC방 내부에 공용화장실이 하나 있다. 좁은 공간에 소변기 두 개, 각각 여성용과 남성용이라고 표시된 칸막이에 양변기가 있다. 그런데 나는 이 PC방을 수년동안 다니면서 여성이 이 화장실에 들어가거나 나오는것을 본 적이 없다. B의 화장실은 외부에 공용화장실이 있는 구조인데, 화장실이 넓고 소변기에 칸막이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A의 화장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B의 화장실 상태가 좀 더 나아보이지만, 사실상 B의 화장실도 이용하기 여성이 이용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A나 B나 필연적으로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단 소변을 보고 있는사람의 얼굴을 봐야한다. 


게다가 이 PC방 화장실에선 문을 잠그고 일을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서일수도 있고, 아니면 남성들이 주 이용객이므로 남성들의 경각심이 좀 떨어져서일수도 있다. 나도 몇 번 문을 잠궜으나, 밖에서 기다리면서 문을 두들기기는 등 신경이 쓰였다. 여성이 혼자 이용하기엔 여러모로 불편한 구조다. 그러다보니 A의 화장실은 여성들이 아예 이용을 포기한 것이다. (여자 알바나 종종 오는 여자 학생들은 아마 다른 화장실을 이용할 듯하다)


PC방은 이미 그 공간 자체가 굉장히 남성중심적이다. 남성들이 온갖 여성비하적 욕을 하면서 게임을 하는곳을 여성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화장실 문제는 그나마 PC방에 오는 여성까지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여성이 A와 B같은 PC방의 공용화장실을 쾌적하게 이용하려면, 일단 안에 남성이 없다는 전제하에, 문을 잠궈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 일단 남성이 있는지 없는지 가늠하는 과정은 영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자라는 이유로 용변을 참거나 아니면 신경을 엄청나게 곤두세우며 화장실을 가야 하는 것이다.


PC방뿐만이 아니다. 비교적 낡은 건물에 층과 층 중간에 있는 화장실을 공용으로 만든 건물에서는 공통적으로 생기는 문제다. 딱 1인만 들어갈수 있는 구조 혹은 열쇠가 있다면 괜찮지만, A, B처럼 애매하게 오픈형인 경우는 무조건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서 비교적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하는 여성에게 큰 부담을 준다. 여성의 사용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설계인것이다. 그러니 '화장실 PC방 같이 남자 이용객이 많은 곳의 공용화장실이 사실상 '남성용'이 됐거나 그렇게 되어갈수밖에 없는 것이다.


건축가 황두진씨는 2000년도에 쓴 '건축 공간에서의 성차별'이라는 글에서 공용화장실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경우에 소위 유니섹스 화장실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남녀는 정말 곤란한 상황에서 대결을 벌이게 된다. 행여 소리가 날까봐 화장실을 못 가거나, 아니면 용변과 동시에 물을 내리거나, 심지어 밖에 누가 있을지 몰라 나가지도 못하는 경험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 이것은 마찬가지의 고역이다. 설계자가 남자라서 여자의 문제를 잘 해결 못하는 측면도 몰론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설계 현실이 그런 문제까지 신경 쓸 정도로 세련된 수준에 가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불평등을 논하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설계가 아닌 것이다."


황씨가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여성들의 화장실 이용이 더 불편했겠지만, 지금이라도 크게 달라졌을리 없다. 무신경함, '관습에 따른' 공간 구획이나 설계는 필연적으로 남성중심적인 형태를 띄게 된다. 어쨌든 남성들이 설계를 하거나 공사를 담당하는 상황에서, 본인이 쓰지 못하는 공간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성은 종종 불쾌한 정도지만, 여성은 아예 이용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일정 수준의 분리를 위한 구획을 하지 않으면 더 피해를 보는 것은 여성이다.


얼마전에 신촌의 한 주점에 갔는데, 소위 말하는 오픈형 공용화장실이었다. 그런데 여긴 긴 천(노렌)을 걸어놓아 소변기 쪽을 보이지 않게 가리면서, 적어도 민망한 상황은 피할 수있게 만들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있지만, 어떻게든 분리를 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나는 공간이 부족하면 최소한 이 정도 의지는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간 정책에 성인지적 감수성, 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성 주류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선행되어야 할 것은 시민들이 공간을 사유하는 방식의 변화다. 특히 '비장애인 남성들'은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마음놓고 쓰는 공간 안에서 누가 배제되었는지, 혹은 불편해하는지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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