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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Sep 19. 2019

애도하지 못하는 남자들

그들에게 대체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논뚜렁(논두렁)이 아름답고 여자들이 실종되는 도시 화성시 기안동에 살던 84년생"


기안84 스스로가 블로그에 밝힌 필명 '기안84'의 뜻이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확인되면서, 동시에 기안84를 비판하며 그의 사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피해자 중 한 명이 발견되기도 한 논두렁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마치 소설 속 공간인양 화성을 '여자들이 실종되는 도시'라고 표현하는 행위는 비극을 낭만화하고 사소화시킨다. '자조적인 말' 아니냐는 반박도 있던데, 여성들이 죽어가는 공간에 산다는 것을 '자조'랍시고 쓸 수 있다면 그것도 남성으로서의 크나큰 여유 아닐까.


여성의 비극은 쉽게 도구화된다. 2017년 8월, 만화가 조석은 대뜸 <마음의 소리>에 한 남성이 '보장하라 브라질리언 왁싱의 국가화 추진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1인시위하는 컷을 넣었다. 강남역에서 왁싱숍 살인사건 공론화 시위가 일어난 지 한달도 채 안되서였다. 페미니즘을 조롱할 의도로 살해당한 여성마저 희화화한 것이다.


영화 <토일렛>은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을 사실상 가해자의 시선에서 다뤄서 논란이 된 영화였다. 남자감독은 강남역 여성살인사건과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굉장히 자극적이고 비윤리적(남성의 분노에 이입하게 만드는)으로 여성혐오 살인을 다뤄 당시 큰 비난을 받았다.


사실 개인만의 문제도 아니다. 여성의 죽음을 가장 우습게 여긴 것은 디지털성범죄 영상을 "그 사람 죽었다"면서 '유작'이라고 불렀던 남초 커뮤니티 아닌가. '내가 당할 가능성이 있는 일'이 아니니, 그렇게 인간임을 포기한 채로 뻔뻔하게 굴었던 자들이 있다.


더 무섭고 화나는 것은 나름 '정의감'으로 여성의 죽음을 이용하기도 했다는 것. 미군 성폭력 살인의 피해자인 윤금이씨의 주검 사진은 10년 가까이 '반미 시위'때마다 전시되었다. 오로지 '분노'를 일으키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살해당한 여성을 이용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당시 이 문제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이 계속 항의를 해 겨우 변화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분통 터지는 일이다.


여성혐오 범죄에 의해 죽은 여성을 제대로 애도하지도 못하는 남성들에게 대체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함께 울지 못하고, 여성의 죽음을 제멋대로 '판단하는' 남성들을 보면 참담함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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