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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Feb 09. 2020

트랜스젠더 혐오가 '요즘 페미니즘'의 문제라는 이들에게

20대 남성이 유독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특별히 '여혐 세대'라서가 아니다. 생애주기상 그들이 이미 한국 사회에 만연하던 안티 페미니즘이 파고들기 좋은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안티 페미니즘은 그들을 경유해 '남성 차별론'까지 발전했다.


현재의 트랜스젠더 혐오 현상도 비슷하다고 본다. 물론 외국의 TERF 이론(?)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이를 추동했던 몇몇 이데올로그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한국 사회에 이미 존재하던, 특히 개신교를 중심으로 퍼지던 성소수자 혐오의 변종이다. 남성과 남성체제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이에게, '트랜스젠더'는 혼란스러운 존재일수밖에 없다. 차라리 명확하게 '적'이면 좋을텐데, 말 그대로 이들은 '교란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누구보다도 트랜스젠더 혐오에 끌릴 수밖에 없는, '취약함'을 갖고 있는 이유다.


숙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A씨가 입학을 포기했다는 기사를 봤다.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상상하기조차 싫은 엄청난 조롱과 비난이 난무하고 있는데, 그 혼자 견뎌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떻게 대응할지, 어떻게 싸울지 많은 고민이 든다. 이젠 '페미니스트가 어떻게'라는 말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압박하고 비판해왔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현재 페미니즘의 방향을 '수정'하자거나, 올바른 페미니즘(?)을 전파하자는 생각이 해결책이 될 순 없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한국사회 기저에 깔린 퀴어혐오 문제를 건드리고, 분위기를 바꿔나가는 게 더 근본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이다. 지금으로선 더 가열차게 각자 자리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힘을 보태고, 설득과 압박의 싸움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이번 사건에 대해 ‘페미니즘의 문제’라거나, ‘페미니스트들이 혐오를 키웠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황당할 따름이다. 누구보다 가장 앞에서 트랜스젠더 혐오와 싸운 이들도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요즘 페미니즘' 운운하기 전에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싸워온 페미니스트들을 격려하고, 이들의 싸움에 힘이 되어주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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