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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Mar 08. 2020

[여성의 날] '거부할 수 없는 요청'을 마주한 남자들

여태까지 편하게 살았다면


2006년 여름, 월드컵이 막 끝난 직후였다. 회기동 파전골목에서 같은 과 동기지만 한 살 많았던 A를 만났다. A는 술을 한 잔 마시자마자 “연애가 너무 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그는 “너는 방법을 알 것 같아서 만나자고 했다”며 내게 해법을 요구했다.


당시 나는 ‘인싸’보다는 ‘아싸’에 가까웠고, ‘썸’을 넘어선 연애는 못 해본 새내기에 불과했다. 소개팅을 시켜줄 수 있는 인간관계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A에게 “길 가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 있으면 번호 달라고 해요”라고 말했다. 갑자기 A의 눈이 반짝였다. 살짝 취기가 도는 채로 지하철을 탄 그는 갑자기 번호를 따오겠다며 열차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A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내버려 뒀던 것 같다. 천만다행인 것은 숫기가 없던 그가 결국 누구에게도 말 한 번 걸지 못한 채로, 조용히 내가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저기 마음에 드는 여자 있었는데... 아... 다음에는 꼭 성공해야지.”


몇 년 전, 한 이성 친구에게 이때의 경험을 말했다. 그러자 친구의 표정이 확 굳었다. 자신이 알바를 할 때, 대뜸 번호를 물어보거나 고백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곤 덧붙였다. “여성은 사냥감이 아니잖아, 사람이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때의 나는 여성을 나와 동등한 존재가 아닌, ‘꼬시거나 쟁취해야 하는’ 성적 대상으로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술 마신 남자가 두리번거리다가 갑자기 번호를 달라고 한다? 번호를 주지도 않겠지만, 불쾌하고 공포스러울 것이다. 


참고로 20대의 나는 여성학 강의를 듣고,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나 정도면 깨어있는 남자’라는 알량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론으로만 이해했을 뿐, 실제로는 남성들 사이에서 이뤄지던 여성혐오적 관습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앞서 자신의 경험을 내어준 친구처럼,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때론 내 행동에 대한 지적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변화할 수 있었다.


페미니즘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약자였던 여성의 시각으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평등을 추구하는 운동 및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사례처럼 여성의 시각에서 사회를 바라보면 남성들의 자기중심적 행위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된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현재의 한국 사회에선, 과거와 달리 남성을 향한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남성들은 불만을 품는다. 허용돼왔던,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언행에 제동이 걸렸으니까. 그런데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지금까지 남성들이 별문제 없이 살아왔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이다. 한국의 주류 남성문화는 여성을 ‘성애화된’ 존재로만 여기며, 자신과 같은 감정과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여성과 평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성차별·성폭력 문제에서 가해자·방관자였던 남성들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며 살아왔다. 이런 남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 이상하지 않은가?


이제 남성들은 '거부할 수 없는 요청'을 마주하고 있다. ‘반성하고, 경청해서, 여성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요청이다. 만약 거부할 경우의 결과는 상상에 맡기겠다.


*코스모폴리탄 3월호에 시인 오은님, 래퍼 제리케이님, 사회학연구자 최태섭님과 함께 ‘남성의 페미니즘’을 주제로 글을 실었습니다. 네 개의 글에 담긴 메시지가 남성들에게 잘 전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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