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앤지 Jun 20. 2021

인종차별 어디까지 당해봤니…?

이민자의 나라에서 은근히 차별당한 썰

해외 생활 (워홀 포함) 10년 차, 결론부터 말하자면 감사하게도 나는 인종차별을 심각하게 받은 적은 없던 것 같다.

예전에 호주에서 어학원 다닐 때 같은 학교 다니는 사람들이 길가다가 계란을 맞고 오거나, 현지인들의 '묻지 마 시비'에 억울한 마음으로 소리치며 욕했다가 되려 팔 골절되도록 맞고 한국 갔다는 일 같은 무시무시한 일은 나에게는 벌어지지 않았다.

또 코로나가 시작되고, 심심치 않게 들리는 아시안 혐오에도 나는 살벌한 시선을 느끼기는 했으나 범죄라고 분류될만한 일들은 겪지 않았다. 여기는 마스크 착용에 그렇게 열의가 있는 편이 아닌데도 내가 버스를 타면 스리슬쩍 마스크를 꺼내서 쓰는 사람들이 있거나, 앞서 ‘호주 격리 호텔에서 근무하기’에서 언급했듯이 아시안이란 것만으로도 나만 보면 앞뒤 없이 자기 분노를 소리치는 사람들을 만난 정도였지.   

일단 나는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해 지고 다니는 것을 좀 무서워하고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셔) 막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노출이 많이 되지 않아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무난하게 해외생활을 이어간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잊을만하면 새롭게 업그레이드되는 인종차별의 경험들이 있다.



#1. 현지인들 앞에서 서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영어를 쓰는 내 모습이 아주 부자연스러웠던 시절,  아시안들이 있었다고는 해도 지금보다는 덜 친숙한 분위기였어서 질 나쁜 애들의 놀림거리가 될 경우가 다분했었다.

한 날, 도미노 피자에 주문을 하러 갔는데 안 그래도 평소와 다른 패턴으로 주문을 받을까 봐 긴장하고 있는데 이 못된 놈들이 심심했는지 자기들끼리 불량한 눈빛을 주고받더니, 내가 무슨 말을 하든  “ Sorry? Sorry?”를 반복하며 못 알아듣겠다는 제스처를 한다. 지금이라면 기분 나쁜 표정을 짓거나  ‘너네랑 무슨 말을 하겠니…’ 하며 그냥 나오기라도 할 텐데 그때는 사실 그렇게 나오는 것도 불쾌함을 내비치는 것도 뭘 해도 당당해 보이지 않던 시절이라 엄청 당황하고 있는 나를 비웃듯 속사포처럼 못 알아들을 슬랭들을 쏟아 내면서 낄낄 대며 깐죽거리는데도 기분은 엄청 나쁜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가 떠오지 않아 이러지도 못하고 심지어 멋쩍게 웃고 있었던 내가 기억에서 맴돈다. 젠장. 바보 같아…

"나쁜 놈들… 어디 가서든 평생 무시받으면서 살아라!!"


#2.  나는 호텔 Bar에서 일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술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술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능수능란한 대처가 어려워서 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처음 호텔 bar에서 일했을 때 안 좋은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아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 사람들과 말할 기회들도 많고 새로운 주종을 배워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Bar에서 경험을 쌓으며 호텔에서의 나의 새로운 능력치를 끌어올리려던 중, 한 중년 손님을 만나게 된다.  

듣도 보도 못한 술을 시켰는데 일단 이름 자체도 생전 처음 듣는 것인 데다가 이 사람이 외부에서 술을 이미 마시고 온듯한 상태여서 발음이 더 알아듣기 어려웠다. 사실 취객에 대한 매뉴얼이 있어서 술 취한 사람은 서비스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 손님은 술 취한 상태라기보다 알코올이 이 사람의 기분에 별 도움이 안 되는 분위기였다.

어쨌든 내가 못 알아듣자,  한숨을 동반한 눈알 굴리기를 시전한 다음, 나에게 쏘아붙였다.


“Get someone else who can speak English.”  


순간, 짜증 나고 당황했지만 친구건 누구 건 술 취한 사람은 상종하고 싶지 않은 나는  “넵.” 하고 다른 동료에게 응대를 부탁했다. 결국 그 사람은 우리가 취급하지 않는 술을 원하고 있었던 것. 기분은 더러웠지만 어쨌든 그냥 넘어가나 싶었는데 다음 날 그가 바를 지나가다 나를 발견하고 굳이 와서  ‘나는 바에서 일하기에 적절한 사람’이 아니라고 되게 조언해 주는 것처럼 말하면서 매니저를 만나 봐야겠다고 하며 멀쩡한 상태에서도 주사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결론은 매니저는 출근 전이었고, 내가 매니저 출근 시간 알려주면서 "알았고 그때 와서 다시 말하라."는 말만 앵무새 처럼 반복하며 벽보고 얘기하는 기분 만들어 보냈는데 후에 매니저에게 물으니 아무 얘기 들은 바는 없었다고 한다.

사실 그때는 나 때문에 괜히 일 커지는 거 같아서 너무 무섭고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이 일로 일하는데 지장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이번 일로 오히려 나에 대한 매니저의 신임을 알게 된 계기가 되긴 했었다.

그래도 여전히 bar에서 취해가는 사람들 상대하는 건 싫다.

“ 야 이 나쁜 아저씨야 , 술 작작 마시고 니 앞가림이나 잘해.”



#3. 이건 최근의 일이다. 지금 일하는 곳은 65세 정년을 앞두고 계신 분들도 여럿 계실 정도로 직원들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일단 큰 도시가 아니라서 지금 본인들이 하는 말이 성희롱인지, 인종차별인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고 그런 류의 농담하는 걸 젊은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쿨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진짜 별로지… )

잘 챙겨주고 예뻐해 주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잘 따랐었는데 어느 날  같이 일하는 호주 언니가 자기 노안 안경을 안 가져와서 글씨가 안 보인다고 대신 봐달라고 하는 그 소리를 듣고 이 할아버지가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을 손동작까지 하면서 하고 본인의 인격을 갉아 드셨다.


“ 너는 눈이 위로 크고 얘는 눈이 옆으로 찢어져서 더 잘 보이나?”

.........(정적)..........


눈치도 없고, 맥락도 없고, 개념도 없는 이 발언에 드디어 내가 입을 뗐다.


“That was such a racist language.”


할아버지의 말에 다들 ‘허걱’ 하며 내 눈치를 봤고 평소 세상 발랄한 내가 순간 정색하며 저렇게 말하니 멋쩍게 웃으면서 본인의 발언이 적절치 않았음을 눈치채신 듯 그 이후로는 아직까지는 관련 발언은 없다.

나랑 잘 지내왔던 분이고 평소에 험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속으로는 차별이 담긴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 드러나서 좀 많이 실망스러웠다.


“롭 할아버지, 지금 세상이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고백하는데, 한국에서 지낼 때, 화장품 가게에서  중국인인 듯한 직원에게  ‘씻을 때 미끌거리지 않고 뽀드득뽀드득 한  폼클렌징’을 추천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엉뚱한 제품을 추천해줘서 내가 다른 사람을 찾았던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라 여기고 한국인을 찾았던 거 같은데 내 표정이나 내 태도가 어땠었는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자리를 빌어서 내가 한국에서 알게 모르게 상처 주는 언행을 했을 수도 있는 외국인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수취인이 불분명한 사과는 전해 지지는 않을 테니 한국에서 오늘 하루도 눈치 보고, 애써 웃으며 고된 하루를 보냈을 꿈을 위해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심심한 응원을 보낸다.  내가 그분들의 한국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의 예로 혹은 그날의 일기에 거론되지 않았기를 바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