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지내는 동안 내가 없는 사이 급진적인 발전을 한 배달 음식의 세계에 반해서 자주 시켜 먹었는데 그때마다 30분을 달려온 배달임에도 맛 좋은 음식은 물론이고 함께 따라오는 부수적인 부분들에서도 감격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있는 호주는 식자재를 공급하는 업체, 직원들 유니폼을 제작하는 업체, 식기 류를 구입할 수 있는 업체들의 종류가 거의 한정적이어서 몇몇 본인의 캐릭터가 뚜렷한 곳을 제외하고는 어느 음식점을 가나 비슷한(거의 같다고 할 수 있는) 유니폼에 어디서 많이 본듯한 식기 류들, 식자재 배달을 하는 트럭을 따라가다 보면 온 동네 음식점들은 다 돌고 있는 것을 볼 정도로 음식점들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한국은 배달 음식에 딸려오는 나무젓가락 하나, 비닐 뜯는 칼 하나 허투루 오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비닐 뜯는 칼이 오는 것도 신기한데 거기에 하트 스티커가 붙어 있기도 하고 예쁜 색으로 입혀져 오기도 했고 사장님의 손글씨가 적힌 메모를 함께 보내주기도 했다.
하긴 사람들이 보지도 않는 컵라면 바닥 부분에 “힘내라! 대한민국” 이 쓰여 있기도 하는데 뭐…
역시 만만한 나라가 아니야…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은 기본이고 ‘오늘도 힘내세요.’, ‘장아찌를 김밥에 올려 드시면 더 맛있습니다.’ 등등 다양한 문구들이 적힌 나무젓가락 포장지를 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라는 문구에는 “네! 고맙습니다.”라고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먹기를 시작하기도 했다.
하다 하다 이런 것도 신경을 써야 하는 한국 자영업자들의 피로도가 느껴져 안쓰러운 한편,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도 뭔가를 표현하려고 하는 한국인들의 열정과 노력에 감탄이 나왔다.
한국에서 깔끔하고 잘 정돈된 음식들만 먹다가 호주로 돌아오니 자연 그대로의 음식들이 새삼 눈에 많이 들어왔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시즈닝 처리가 되지 않은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들 뿐 아니라 얼마 전 사 먹은 치킨에서 또 한 번 찾아볼 수 있었는데 같이 튀겨져 나온 닭 털이 바로 그 예이다.
프랜차이즈인 KFC 치킨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 컴플레인을 하면 "응? 닭털이 왜?" 라며 오히려 내가 이상한 취급을 받았었기 때문에 웬만해서 치킨은 사 먹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돌아온 뒤 잠시 망각하고 사 먹었다가 비로소 깨달았다.
'아, 맞다. 나 여기 호주였구나.'
그래... 비닐 뜯는 칼은 무슨, 닭털도 안 뽑는 나라인데...
한국에 떨어진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의 일이었다. 호주에서는 병원이든 은행이든 업무를 볼 때 직원들과 간단한 small talk을 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인 반면, 한국에서는 따로 친분이 없는 한 업무에 필요한 얘기 외에는 업무를 방해하는 것 같은 분위기라 좀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호주에서의 습관이 남아 있던 나는 “어머~ 손톱이 예쁘네요.” , "4월인데 날이 많이 춥네요.” 등등의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어서 눈치를 살폈지만 친절한 말투는 장착하고 있지만 눈도 마주칠 새 없이 바쁜 직원들과 쉴 틈 없이 울려대는 나를 부르는 113 번호 알림은 스몰 톡 따위는 개나 주고 외국에서 온 티 내지 말고 사람들 하는 대로 튀지 말고 공장의 기계처럼 움직이라는 듯했다.
스몰 톡에 대한 욕구를 꾹꾹 참아내고 도착한 호주 공항에서 신고할 물건에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멸치 볶음'을 작성하고 따로 불려 갔다. 가지고 온 fish가 뭐냐는 질문에 "Mum’s seasoning small anchovies"라고 대답하자마자
“ 묠. 취. 보. 큼?”
이라고 한국말로 하면서 자기 딸 친구가 한국인이라서 집에 초대받아서 먹어봤다는 둥하면서 ‘묠취보큼’에 대한 썰을 한 보따리 풀어놓기 시작했다. 낯선 이와의 스몰 톡이 너무 반가운 나머지 나 역시 4년 만에 먹어본 멸치볶음이라 안 가져올 수가 없었다는 둥 다른 음식도 가져오고 싶었지만 다른 거 쇼핑하고 나니 가방이 꽉 찼다는 둥 하면서 이른 시간에 도착한 비행기 덕분에 한가했던 공항에서 하하 호호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는 가방은 열어보지도 않고 엑스레이만 하고 통과시켰다.
무섭기로 소문난 공항 세관 직원들도 대단히 신경 거스를 일이 아니면 농담을 주고받기가 가능하고 필요한 얘기보다 쓸데없는 얘기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는 호주라는 나라의 특유의 여유로움은 공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건강 검진받는 3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내내 눈치를 살피다가 근질근질 거림을 참지 못하고 용기 내어 한마디 했었다.
"저 오늘 아침에 대장 내시경 물 마시느라 죽을 뻔했어요ㅠㅠ"
스몰 톡의 기본인 날씨 등과 같은 지금 상황과 완전 동떨어진 얘기를 하면 당황스러워할까 봐 최대한 검진과 관련된 얘기를 생각해 내어 한 말이었다.
그랬더니 참한 얼굴을 한 직원이 차트 작성을 하면서 나를 보지도 않고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아, 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