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아침 일정을 마치고 오후에 시간이 남아서 가족들도 볼 겸 집에서 낮잠을 자다가 잠에서 막 깨어날 때 즈음 하교를 한 조카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 이모는 언제 와요?”
홀로 지낸 시간이 워낙 길었던데다 다들 계획적으로 직장에, 학교에 가야 하는 상황 속에 불규칙적으로 놀고먹고 있는 내가 방해되기 싫어 숙소에서 지내고 있는 동안 언제든 집에 갈 때면 조카는 항상 나에게 안겨 나를 올려다 보며,
“ 이모 오늘 자고 갈 거예요?”
“ 이모 오늘 자고 가요~.”
라고 말해주곤 했다.
아이들을 예뻐하는 시간이 오래가지 않는 ‘나’라서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간단한 선물 하나씩 안겨주고 만날 때마다 잠깐잠깐씩 귀여워해 준 게 다인데 그런 나를 아쉬워하고 기억해 준다는 게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서우야, 너의 가지 말라는 그 한마디가, 팔벌리면 달려와 안기는 작은 몸에 가득 담은 너의 그 온기가 내가 밤새 술을 마시고 와도 그 아침에 학교를 데려다 주고 약속을 미루면서 까지 하교를 함께 하게 만든거란다. "
# 모처럼 묶여있는 소속감 없이, 돌아가야 하는 의무감 없이 한국에서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하던 시간들이 마무리되어갈 즈음, 다시 ‘혼자’로 돌아가야 하는 두려움이 밀려오던 어느 날, 세상 평온하게 애착 인형 ‘몰리’와 꽁냥꽁냥 거리며 뒹굴고 있는 세 살 반짜리 조카를 불러 세웠다.
“인우야, 이모가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뭔데?”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하길래 다시 물었다.
“인우야, 이거 비밀인데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뭐가 비밀이야?”
비밀이라는 말에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인우야, 이모가 나중에 결혼 못하고 혼자 늙어가면 어떻게 해?”
.
..
…
“음…… 그럼 나랑 살면 돼.”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몰리와 엎어지는 인우.
순간 꼬끝이 찡해오는 나.
아무 기대 없이 한 얘기였는데… 그 한마디에 괜찮아졌다.
# 내일 아침에 일어나기를 염원했던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뒤늦게 단잠에서 깬 작은 조카가 밤늦게 숙소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시려는 어머니와 함께 하고 싶다며 신발을 신고 나갈 준비를 했다.
꽤 길었던 단잠이 개운했는지 어머니 손과 나의 손을 한 손씩 잡고 가볍게 폴짝거리는 조카의 기분에 맞춰주려 어머니와 나는 손 그네를 태워주기 위해
하나, 두울 ~
구호를 세는데 조카의 옷소매와 겹쳐 잡고 있던 내 손이 그만 미끄러졌다.
‘셋’을 기다리며 힘껏 날아오를 준비를 한 조카는 내 손을 놓침과 동시에 어머니 쪽으로 빙그르 돌아 어머니 다리 사이로 넘어졌다.
깜짝 놀라신 어머니는 나를 질책하시고 나도 놀라고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며 연신 미안하다며 아이의 상황을 살피었다.
또래보다 작은 아이,
작년까지는 너무 순하고 예뻤던 아이,
올해는 모든 대답이 ‘아니야.’,’ 싫어.’로 바뀌고 누나의 모든 것을 독식하려고 해서 나의 육아에 대한 있지도 않던 의욕을 모두 사라지게 한 아이,
두 개 있던 누나의 쿠키를 먹고 싶다고 우겨 대서 하나를 나눠줬더니 두 개를 다 먹고 싶다고 빽빽 울어 대는 바람에 결국 다 뺏겨버리고 엉엉 우는 누나를 뒤로 한 채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한입씩 번갈아 먹던 그 아이…
“아이쿠, 나는 괜찮아.”
요즘 지나가다 슬쩍 부딪히기만 해도 일단 “으앙” 소리부터 냈던 그 아이가 정말 자지러 지게 울어도 내가 백번, 만 번 미안했던 그 상황에서 주섬주섬 어머니 다리를 짚고 일어나면서 ‘나는 괜찮다’며 다시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더듬는데 너무 고마워서 그만 눈물이 났다.
아무렇지 않게 다시 도도거리며 발걸음을 맞추는 조카에게
“인우야, 너는 지금 너의 그 한마디가 이모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르지…?"
라고 말하자 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셨다.
너희는 모르지..? 효도는 지금 이 나이에 다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