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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cura Mar 31. 2022

번역가의 존재감

작가와 번역가 모두가 완벽할 때

마른 갈색 이끼를 몸에 걸친 벽돌 몇 장이 녹슨 적의(敵意)를 품은 채 손과 얼굴을 할퀴는 잡초들 틈에 조용히 웅크려 있다. 비바람에 깎여 더 이상 벽돌을 지탱하지 못하는 흙더미 몇 뭉치가 이 빠진 잇몸처럼 둥그스름하다.

                                                        한사오궁 <귀거래> 중


책을 읽으며 번역가의 존재감을 작가의 그것만큼 강하게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한사오궁의 <귀거래>를 읽는 동안 연신 번역에 감탄을 하며 책장을 넘겼다.


어쩌면 이젠 번역가를 직업이라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저 저명한 중국의 작가를 잘 몰랐던 나의 무지함도 일조를 했을 것이다. 아니다. 번역을 시작한 후 처음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잘 모르는 중국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도 아니다. 이건 정말 번역이 뛰어나서라고 밖에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기장이든 블로그든 내 것 어딘가에 적어서 간직하고 싶은 문장이 매 페이지에 한 두 문장씩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너무나 당연히 작가의 필력이겠지만, 위대한 작가의 필력도 제대로 옮겨지지 못하면 절대 이렇게 반짝일 수 없다. 그 반짝이는 보석을 원래의 밝기 그대로, 원래 크기 그대로 옮기는 능력이라니... 완벽한 동시통역이 불가능한 것처럼 휘황찬란한 원문을 조금의 굴절도 없이, 일말의 손상도 없이 그대로 옮겨놓은 번역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가능한 거였구나...


작가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호감만큼(이 작가의 다른 번역가 작품에 대해서는 별 기대가 되지 않는 걸 보면, 아마도) 그 보다 더 이 번역가에 대해 강한 호감과 부러움이 느껴졌다. 백지운 번역가의  다른 역서를 검색해 보았다. 동일한 작가의 에세이 <열렬한 책 읽기>가 있었다.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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