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거와 많이 다른 일본-11>>
누가 보더라도 닮았다. 구 서울역과 도쿄역 말이다. 식민지 시기 일본인들이 만들었으니 당연히 그렇겠지라고 넘어가려 해도 역시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건 숨길 수 없다.
영 개운치 않은 이유는 도쿄역이 그냥 단순한 하나의 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거대한 역의 출구로 동쪽 편인 야에스 출구와 서쪽 편인 마루노우치 출구가 있지만, 1914년 건립 당시에는 서쪽인 마루노우치 출구만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 앞에 바로 궁성, 즉 일왕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에 도착한 사람들은 출구로 나오자마자 궁성을 바라보며 저기에 일왕이 살고 있다고 강제로 느껴야 했다. 누구든 도쿄역에 오면 이 과정을 비껴갈 수 없도록 역사를 배치한 것이다. 식민지 시기 도쿄역에 도착한 수많은 조선인들도 이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즉 도쿄역은 일반인들의 역이기 이전에 일 왕실의 역이었다. 마루노우치 정중앙 출구는 일 왕실 전용이었으며, 일반인들은 그 오른쪽 출구를 이용해야 했다. 지존 일왕에 복종하고 그 권위에 충실히 따르라는 세뇌를 벌이는 공간이었으며, 감히 제국 일본에 저항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말라는 압박 공간이었다.
그리고 11년 뒤 1925년 조선에 서울역, 당시 경성역을 지었다.
경성역 설계를 담당한 이는 츠카모토 히사시 도쿄대학 교수였는데, 바로 도쿄역을 설계한 타츠노 킨고의 제자이자 스승의 뒤를 이어 일본 건축계의 거장으로 성장한 사람이다. 당시 동양에서 가장 큰 역인 도쿄역은 스승이, 두 번째로 큰 역인 서울역은 제자가 설계한, 그들만의 스토리도 생겨났다.
제국의 세뇌 공간으로 만든 도쿄역을 설계한 사람의 제자가 서울역을 만들었다는 사실, 그리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닮은꼴 건축물에서, 우리의 불편함은 정점을 찍게 된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다음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 불쾌함을 이겨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몇 년 전 이런 주장이 나왔다. 경성역은 도쿄역을 흉내 내 설계한 것이 아니라 스위스의 루체른 역을 본뜬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도쿄역을 흉내 냈든 루체른 역을 흉내 냈든 대륙 진출의 출발점 서울역을 그들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지은 건 분명하다. 일본인들이 도쿄역을 흉내 내지 않고 스위스의 역을 흉내 내 서울역을 지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서구사회에 대한 열등감과 추격의지로 활활 타올랐던 당시 일본인들에게, 유럽에서 많이 본 붉은 벽돌 건물은 하나의 로망이었다. 그 붉은 벽돌 미학의 정수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본 따 도쿄역을 만들었고, 그 바탕 위에서 또 붉게 서울역을 지은 건 분명하다.
건립 당시 도쿄역은 “마치 스모선수가 머리를 말아 올리고 옆으로 가득 손을 뻗은 요코즈나(천하장사)가 씨름판에 들어설 때와 같은 모습”으로 구상했다고 한다. 대국 러시아를 이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자신감을 한껏 드러내기 위해 서구적인 바탕에 일본적인 미와 강인함을 가미해 만든 결과가 도쿄역이라는 것이다.
그 기세 등등함이 조선의 서울역으로 이어진 게 당시의 진실일 것이다. 도쿄역과 비슷한 서울역에서 당시 그들의 침략 의지를 읽어내고, 서울역을 지으면서 어떤 기운과 주문을 불어넣었을지 짐작하고 분노하면 된다. 느끼고 기억하면 된다. 굳이 도쿄역과 서울역의 관련을 부인하며 다르다고 하지 말고 말이다. 우리는 냉철하게 직시하고 기억하면 될 일이다. 진정으로 필요한 피해자의 권리이자 의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