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과장 Jan 28. 2023

EP2 사직서를 가슴에

왼쪽가슴에 사직서를.


https://brunch.co.kr/@youngsickim/23


왼쪽가슴에 사직서를..


"아, 그만두고 싶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절대 회사를 그만둬서는 안돼'

'회사 그만 두면 뭘 한 건데?'

'직장이라도 있어야 그나마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지금 그만두고, 시간이 지나서 재취업이 가능할까?'


수많은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하루하루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말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2호선 지하철을 타고 회사를 출근했다. 오늘은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이전에 했던 업무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힘들었다. 단순한 일처리는 쉽게 가능했지만

약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에 있어서는 여전히 다른 사람에 비해 더딘 것은 분명했다.


메일을 읽고 회신하는 일들, 문서를 읽는 부분은 꾸역꾸역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었다.시간을 더 투자하면 느리지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의를 진행할 때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녹음, 노트 필기, PC로 빠른 타이핑으로 메모해 가면서, 어떻게든 집중해 보려 노력했지만 회의 후에는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  마냥 기억나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노트 필기와 PC에 적었던 내용등으로 퍼즐의 조각을 맞추듯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또 했다.


이런 생활들이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업무의 효율은 떨어져만 갔고, 나 스스로가 의도하지 않은 실수들도 하나씩 나타 가기 시작했다.

자신감, 자존감은 이미 오래전 바닥이었다.


이 외에도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실수가 잦아지다 보니 선택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부분이었다.


무언가를 처리하고 진행할 때에 선택과 동시에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실수가 잦아지다 보니 '이게 맞다.'라는 확신이 없어 선택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프로젝트를 했던 때라 퇴근 후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자주 했었다. 그날도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 의지와는 무관했다. 당당히 오늘은 집에 가야 할 것 같다는 말 한마디 못하니 병

아리였다.


하하 호호 다양한 이야깃거리로 식사 자리가 이어지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동료들과는 달리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거리를 모두 짊어지고 사는 사람의 표정으로 그 공간에 있었던 듯하다.


원래의 나는 회식에 절대 빠지지 않는 그리고 회식을 주도했던 나였었다. 그랬던 내가 식사 자리 내내 눈치 보기 십상이었고, 언제 끝날지 내내 시계만 쳐다보는 ...


이러한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괴로웠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오로지 나만이 알 뿐.

그 힘든 터널을 버티고, 버텼다. 고마운 동료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 주변에 좋은 사람들 덕분에 말이다.



당시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내가 뭔가 문제가 있음을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어떠한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냥 지켜봐 주고 기다려 줄 뿐



힘들었던 그 시기에 나는 '왜 이러한 상황이 나에게 왔을까'라고 생각하며 자책도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시기의 내가 있었기에 나는 더욱 강해졌다고 믿는다.


힘들었던 그 시기에 해왔던 메모 하는 습관은 꼼꼼한 사람으로 바뀔 수 있었고, 대인기피가 심했기에 조금은 더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배려심 많은 따듯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2세 출산을 앞둔 아빠의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