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를 갔다 왔다고 하면 뭐가 제일 좋았냐고 질문을 받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에는 두말할 것 없고
개인적으로는 카사바트요다. (Casa Batillo)
스페인어로 카사는 000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카사바트요는 바트요의 집이라는 뜻.
카사바트요는 내게 남성적인 이미지였고 나는 그를 무척 좋아했다.
호스텔 규정상 일주일 이상 머물지 못해서 바르셀로나 일정이 10일이어서 중간에 호스텔을 옮겨야 했는데 난 카사바트요 앞에 있는 호스텔로 이사를 한다.
“안녕, 바트요씨.”
아침에 굿모닝 인사를 밤에 굿 나이트 인사를 매일 같이 했다.
매일 밤, 다음 날 먹을 장보기를 마치고 장바구니에서 사과를 꺼내어 쓱쓱 닦아 한입 가득 베어 물고 바트요씨를 바라본다. 밤공기를 가로질러 그와 함께 있는 그 시간이 행복하다. 쓸쓸함과 슬픔도 밀려온다.
짙은 까만 밤하늘 배경으로 보이는 환한 빛. 그 빛 사이에 바트요씨가 어떤 모습일지 너무나 잘 아는 나는 그렇게 앉아서 하염없이 상상을 한다. 바트요씨의 거실은 어떻더라, 문 손잡이는? 아가미 같은 바람구멍은?
처음 우리의 만남은 밤이었다.
카사바트요의 매직나이트 쇼 정보를 접하고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서 방문했다. 예약이 2인 입장만 가능해서 1인입장하면 안 되는지 이메일로 문의했더니 1인 입장인 경우에 확인하고 나머지 1인 금액을 환불해 준다고 회신이 왔다. 기분 좋게 2인을 구매하고 나중에 환불 받는다. 사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유랑 온라인 카페에 올려서 공연을 같이 즐길 수 있는 1인 동행을 구하려 했는데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할 여유도 없이 돌아다닌 내겐 알아보는 시간이 없어서 혼자 간다. 카사바트요를 기대했기에 일찍 들어가서 이곳저곳 구경하고 공연을 보고 싶었지만 입장 시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어서 한 시간 남짓 보고 공연을 봐야 했다. 공연보다는 카사바트요를 오롯이 느끼는데 집중했기에 모두가 자리에 착석하고 한 뒤에 도착한 까닭에 맨 뒤 구석진 자리를 배정받았는데 그것도 꽤 괜찮았다.
카사바트요 매직나이트에 참여하는 팀들의 음악을 웹사이트에서 사전에 모두 듣고 그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팀이 오는 날로 예약했다. 다행히 원하는 팀이 공연하는 날과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날짜가 맞아서 예약했는데 춤과 음악을 결합한 팀으로 흥겨웠다.
한 분의 여성무용수와 두 분의 남성가수들.
노련한 팀이어서 관객석을 의식하여 배려하면서 양쪽을 돌아봐가며 노래를 불러준다. 정말 알찬 공연으로 1시간 정도였는데, 예상했던 건 한국과 달리 야외공연장이니까 모든 관객들과 즐기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보는 공연이어서 아쉬웠다. 관객들을 착석시키지 말고 자유롭게 일어설 수 있도록, 공연무대가 좀 더 높았더라면 어떠했을까 여러 가지가 비용대비 아쉬웠다. 까바 한잔에 공연 그리고 카사바트요 입장이 포함된 금액으로 1인당 5만원 정도 되는 금액인데 <카사바트요> 입장료는 3만원이 넘으니까 비싼 건 아닐 수도 있다.
매직나이트 공연이 없는 시간에 까사바트요를 입장하면 약간의 시간제한(암묵적 시간)이 있긴 하지만 집 내부를 마음껏 볼 수 있다.
그래서 다시 오리라 마음먹는다. 예약 전에 카사바트요의 직원을 통해 빛이 가득 들어오는 시간대를 확인한다. 우연히 알게 된 직원은 한국어머니와 까탈루냐 아버지(스페인이 아니라 까탈루냐를 강조함)를 둔 청년 여성이었는데 나와의 만남을 특별하게 여겼다. 내가 재방문의사를 말하니 놀라면서 오게 되면 알려달라고 했고 다시 가던 날 그녀의 인스타주소로 방문했음을 알렸다. 아쉽게도 그녀가 쉬는 날이어서 만날 순 없었지만 따뜻하게 오갔던 인사말이, 그 낭랑한 서툰 한국말이 기억난다.
오후 시간대로 카사바트요 씨를 다시 만났다. 다시 봐도 좋고 좋았다.
카사바트요에 들어갈 때 오디오가이드를 귀에 꽂고 입장해야 하는데 첫마디에 깜짝 놀라고 만다.
“환영합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을 만지실 수 있습니다.”
만질 수 있다고???
보통 박물관, 미술관은 만지지 마시오가 불문율인 곳인데 바트요씨는 만지라고 한다.
카사바트요를 두 번째 방문하기 전이었을까? 가우디가 만든 카사밀라를 방문했는데 거기에 가우디의 철학과 그가 만든 작품들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영상을 통해 잘 나와있었다. 특히 카사바트요의 손잡이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의자의 구성을 어떻게 했는지. 공기통 구성을 물고기의 아가미에서 얻은 것 등이 인상적으로 담겨있었다.
난 카사밀라에서 깊이 만났던 가우디를 떠올리며 모든 것들을 만지며 영상 촬영을 했다. 나만의 내밀한 만남이었다.
출렁이는 바다와의 만남.
깊은 바다에 와 있는 느낌, 출렁이는 물을 느낄 수 있다.
빛과 조형물 사이에서 깊은 심연이 다가온다. 더 깊이 느끼고 싶어서 나만의 방식을 찾았다.
관람자가 없을 때 빠르게 짧은 통로를 걷고 또 걷는다. 그리고 재빨리 폰으로 찍는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방식으로 비밀스럽게 만나는 그 희열이란.
카카오 프로필에 업로드해 둔 까닭에, 비록 폰이 도난당했지만 , 첫날의 바트요씨에 대한 영상하나가 남았다.
밤중의 카사바트요의 심연
오후, 카사바트요의 심연
들어서면 보이는 모든 것들이 예술작품이다. 당시의 시대상, 바트요 가족의 이야기. 그들이 과시하기 위해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들. 집 내부에서 창밖으로 보였을 풍경들을 상상하면서 본다. 보고 또 보고 느끼며 하나씩. 사진촬영하고 벽난로의 온기가 전혀 없는데도 느껴지는 온기 불빛 하나, 전구하나 울퉁불퉁하게 깎은 나무문, 타일을 깨서 붙일 때 작업자들에게 하나씩 지시했던 섬세함. 아마도 작업자들은 작가 가우디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한 요구되는 섬세함에 짜증이 났을 테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 속 구성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가우디는 고통을 느꼈을 테지
타일 조각은 무척 작게 잘게 부서져있었는데 가우디는 그걸 하나씩 원하는 곳에 붙여달라고 했단다. 스스로를 가우디의 손발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인내심이 바닥이 나지 않았을까 싶다.
계단도 곡선, 오르는 계단의 손잡이도 곡선인데 다른 건축물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것 투성이어서 난 같은 계단을, 그 계단의 손잡이를 만지며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물론 방문객들의 동선과 부딪치지 않도록 그들이 지나가고 움직였다. 대다수가 1시간 만에 돌아봤다면 난 2시간 가까이 그곳에 머물렀던 것 같다. 작은 정원. 그래, 2층의 작은 정원, 거실 통창으로 나가는 문이 예술이고 정원의 벽타일도 아름답다. 청색 타일로 꾸며놓았는데 바다 이미지를 떠오른다. 작은 의자 몇 개가 자유롭게 놓여 그곳에 앉아서 아이유의 노래를 듣는다. 청량한 그녀의 목소리와 바트요의 푸른빛과 햇살이 잘 어울린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서 같은 노래를 몇 번을 들었다. 바다 콘셉트의 집에 살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찾아가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그런 공간이다.
거실의 창문. 창틀이 곡선으로 매력적인데 그 시대에 이렇게 현대적으로 내리고 올리는 창문을 생각했다니 신기하다.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자동차 주차공간처럼 마차의 주차공간을 1층에 설계한 것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최초의 집을 만든 것도 대단하다.
가우디의 머릿속이 궁금했고 그가 보고 느끼고 만났던 모든 사물들, 경치들이 궁금했다.
자그마한 계단을 촘촘히 오르면 나타나는 옥상. 아, 탄성을 지르게 되는 옥상도 엄청난 작품이다.
매직나이트일 때 밤 모습을 보았지만 낮에 다시 만나니 또 다른 즐거움이다. 무더위로 따뜻해진 물을 벌컥 들이켜고 의자에 앉아서 "바트요 옥상 멍때리기'를 시도한다. 기사가 용을 무찌르는 형상을 만든 것이 바트요의 특징이라서 옥상의 거대한 굴뚝, 타일작품이 외부의 지상에서 봐도 높은 고층임에도 보일 정도로 커다랗다.
해를 가릴 수 없어서 덥지만 옥상 가운데에 늘어선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어서 충분히 좋았다.
뜨거운 햇살아래라도좋아서 더 머물고 싶지만 카탈루냐 음악당에 예약이 되어 있어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