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리어 클래스 Oct 27. 2024

가슴 벅찬 평안을 준 몬세라트

진로이직상담사의 70일의 배낭여행



몬세라트와 시체스를 묶어서 10시간 투어로 겨우 3만9천원 밖에 하지 않는 투어패키지가 있었다.(발음은 몬세랏 인데 몬세라트라고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몬세라트라고 적는다)

바르셀로나 가이드에 의하면 투어회사 사이에 경쟁이 붙어서 말도 안될 정도로 내려간 가격이니 이번이 기회라고 했지만 난 각 장소들을 오롯이 느끼고 싶었다. 하루에 다 묶어서 보는 건 나와 맞지 않는 일이다.

여행을 통해서 성향을 잘 알 수 있었는데 난 스쳐가는 체험보다 진하게 온몸이 물드는 경험을 원했다. 

몬세라트를 혼자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투어 안내부스에서 현지인은 “혼자 갈 계획인가요?” 묻고는 친절하게도 한국어로 된 종이를 한장 건네 준다. 기차시간표와 간략한 설명이 있는데

여행지에서 한국어로 된 설명들은 분명히 아는 언어지만 가보지 않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언어 마냥 이해할 수 없었다. 

검은 성모상을 볼 수 있는 시간과 소년합창단의 합창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연속적으로 맞춰서 예약해야 한다. 그 날짜 전후로 숙박을 언제 하느냐를 고민한다. 가보진 않았지만 각종 설명에서 만난 몬세라트가 근사해보여서 수도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몬세라트 수도원에 이메일로 연락을 취하면서 1박을 할 마음이 부풀어오르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관람시간때문에 갑자기 1일이내 갔다와야 하는 일정이 된다. 

몬세라트 수도원에서의 숙박, 정말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었을텐데….. 너무너무 아쉬운 마음은 도착해서 더 강하게 다가온다. 몬세라트 산의 지형은 이제까지 봐왔던 산들과 전혀 달랐다.  가우디가 영감을 얻은 이유를 알 것 같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압도되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난 항상 운이 좋았다. 

바르셀로나 미술관에서도 운좋게도 특별 요청이 있으면 보여주는 그림을 (프리미엄급)보게 되는데 방하나 가득 몬세라트 산세가 그려 있었다. (사진 불가라서 눈에만 담았다)

몬세라트 산의 웅장함과 그 아래 사람들의 역동으로 가득찬 카니발 같은 혹은 전쟁터 같은 걸음걸이가 인상적이었다. (바르셀로나 미술관에서는 요청하는 사람에 한해서 특별히 보여준다)

궁금했다. 어떤 산이길래 저렇게 부분일 수 있는 산을 중심에 그리며 작가는 찬미했을까? 

그런데 몬세라트 산에 도착하니까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이제까지 내가 봐온 산과는 사뭇 다르다. 돌산. 거대한 돌산이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돌산이라는 게 한국의 북한산, 관악산과는 달랐는데 돌이 일정하게 둥글게 곡선으로 만들어졌다. 


산을 오르고 싶어서 거리가 멀어 보이는 길을 택한다. 

그 땐 몰랐지만 좋은 선택이었다. 걷고 또 걷고 맞는 길인가? 이 방향이 맞는가 의문스러운데도 걸어가본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서 사람들 소리가 들리면 안심하면서 걸어갔다. 절벽에 걸터앉아서 사진을 찍는 분들도 눈에 띄었는데 아무리 사진이 멋지게 나와도 시도하고 싶지 않은 포즈였다. 외국여자청년 혹은 고등학생들이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조금 후에 나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몬세라트 정상으로 계속 오른다. 그러다 정상 바로 직전에 다다른다.

고요하고 고요해서 적막하다. 그런 장소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신비한 경험이다. 그 흔한 새소리, 물소리도 들리지 않다. 사람들의 소리는 더더욱 들리지 않다. 그 적막함을 모두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소음속에 내가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소리가 없는 세상이 존재하다니.

그 속에 내가 있다니 감격스럽다. 내 존재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싶진 않았지만 배가 너무 고팠기에 서둘러서 점심상자를 열었다. 과일, 요거트, 삶은 계란이 알차게 인사한다. 빵, 밀가루를 최소화하고 싶었기에 여행기간 동안 건강식으로 먹으려고 노력한다.

가볍게 먹은 식사 덕분에  기분좋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조금 더 높은 정상을 향해~

사실 정상까지 오를 생각은 없었다. 길이 너무 험해서 정상을 오를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평범한 운동화라 발을 헛디디면 내려올 때 힘들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정상에 올랐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 스쳐 내려갈 때 가볍게 입은 신발과 옷차림이 (그들이 정상을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용기를 주었다.

저런 신발을 신은 사람이 오른 정상이라면 나도 갈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든다.

올라봐야겠다는 강한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힘이 난다.

드디어 정상. 아무도 없다. 어떤 외국 중년분이 홀로 뒤이어 왔지만 아주 잠시만 머물고 내려가서 혼자 있을 수 있었다. 방문자들의 글씨가 여기 저기에 적혀 있었다. 아, 내가 오르기 어려운 곳에 온 건가 보다. 맞은편 산이 있었는데 그 산은 암벽타기 장비를 갖춘 사람들이 암벽을 타고 있었다! 물론 그 산은 암벽타기 전용으로 보였다. 세상에. 그런 돌산을 오른 건가? 그나마 이 산은 등산용이구나.

약간의 안개가 있어 희뿌옇게 산허리가 내려다 보이고 건너편의 산들이 나란히 펼쳐진 전망.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곳. 산의 높이 때문에 내려다 보이는 모든 것들은 화려한 느낌인데 

여전히 적막한 그곳의 소리 없음과 어우러져서 더욱 신비한 분위기였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7시에 저녁식사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내려가야했다.

사랑하는 건축물(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다시 보러갈 여유를 가지려면 정상에서 떠나야 했다.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이곳을 기억할 수 있도록 지역고유특산물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염소치즈로 만들어진 염소치즈케이크. 맛에 대한 후기는 없었지만 도전하기로 한다. 맛있다! 성공이네. 바람이 너무 거세서 겉옷을 준비해오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전망을 보기 위해 레스토랑 외부에 있는 전망대로 나갔고 그 또한 괜찮은 선택이었다.

정상을 내려가면서 한국인 일행을 만나 바르셀로나로 가는 기차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여자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도 놀라운데, 70일이라니, 게다가 몬세라트 정상까지 홀로 갔다온 것에 대해 놀라워한다. 몬세라트 정상을 남자 둘이 같이 올랐는데 여성의 몸으로 혼자 오를 생각을 했다는 게 신기하다고 어떻게 올라갈 생각을 했느냐고 묻는다.

정상. 끝이 있다면 한 번 오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분들은 놀라워하는 상황이 내겐 아무렇지 않은 걸 보며 나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끝까지 가는 사람인가’ 보다. 몬세라트를 혼자 갈 수 있을지 고민했으면서 결국 정상까지 올라가다니.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몬세라트에서의 가슴 뛰고 평온해지는 시간을 만나지 못했겠지. 해보지 못한 것에 도전하는 모든 일이 나를 가슴뛰게 한다.

그분들은 나를 흥미로워 했고 같이 바르셀로나 FC를 보러가자고 권유하는데 그렇게 했더라면 절대절명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아무튼 그 땐 몰랐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