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개과정
장기나 바둑을 둘 때
초급자와 중급자가 두는 수는 다르다.
그 수 자체로 그 사람의 실력을 드러낸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데,
욕설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자체로 그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 이와 같다.
하지만, 중급자와 고급자가 두는 수는
그 자체로는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수의 의미가 무엇인지,
향후에 어떻게 전개하기 위해서 둔 수인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다.
논쟁적이거나, 격앙되거나, 부정적인 대화에서
상대방이 뱉는 말들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지켜보면,
그 사람의 대화 수준이나 진의를 알 수 있다.
이해한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함인지
상대의 말도 옳다고는 하지만,
상대의 잘못을 들추기 위함인지
특별히 바라는 것은 없다고 하지만,
조목조목 따지기 위함인지
괜찮다고는 하지만,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기 위함인지
앞으로 신경쓰겠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함인지
전개과정을 잘 지켜보면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에만 집중하면,
그것이 중급자의 수인지,
고급자의 수로 가는 첫 단추인지,
감추어진 하급자의 수인지 알 수 없다.
그가 뱉는 표면적인 말 자체보다는
전개되는 과정을 잘 지켜봐야 한다.
아...
이 사람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아...
이 사람은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날 이용하는구나.
아...
이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것을
감추려하는구나.
아...
이 사람은 나보다 우위에 서려고
안간힘을 쓰는구나.
아...
이 사람은 인정이나 사과를 하기 싫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구나.
이 많은 판단들은,
주고받는 표면적인 말들이 아니라,
전개되는 과정을 조금 더 멀리서
지켜봐야 알 수 있다.
많은 시간들을 함께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며,
갈등도 마주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그 사람이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잘 지켜봐야 한다.
주도적으로 화해를 만드는 사람인지,
흥분해서 다투려는 사람인지,
일방적으로 억누르려는 사람인지,
회피하며 숨는 사람인지 말이다.
부부생활의 절반은
대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비극적 결말의 시작은
언제나 대화이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시작 역시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부생활의 절반을 빚어내는 상대방이
대화를 어떻게 빚어내는 조각가인지
시간을 두고 충분히 알아야 한다.
나머지 절반을 빚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아야,
함께 멋진 조각품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