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전에 불행해야 행복을 알까요?

너무 고통스러운 방법입니다.

by 영순

자기 계발서,

심리학서,

철학서에 종종

이런 말들이 있다.


행복을 위해서

불행은 필수적이라고.


불행함을 느껴야

그 반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거라고.


마치, 차가운 물에 손을

담궈 봤어야,

따뜻한 물의 온기를

느낄 수 있고,


목이 말라봤어야

물 한잔의 시원함을

알 수 있다는 거다.


이런 글을 읽으면,

아하~ 내가 겪고 있는

지금의 고통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훗날 다가올 좋은 일을

더욱 행복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거구나.


이런 생각들이 들어서,

잠시, 반짝,

위안이 생기고,

희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이내 다시

절망하게 되는 이유는,

나의 부모,

나의 가족들,

나의 재산,

나의 능력,

나의 직장,

나의 일상은

거의 바뀌지 않으므로,

바꾸려고 해도,

쉽게 그럴 수 없으므로,

내가 몸을 담그고 있는

찬물은 한동안, 아니, 더 오래

지속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꼭

찬물에 오래 있어야,

짧은 따뜻함도

더욱 따뜻하게 느끼게 될까?


상당 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린,

찬물에 들어가는 것 없이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한다.


따뜻함은 찬 걸 느껴야

반대급부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인데 말이다.


우리의 일상으로 비유해보면,

고통스럽게 지내다가

성공하고 행복한 것보다,

평온한 보통의 삶이

오래 유지되다가

중간 중간 엄청난 행복이

생기길 바란다.


아니, 어린아이처럼

그냥 마냥 매일 매일

행복하길 바란다.


얼마나 지금의 삶이

힘들었으면....


삶이 평온하고

큰 문제가 없으면,

큰 행복은

쉽사리 찾아오기 힘들다.


부족할게 없고

평온한 삶인데

큰 행복과 성공이

뭐가 있겠는가.


복권 1등 당첨,

파격적인 몇단계 승진,

개업 일주일만에 대박,

준비도 거의 안했는데 합격,

이런 극단적인 행운 말고는

없다.


이건 행복이 아니라,

행운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은 고통을 직전에

느꼈어야 하는게

우리의 감각이고,

우리의 인지 시스템이다.


하지만, 정말이지,

난 고통없이 행복하고 싶다.


이렇게 되려면,

경우의 수는 딱 한 가지다.


고통없이 평온한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는 유일하면서,

현실적인 방법은,

평온한 삶을 유지하는 가운데,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다.


커피 한 잔에,

반가운 문자 하나에,

조금 이른 퇴근에,

딱 하나 남은 주차자리에,

마침 내려온 엘리베이터에....


이렇게 작은 것을

여러 번 나눠서 느껴야,

그것을 하루치 계산할 때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고,

그 하루들을 31일 모아서 합산할때

한달을 더 크게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다.


엄청난 행복은 직전의 고통없이는

느낄 수 없는 것이

정해진 것이라면,


한 번에 대박 행운이 없다는 것이

정해진 것이라면,


작은 기쁨, 즐거움, 위로 들을

여러 개 모아서,

합산한 것을 기준으로

행복하다고 느껴야 한다.


작은 즐거움이 10개 있었던 하루를

잠들기 전에 돌이켜볼때,

"오늘 하루는 행복했는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말도 안되는 엄청난 행복은

그리 쉽게 내게 찾아오지 않음을

수십 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젠, 작은 것을

모을 때이다.


티끌 '좋음' 모아,

태산 '행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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