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라는 갑옷을 벗고

가벼워 지세요!

by 영순

부모님께 이번 명절은

가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안팎으로 힘든 일들이 많아,

가족들과 함께 웃고,

먹고, 마시며,

아무렇지 않은 듯,

괜찮은 척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마음 아플거 같아서...


안팎으로 힘든 일들을

가족들에게 털어놓고

위로를 받을 수가 없다.


그런 나 자신을 바라보며
함께 마음 아파할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마음 아플거 같아서


그래서 이번 명절은

가지 않기로 했다.


마음 다치면 안 될

소중한 나 자신과

소중한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




고등 학교 졸업하고,

부모곁을 떠나 맞은 명절 중,

처음이다.


갈 수 없어서, 못 간 것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자의로 가지 않은 적이 없다.


우리 문화가,

우리 부모님이,

우리 주변이,

꼭 그래야 한다고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오히려 힘든 것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명절은 그래서 좋은 거라고


드러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지킬 수 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것을 따라왔고.


여전히 그것을 따르고 있는

내가 바보인걸까?




타지로 나간 자식이

고향에 잘 오지도 못하다가,

유일하게 1년에 올 수 있는 두 번이,

설과 추석이던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다.


이젠 빨간 날이 이틀이라도 붙으면,

명절이고 뭐고 해외 여행으로

마음껏 즐기고 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모에게 갈 수 있다.


나는 명절이 여자들에게

힘든 것이라는

흔해 빠진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다.


명절을 도마 위에

올려놓으려는게 아니다.




가끔은 내 마음이

너무 힘들면,

"엄마~ 아버지~

이번 명절에는

못 내려갈거 같아요."라고

하는 날들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나라에선

죽을때까지

무조건,

명절에 고향 부모님에게

가야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무거운 갑옷을 입고 살아가는 건
나에게 너무 가혹할테니까




갑옷은 오로지

적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나에게 불리하다.


무겁고, 둔하고, 땀이 찬다.


명절에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은

내 마음에 갑옷을 입히는 것과 같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나 자신을 위해서,

꼭 해야한다고 여겨지는,

아니 꼭 해야하는 일들도,

거절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치유해야 할 상처를
줄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몸이 가벼운 날들도 있어야
마음이 가벼운 날들도 있을테니까


이번 명절에 못내려간다는

내 말에,

가족들 모두 그러라고 했다.


내 삶이 요즘 힘들다는 것을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느끼고 있었을테니까.


그게 가족이니까.


이렇게 배려받는 것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해도 아무 일 안 생긴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많은 힘들었던 날들,

가끔은 명절을 거르고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졌을텐데...


가여운 나 자신을 위해서,

이번 명절은

이기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보려 한다.


처음이라 서투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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