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먹과 찍먹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by 영순
부먹이냐?


찍먹이냐?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대답은

날카롭지 않게,

웃으면서,

농담처럼,

자신의 주장을 상대에게 펼치는

대표적인 물음 중 하나이다.




탕수육은 부먹이지.


뭔 소리야.
탕수육은 찍먹이지.


탕수육을 가운데 놓고,

서로 자신의 주장을

웃으면서 말하고

즐겁게 탕수육을 먹는

풍경이 그려져,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난 명백히 '찍먹'이다.


'부먹'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소스를 부어놓으면

눅눅해져서 먹기 힘들다는 둥,

소스를 부어놓지 않으면

바짝 말라서 먹기 힘들다는 둥,

이런 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찍먹'인 이유는

'부먹'인 사람들도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완벽히 옳은 주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겠지?




내가 '찍먹'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오로지,


'통제력' 때문이다.

탕수육의 소스는

'식초, 간장, 설탕'을 베이스로 만든다.


소스를 탕수육에 들이부으면,

난, 탕수육을 먹을 때 너무 시다.

신맛이 너무 강하단 말이다.


내가 먹는 음식의

소스가 준비되어 있고,

신맛, 짠맛, 단맛을

내가 원하는 만큼 조절해서

먹고 싶은데,

그것을 완전히 들이부어서

신맛, 짠맛, 단맛을

정해버리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




나는 이것을
'통제력' 상실로 보는 것이다.


마치, 비빔밥을 시켰는데,

주방장이 자신이 정한 만큼

고추장을 넣고,

그것을 전부 비벼버린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다.


비빔밥에서 고추장의 양은

먹는 사람이 정하는 것 아닌가?


만약, 비빔밥을 시켰는데,

고추장을 많이 넣은 후,

완전히 비벼서 나온다면,

과연 부먹인 사람들이

여전히 부먹을 예찬하며

부먹이 최고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순대국밥에 양념장을

주방장 마음대로 완전히 풀어서 나온다면?


순대국밥에 소금을

미리 왕창 풀어서 나온다면?


회를 초장에 찍어먹고 싶은데

주방장 마음대로

완전히 초장 범벅을 해서 나온다면?


여전히 '부먹'이 최고일지

묻고 싶다.




난 이런 점에서

'부먹'은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나는 선천적으로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부먹과 찍먹은,

통제력을 가지고 있느냐,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통제력'이란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런 연구가 있다.

직장 상사보다 부하직원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몇배나 높은 이유는

자신이 스스로 통제력을 가지지 않고,

시키는 것만 수동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이런 연구가 있다.

부하직원보다 직장상사가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몇배나 높은 이유는

아무리 지시를 하고 지침을 이야기해도,

도저히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하기 때문이라고.




즉, 부하직원은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고 시키는 것만 하기에

우울증이 걸리는거고,

상사는 부하직원이 제멋대로 하기에,

그를 통제할 수 없어 심장병에 걸리는거다.




인간은 누구나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2살짜리 아이도,

아빠가 블럭 쌓는 것을

도와주려고 하면 찡찡거리며

자신이 하려고 한다.




통제력은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것인가보다.




직장생활이,

가정생활이,

통제할 수 없는 것 투성이라면,

적어도 하루에 얼마만큼은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시간,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있어야,

숨쉬고 살 수 있지 않을까?




부먹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여!

누군가 그대들의 음식을

멋대로 비벼버리고 먹으라고 한다면,

그대들은 기꺼이 받아들이겠는가?




통제력은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하루 24시간 중,

우리는 얼만큼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