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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밥과 된밥

바꿀 수 없습니다.

by 영순

아버지는 진밥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아버지 입맛에 맞게

진밥을 하셨다.


엄마와 동생과 나는

진밥을 먹고 살았다.


우리 집의 중심은 아버지였고,

아버지가 진밥을 좋아하셨으므로.




진밥을 먹는 동안,

엄마도,

나도,

동생도,

진밥을 먹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살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엄마는 된밥을 좋아하셨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동생도 된밥을 좋아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는 진밥을 좋아한다는 것을...




나와 동생이 어렸던 시절,

진밥과 된밥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제로였다.


스스로 어떤 밥을 좋아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시절이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동생네 부부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아내가 밥을 하면

동생이 한마디 한다.


"아~ 형수가 하는 밥 진짜 못먹겠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진밥을 해요?

이게, 목으로 넘어가요?"




내가 동생네 집에 갔을 때

제수씨가 밥을 하면

내가 한마디 한다.


"아~ 제수씨가 하는 밥 진짜 못먹겠네.

아니, 이게 모래 씹는거랑

뭐가 달라요?"




아내는 내 위주로 밥을 하고,

제수씨는 동생 위주로 밥을 한다.




나와 동생이

선택을 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진밥인지 된밥인지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기호가

뚜렸해졌다.


반대편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아내는 진밥일까? 된밥일까?


제수씨는 진밥일까? 된밥일까?


우리 아이들은 진밥일까? 된밥일까?


우리 조카들은 진밥일까? 된밥일까?




세상은 그렇다.


진밥과 된밥에 대한 기호와 스펙트럼이

모두 다른 여러 사람이 섞여있는데

한솥의 밥을 해야하는 일


내가 밥을 해야될때도 있고,

내가 받아먹어야 될 때도 있다.




타협은 없다.


중간에서 만날 수도 없다.


삶의 순간 순간이,

이런 선택의 연속임을...




다름을 인정한다고 해도,

쌀과 물의 양을 맞춰야 하는 순간은

우리를 늘 힘들게 한다.


반드시, 한쪽은 손해를 봐야 하므로.


진밥과 된밥이 타협하기 위해

중간으로 맞추면,

둘 모두 만족할 수 없는게

우리 인생이다.




말이 쉬워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지,

언제나 결정을 해야하는 삶에,

한쪽은 버려야 한다.


시간이 지남과 함께

나의 선택과

나의 말과

나의 행동이

더 현명해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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