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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Jan 30. 2023

러시아인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

이 정도면 수호신 아닌가요?

고양이 좋아하세요?


러시아 사람들은 유난히 고양이를 좋아한다.

러시아에서는 집고양이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길 가다 마주치는 고양이라도 반갑게 의사소통을 한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민족이라는 건 통계적으로도 확인됐다.

전체 러시아 가정의 59%가 고양이 한마리 이상을 키울 정도라니 말이다!

러시아가 세계에서 고양이 키우는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인데, 이것도 참 이례적인 통계라 한다.

이 사실만 봐도 러시아에서는 고양이가 '반려묘'로서의 역할이 매우 큰 것임을 알 수 있다.


왜 러시아 사람은 고양이에 유독 애정을 가질까?


물론 고양이가 강아지에 비해 관리하는데 손이 덜 가고,

주인과의 관계에서 심리적 위로를 준다는 차원에서 많이 기르는 것 같다.


현 시점에서 보면 반려의 의미가 더 커보이지만,

사실 그 깊은 배경에는 역사 속 러시아에 스며든

'풍요, 수호'와 같은 고양이의 상징성에서

가치와 그 소중함인정하고 있다.


원래 고양이는 고대 루시 시절 하나의 교역품으로 바다 건너 들어왔다고 한다.

당시 외국의 야생 동물은 고가에 거래돼, 15세기까지는 고양이 가치가 건강한 황소와 맞먹을 정도였다고!


이렇게 비싼 몸값을 자랑했던 고양이는
러시아가 극한의 상황에 있을 때
민중은 물론, 성당과 미술관, 황실가까지 지켜낸 귀한 동물이었다.




(1) 성당에 사는 유일한 동물


중세의 유럽 카톨릭 국가에서 고양이는 마녀 앞잡이, 악마의 심복으로 여겨졌다.

특히, 검은 고양이는 그 불길한 기운이 짙다고 생각해 불에 던져버리기도 했단다.


하지만 정교회를 믿는 러시아에서는 그 반대였다.

수도원에 사는 고양이(출처: dzen.ru)

고양이를 깨끗한 동물로 인식했고(자기가 본 볼일도 치우는 동물이라 그런가!),

그래서 수많은 동물 중에서 고양이만 유일하게 성당을 드나들도록 예외를 뒀다.


무엇보다 고양이가 성당과 수도원의 곡식 창고를 식량 사냥꾼인 쥐들로부터 지켜냈으니,

성직자들 또한 당연스럽게 오랜 시간 고양이를 보호하며 지내게 된 것이다.


요즘도 가끔 정교회 성당에 가면 고양이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혹시라도 마주하거든, 반갑게 인사해 보자.


성당이 유일하게 허락한
고양이야, 안녕!


(2) 황실 고양이


표트르 대제의 아버지였던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1629~1676),

그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두 번째 황제다.

알렉세이 황제는 고양이가 이익을 가져다주는 동물이라 생각했다.

그가 평소 고양이와 얼마나 가까이 지냈으면, 황제의 고양이 초상화가 있을 정도다.


알렉세이 황제 고양이의 초상화. 바츨라프 홀라르作, 1663년

알렉세이 황제의 아들 표트르(1672~1725) 대제, 그가 내린 수많은 명령 중에는 고양이와 관련된 것도 있었다.


'곡식 보호 및 쥐 퇴치를 위해 곡식창고 근처에 고양이를 둘 것'


황실가에서도 역시나 고양이는 식량을 지키기 위해 가까이하면 유익한 동물이었다.


표트르 대제그 이로움을 알고,

네덜란드 상인의 집에서 고양이를 데려오기도 했단다.



(3) 카잔에서 보낸 쥐잡이꾼


쥐 잡는 효자 노릇은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1709~1761) 여제 시절에도 이어졌다.

때는 1745년, 여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당시의 겨울 궁전에 중성화된 고양이 30마리 특별 송달을 명령했다. 그때도 쥐 때문에 꽤 고생이었던 모양이다.


여제 명령에 따라 고양이는 카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보내졌는데,

이 고양이들은 모두 쥐를 잡기 위한 용사들이었다.

당시 카잔의 고양이들이 아주 능숙한 쥐잡이꾼으로 유명하다고 소문이 났던 것 같다.

카잔 고양이 민속 판화. 1710년(출처: www.theartnewspaper.ru)

그렇게 쥐 포획에 가장 능숙한 고양이 30마리가 황제의 궁정에 오게 되었고,

이들이 궁전을 장악하고 있던 쥐를 잡아들이면서 난감했던 나라 살림을 구했다.

카잔 고양이의 후손들은 아마도 지금도 궁전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러시아 도시 카잔의 바우만 거리에 가면 거대한 고양이 동상이 있다.

거만한 자세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이 고양이는 카잔 고양이를 상징한다.


겨울 궁전의 쥐를 소탕한 당시 일화를 기념해 '알라브리스(Алабрыс)'라는 이름의 카잔 고양이 캐릭터가 만들어졌고,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는 이곳에 2009년 기념비로 남겨졌다.


황제처럼 누워있는 이 고양이 동상의 배를 어루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 인기가 많다.


카잔 바우만 거리의 고양이 동상(출처: wikiway.com)


(4) 미술관 호위무사


예카테리나(1729~1796) 여제는 고양이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고양이를 예술 수집품을 모아둔 공간 에르미타주로부터 내쫓지 않고,

오히려 "미술관 호위무사"라는 지위를 부여했다.

러시안 블루(출처: classpic.ru)

여제는 실내에 있는 고양이와 바깥에서 활동하는 고양이를 구분하여 일일이 수를 세며 관리하도록 했고,

주로 방에 머무는 고양이 중에서 쥐를 잘 잡고 외모가 예쁜 것들은 간택되어 갔다.

그렇게 선택받은 고양이들은 주로 '러시안 블루' 종이었다고 한다.


고양이는 지금도 에르미타주 미술관 안팎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은 지금도 열일 중이다.

에르미타주의 고양이(출처: cz.pinterest.com)

고양이는 각자 동물여권을 소지하고 있으며, 개별 밥그릇, 잠자는 바구니도 마련돼 있다. 그야말로 오래 전부터 미술관을 지키는 일꾼으로서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는 에르미타주를 찾는 이들이 꼭 만나봐야 할 명물로 어느 새 자리잡았다.

이곳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렘브란트의 그림만 보려고 하지 말고

미술관 호위무사 고양이도 잘 찾아보시라.


(5) 생선을 맡겨도 되는 파트너


고양이는 서민 활동무대인 시장에서도 활약했다.

모스크바 중심가 '아호트니 럇' 시장에 사는 고양이는 잘 먹어서 꽤 퉁퉁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살찐 고양이일수록 더 인정받았다는 사실이다. 


이들 고양이는 그냥 먹고 뒹굴며 노는게 아니라, 나름대로 노동을 했기 때문이다.

상인들이 판매하는 상품을 지키면서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차를 마시는 상인의 처>, 보리스 쿠스토디예프作, 1918년

쥐를 사냥하는 시간 중에는 판매대 위에 앉아있는 것도 허용될 정도였으니,이런 특권이 어디 있나.

그야말로 상인들이 믿고 맡기는 장사 파트너였던 것이다.


러시아에선 당시 이 말이 통하지 않았을까.


'고양이에게 생선을 줘도 된다'


(6) 레닌그라드 공방전의 숨은 공신


독소전쟁 중 가장 굶주리고 추운 시간으로 기억되는 레닌그라드 공방전(1941.9~1944.1).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고립돼 식량난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사람도 살기 힘든데 고양이라고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고양이도 대부분 죽거나 먹잇감이 됐다.

고양이가 사라지자, 곧 쥐들이 되살아나 도시의 삶을 위협할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번식했다.


그러던 1943년,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고양이 5천여 마리가 보내졌다.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 고양이(출처: funart.pro)

당시 빵 1kg이 50루블이었던 물가를 감안하면,

고양이 한 마리가 500루블이었다 하니 엄청난 가치를 가진 존재였음은 분명하다.


이들은 도시 생존의 유일한 키를 쥐고 있는 동물이기도 했다.

봉쇄된 도시에 온 고양이들은

수많은 박물관과 지하실, 주거 시설 등 곳곳으로 파견돼 식량을 약탈하던 쥐를 통쾌하게 소탕했다.


공방전 당시 고양이와 소녀(출처: factstore.ru)


그렇게 고양이가 도시를 청소하고 나서 얼마 후,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던 레닌그라드는 쥐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고 한다.

전쟁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상기시켜주듯,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곳곳에서 작은 고양이 동상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구석구석에 있는 고양이 동상들(출처: liveinternet.ru)




이 정도면 고양이가 러시아를 구해낸 수호신 아닌가?

쥐를 내쫓아야 생계를 위협받지 않을 만큼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었던 것도 분명 있지만,

고양이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으니 감사하단 말만으로 인사와 보답이 부족할 것 같다.

그러니 지금까지도 더욱 애정을 쏟는 것 아닐지.


이제서야 러시아 사람들이

왜 그리도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깊은지 알 것 같다.


언제라도 러시아에 다시 가게 된다면,

고양이에게 참 고생 많았다고 전해야겠다.


그리고 지금의 전쟁도 제발 그치게 해달라고 

간절히 청하고도 싶다.




※ 원문 관련 영상 [러시아인은 고양이를 왜 좋아할까?]

출처: 유튜브 채널 여행과 사색


* 커버 사진 출처: bigpicture.ru



출처가 명시된 사진을 제외한 본문의 모든 텍스트 및 내용 구성에 대한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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