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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Mar 07. 2023

러시아에는 왜 24시간 꽃집이 있을까?

그 이유와 가장 대중적인 시나리오 두 가지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

우리에겐 생소해서 '그런 날도 있어?' 생각할 수도 있는데,

러시아에서는 공휴일로 지정하고 모두 함께 여성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는 아주 중요한 날이다.

여성의 날을 모른 척 건너뛰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의 앞으로 1년이 순탄치 않을 지도!


3월 8일은 여성의 날(출처: profgos31.ru)

이런 주요 이벤트를 앞두고 가장 바쁜 곳은 아마도 꽃집일 것이다.

꽃 선물은 러시아에서 여성의 날은 물론 생일, 각종 기념일 등 중요한 날에 빠지는 법이 없다.

좋은 날 꽃은 늘 있다.

그만큼 러시아 사람 꽃을 참 좋아한다. 척박한 동토의 나라에서 꽃의 존재는 따뜻함과 생명력이 담겨 있어, 누구에게나 더없이 귀한 선물이기 때문일 터.


24시간 꽃집(출처: bagra.ru)

좋은 날 귀한 선물은 언제 어디서든 항상 준비되어야 해서일까?

러시아에서는 맘만 먹으면 한밤 중에도 언제든 꽃을 살 수 있다.

연중무휴 24시간 꽃집(Цветы 24/7)이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꽃가게의 야간 판매율이 20% 가까이 된다 하니 밤에 꽃 수요가 상당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주어진 일, 정해진 시간에만 일하는 러시아 사람의 대체적인 습성을 감안하면,

24시간 영업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이들이 아름다움에는 진심인 건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러시아에는
24시간 꽃집이 왜 있을까?


현지에서 일반적으로 해석하는 24시간 꽃집의 이유 두 가지는 이렇다.


이유1. 문화가 만들어낸 일상 속 편의


러시아에서는 꽃을 사거나 선물하는 문화가 일반적이다.

손님으로 초대 받고 파티에 참석할 때면 준비하기 좋은 선물이 바로 꽃이다.

사람마다 취향도 제각각이고 바쁜 시간에 짬내서 따로 선물 사러 가는 것도 일인데,

24시간 꽃집 덕분에 꽃은 늦은 시간 열리는 파티라도 준비에 어려움 없는 기분좋은 선물이다.


꽃은 러시아 일상에 녹아든 문화나 다름없다.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구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기쁨인 것이다.

그래서 언제 어느때고 그 기쁨을 나누도록 꽃집은 24시간 열려있다.


공항에서 꽃으로 여성을 맞이하는 남성(출처: telegra.ph)


24시간 꽃집은 도시 곳곳에 있는데, 특히 많은 사람이 이동하는 길목에 있는 꽃집의 인기는 더 높다.

오는 사람 반기고 가는 사람 환송해주는 공항과 기차역, 대중교통 이용하는 사람이면 한번쯤 지나게 되는 지하철역 부근, 젊은 남녀의 만남과 교류 장 클럽 근처, 달콤한 선물도 세트로 사갈 수 있는 24시간 마트 등

사람들 오가며 만남과 헤어짐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위치한 꽃집은 밤낮이고 늘 잘 된다.


지하철역 지하도에 위치한 꽃집(출처: novyefoto.ru)


이런 곳을 지나는 사람이면 살 생각이 없다가도

꽃을 보는 순간 소중한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지갑을 안 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꽃은 언제나 어느때나 준비할 수 있는 그런 따뜻함이다.


이유2. 최상의 꽃 상태를 위해 24시간 관리는 필수


꽃은 그 순간이 참 아름답지만 잘 관리해주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버리는 식물이기도 하다.

꽃이 최고의 상품성을 가지려면 가게에서 항상 싱싱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밤이고낮이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수다.


수많은 주인을 기다리는 꽃다발(출처: tutshoping.ru)

꽃의 종류나 계절에 따라 냉장 보관이나 상시적으로 조명빛이 요구되기도 한다.

결국 꽃집에서는 상태 좋은 꽃을 많이 팔기 위해서라도 하루종일 냉장고와 조명의 전원을 끄지 않고 계속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꽃이 대부분 수입산이라, 국내로 들여오는 시간과 조건도 무시할 수 없다.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 이후 꽃도 우회 수입이나 국내 생산이 많아져 운송에 도착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터.


적정한 온도와 빛이 필요한 꽃(출처 pro-dachnikov.com)


꽃 본연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짧아진 만큼,

24시간 동안 최대한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어쩌면 가장 납득되는 현실적인 이유인 것 같다.




이러한 일반적인 이유보다 더 주목받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꽃을 소비하는 주요 고객은 여성에게 선물하는 남성이고, 이들은 주로 늦은 밤 오프라인 매장에서 꽃을 사간다.

왜 그럴까? 24시간 꽃집이 생긴 배경에는 다음의 대중적인 시나리오 두 가지를 빠뜨릴 수 없다.


시나리오1. 사랑하는 이를 위한 아침의 깜짝 이벤트

아침 식탁 서프라이즈(출처: podacha-blud.com)

러시아 사람은 정이 참 많다.

특히 자기가 아끼는 사람이라면 끔찍히 생각해 기념일에 이들을 위한 이벤트도 기꺼이 준비한다. 이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소소하게 이벤트를 해주며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는 매일 같은 공간에 붙어있고, 특히 아내라면 눈치도 빠른데다 집안 사정을 다 꿰뚫고 있어,

로맨티스트 남편이 집에서 몰래 숨겨가면서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모두 잠든 밤 24시간 꽃집에 가서 꽃을 미리 준비해뒀다가,

다음날 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짜잔'하며 꽃으로 기분 좋게 서프라이즈 한다.


아침 침실에서 만난 꽃(출처: mykaleidoscope.ru)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아침에 눈뜨는 순간부터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라니!

참으로 낭만적인 로맨티스트가 아닌가?


시나리오2. 취한 밤, 아내에게 구하는 용서


러시아 남성은 술도 화끈하게 마신다.

때로는 살기 힘들어서, 때로는 오랜 친구들과 우정을 다지고자,

술잔을 거절하지 못하고 늦게까지 얼큰하게 취해 새벽에 귀가하는 남편들이 많다.


나를 용서해주세요(출처 :syl.ru)


여성 파워가 막강한 러시아에서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아내가 달갑게 볼까?


이미 아내는 잔뜩 화가 나있을 것이고,

남편은 당장 내일 아침 쏟아질 잔소리가 걱정일 것이다.


용서를 구하는 남편(출처 intimosano.ru)

그래서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새벽 귀갓길에 어김없이 24시간 꽃집에 들러 꽃다발을 사서 들어간다.

떨리는 손으로 꽃을 한아름 건네면,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아내라도 마지못해 져준다는 사실을 남편들은 이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늦은 밤 꽃집 손님은 대부분 남성이란다.


이처럼 꽃은 남성들이 취한 새벽에 용서를 구하는데 아내에게 가장 잘 먹히는 화해의 필수품이 되었다.




러시아인 삶의 애환이 녹아있는 꽃,

현지에서 꽃 선물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다.


홀수 송이로 선물하는 장미(출처: idea-ufa.ru)


좋은 일로 꽃을 물하게 된다면 홀수 단위로 사야 한다는 점이다.

러시아에서는 짝수의 꽃송이는 고인에게 드려지는 단위라서 장례식 갈 때나 필요하다.

물론 이는 러시아에서 맹신하는 미신이긴 하나, 꽃이 일상인 나라인 만큼 기본 예의는 갖추는게 당연한 법.


여성을 위해 준비한 튤립(출처: shutniks.com)

특히 여성의 날에는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봄에 가장 먼저 나오는 꽃 튤립이나 파스텔톤의 장미를 선물한다.


여성의 날을 앞두고 남성들은 천정부지로 오른 꽃값을 감당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어차피 1년에 한 번 있는 날!


주변 여성들과 축하와 기쁨을 나누는 이 봄날보다 더 중요한 연례 행사는 없으리라.


                    


※ 원문 관련 영상 [러시아는 꽃집이 24시간이라고?]

출처: 유튜브 채널 여행과 사색


* 커버 사진 출처: topflo.ru



출처가 명시된 사진을 제외한 본문의 모든 텍스트 및 내용 구성에 대한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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