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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Nov 16. 2023

석유향 나는 바다내음, 타오르는 바쿠(2)

풍부한 자원 힘입어 불꽃과 불기둥 솟아오르는 동네

- 지난 이야기 -

그래서,
불기둥은 보고 왔어요?


바쿠로 여행을 다녀온 선배 언니에게 물어보니 아제르바이잔이 생각보다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석유나 가스 등 자원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듣지 못하고, 인상 깊은 현지인들 얘기만 가득했다.

아마도 당시 학생 신분이라, 조금만 벗어나면 도처에 있는 유정시추의 현장을 못 보았거나 석유를 뽑는 지역이 어딘지 몰라서 그런게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내가 방문한 건 다소 습하고 햇살이 유난히 뜨거웠던 2023년 여름.

더위를 포함해 모든 것이 불꽃이었다.




(1) 도시의 랜드마크조차 불꽃


불의 나라답게 바쿠의 야경 주요 랜드마크도 불꽃 모양이다.

세 채의 건물이 마치 불꽃처럼 피어오르듯 '플레임 타워(Flame Towers, 현지어로 알로브 타워)'가 서있는데,

푸니쿨라를 타고 언덕에 오르면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다.


플레임 타워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언덕으로 오르는 푸니쿨라와 언덕 아래에서 바라본 타워들


불꽃이라 그런지 낮보다는 밤에 화려한 빛으로 야경을 수놓는데, 주로 건물 외관을 장식하는 조명에서는

아제르바이잔 국기, 깃대를 흔드는 사람, 타오르는 불의 모습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하이랜드 파크에서 바라본 카스피해 전경. 불야성이다.


언덕 위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에서 바라보는 불꽃 타워와 카스피해 전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색색깔의 조명이 더욱 아름답다. 자원 부국이 아니던가. 전기 걱정은 없다.


하이랜드 파크에서 바라본 플레임 타워. 조명은 아제르바이잔 국기색이다.


플레임 타워는 10여 년 전에 완공되었는데, 현재 건물 하나만 운영 중이라고 한다.

실제로 조명 빛으로 가득 채우는 건물 사이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호텔로 사용 중인 한 건물을 제외한 두 건물의 속불은 모두 꺼져있다.


타워 근처에는 국립 순교자의 묘지(Martyrs' Alley)가 직선로 길게 늘어서있다.

1990년 초 아르메니아와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사망한 4천 여 명 희생자를 위한 추모지인데,

국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곳을 걸어가는 것이 빠지지 않는 의전이라고 한다.


순교자의 길(출처: liveinternet.ru)


그 길의 끝에는 카스피해 방향으로 진짜 타오르는 불꽃이 있다.

국가를 위한 희생자들을 위한 꺼지지 않는 불꽃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놀랍다.


아무튼 바쿠의 밤을 밝히는 조명이

모두 불꽃임은 분명하다.


순교자들을 기리며 꺼지지 않는 불꽃


(2) 유정시추의 현장들


바쿠 도심에서 조금 나가면 척박한 땅 가운데로 기름을 퍼올리는 오일 펌프 장비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곳이 석유가 많이 나는 지역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석유를 퍼올리는 시추 현장들


바쿠 도심에서 남부로 내려가면,

'비비 헤이밧(Bibi Heybat)'이라는 세계 최초 상업용 유정 지역이 있다.


19세기 중반 이곳에서 최초 유정이 시추되어 원유 생산을 시작했고, 이는 곧 세계 석유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20세기 초까지 바쿠에서 전세계 원유 생산량의 절반을 생산할 정도였으니,

당시 얼마나 혁신적이었을까?

과연 선견지명이 있던 노벨 형제들이 과감하게 투자할 만하다.


19세기 비비 헤이밧 유전의 모습(출처: ru.wikipedia.org)


땅만 파면 기름이 나오는 동네가 바로 이곳을 두고 한 말이었나 보다.

'석유 목욕'이 관광상품으로 괜히 선보이게 된 건 아니었다. 이곳만의 특권!


지금은 이전만큼의 명성은 아니지만,

바다 내음과 함께 석유 향기가 진하게 스며들어 있는 것을 보니

여전히 석유는 이 나라의 근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3) 한번도 꺼진 적 없는 천연가스불


바쿠 시내에서 북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뜨거운 불의 현장을 만난다.

'야나르 다그(Yanar Dag)'라는 곳인데, 해석하자면 '불의 산'이다.


수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게 된 야나르 다그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돌산에서 영원한 자연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다.


땅속에서 자연적으로 분출되는 천연가스가 지표면을 뚫고 나오면서 압력으로 인해 불꽃이 붙었다.

언제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는지 명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고대 시절로 추정한단다.


야나르 다그의 꺼지지 않는 불의 근원은 놀랍게도 천연가스!


지금까지도 천연가스가 계속 분출되고 있어, 불꽃이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물론 불타오랐던 면적이 예전에 비해 지금은 많이 줄어든 것이라 하는데,

다소 잦아든 규모라지만 역시나 불 근처는 가기만 해도 내 몸이 타버릴 듯 뜨거워진다!


(4) 조로아스터교 불의 사원


'불'은 조로아스터교(배화교)의 숭배 대상이기도 하다.

바쿠 근교에는 바로 이 종교의 성지인 '아테쉬가흐(Ateshgah)' 사원이 있다.


아테쉬가흐 사원 내부


아테쉬가흐는 '불을 저장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불의 사원이 있다는 건 결국 불을 피울 자원이 풍부한 곳에 그 성지가 됨을 말해준다.


이곳도 천연가스 배출구가 있는 구역 중심으로 17-18세기 조성되었는데,

흥망성쇠를 이어오다 지금은 박물관으로서 수많은 여행객과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의 방문지가 되었다.


사원 중앙에 타오르는 불꽃들. 역시 불을 숭배하는 종교의 핵심은 '타오르는 불'이다.


사원 중앙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만날 수 있다.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은 이 불꽃으로 제사를 지내고 의식을 행했을 것이다.


불의 나라에서 만난 불의 사원은 역시 그 기운을 받아서 그런지 남다르다.


활활 타오르는 조로아스터교의 상징 '불'




바쿠에서 남부로 내려가면 고부스탄의 진흙 화산이 있다.


땅속 가스로 인해 보글보글 올라오는 진흙 물방울이 '화산'이라 해서 뜨거울 것만 같지만, 실제로 만져보면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느낌이 든다. 이 진흙탕에 몸을 담그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현장에 수도 시설이 없어 물론 뒷처리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고부스탄 진흙 화산


이러한 다양한 장소들을 방문해 보면 역시나 바쿠와 그 인근은 땅은

지금도 천연자원을 많이 보존하고 있고 심지어 분출되고 있는 곳들도 상당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불로 솟구쳤든, 유용한 자원이 되었든, 누군가의 종교로 숭배되었든,

각자의 방식으로 타올라 사람에게 좋은 것으로 이롭게 다가간 것이니

바쿠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타오르는 도시 바쿠,

또 다시 만날 때는 더 뜨겁게 맞이해주길 바란다.



* 영상으로 만나는 아제르바이잔(릴스)

출처: 유튜브 채널명 여행과 사색


★ 게재한 일부 사진들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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