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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Nov 15. 2023

우리가 몰랐던, 이색 도시 바쿠(1)

과거와 현재를 산책하며 느끼는 바쿠의 매력

이번 방학에 아제르바이잔에 가 볼거야!
석유 기둥을 보고 싶어서.


벌써 오래 전 이야기지만,

모스크바 교환학생 시절 선배 언니가 생각도 못한 곳을 여행하고 오겠다고 해서 '굳이 거길 왜 가려는 걸까?' 의아했던 생각이 난다.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구소련권이었지만 특별히 갈 일도 없었고 크게 주목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인생이 내 맘 같지는 않듯,

러시아밖에 몰랐던 내가

여행 아닌 출장으로 그곳에 가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1) 아제르바이잔,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


코카서스 3국은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 이렇게 세 나라다.

이 나라들은 '코카서스(카프카스Кавказ) 산맥' 이남에 위치하여 3국으로 통칭해서 부르는데,

한때는 소련권이던 3국일지라도 각각 들여다보면 다른 문화권에 속해있고, 분위기도 전혀 다르다.


카스피해 인접의 아제르바이잔(출처: 구글맵)


그중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문화권이다.

물론 히잡을 안 쓰는 여성들이 많고 알코올이 허용되는 등 비교적 자유롭고 세속적인 이슬람권이다.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나라(땅)'라는 뜻으로,

타오르는 불을 끄기 어려울 만큼 천연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다.


이곳이 넘치는 석유를 자랑할 수 있었던 데는

19세기 말 스웨덴 출신 노벨 형제의 공이 컸다.

노벨 형제는 러시아 제국 시절 우연히 바쿠의 유전을 보고 과감하게 개발을 결심하여

석유산업에 뛰어든 결과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벨상은 형제 중 셋째 알프레드 노벨이 만든 것인데,

그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함으로써 발생한 전쟁의 참상 등을 만회하고자

재단을 만들어 의미 있는 상을 주게 되었다. 

당시 노벨 형제가 석유로 모은 돈은 수상자를 위해 쓰여지고 있다.


알프레드 노벨(셋째) 루드비그 노벨(둘째) 로베르트 노벨(첫째) 바쿠 석유사업에 뛰어든 장본인은 첫째(출처: rg.ru/2023/07/07/nobelev-kovcheg.html)


노벨상이 있게 한 노벨 형제의 석유산업이 바쿠의 근간이 되었고 나름의 큰 의미가 있어,

바쿠에는 노벨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건물은 당시 노벨 형제들이 살았던 곳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바쿠에 있는 노벨 박물관(출처: ru.dreamstime.com)


(2) 카스피해를 품은 바람의 도시


바쿠는 '바람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다.

그 의미가 무색하지 않게 바람이 꽤 많이 분다. 아마도 바다 근처라 그런가 보다.


도심에서 카스피해가 보인다. 바다가 있는 수도라니!

그런데 바다 짠내 속에서 석유 향이 느껴져서 놀랐다. 과연 자원이 많이 나는 곳이었구나!

카스피해는 아제르바이잔과 더불어 러시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이 쭉 둘러싸고 있는데,

아제르바이잔만 수도가 카스피 해안을 접하고 있다.


자기네 땅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듯 카스피해를 둘러싸고 신축 건물들이 쌈박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해안가 한쪽에는 최대 규모의 국기가 날리는 국기 광장이 있다. 방문 당시에는 더 커다란 규모로 리모델링 중이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도시라 대형 국기는 아주 힘차게 펄럭일 것 같다.


바쿠의 국기 광장(출처: ru.pinterest.com)


그 외에도 국기가 도시 곳곳에서 보이는데 나라 사랑이 보통이 아니다.

물론 아르메니아와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분쟁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불과 얼마 전까지도 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지역임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말이다.


(3) 과거의 풍경 속 현대 건축물의 조화


바쿠의 건물들에서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모습을 본다.

러시아 제정 시절의 고풍스런 건물과 투박하고 낡은 구소련 아파트,

현대적인 건축물과 수많은 대형 쇼핑몰이 가득한 가운데 깔끔하고 정돈된 외관...

튀르키예의 느낌도 조금 있는데, 아무튼 바쿠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보이는 곳이었다.


카스피해를 따라 들어선 현대적 건축물들
현대적인 멋과 옛멋이 공존하는 바쿠(우편의 왕관 건물은 데니즈 쇼핑몰)


꼭 '나 좀 봐, 멋있지?' 뽐내는 것만 같다.


바쿠 도심에는 중세도시 올드 시티(Old City)가 있다.

이곳 성벽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놀랍게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 완전히 다른 중세시대로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바쿠의 올드 시티

15세기 왕족이 바쿠로 천도할 당시 건축한 쉬르반샤 궁전, 카라반 사라이, 모스크,

구도심을 든든히 지키는 메이든 타워(12세기 건축물) 등 도심의 보석들이 있다.


구도심의 골목(우측) 메이든 타워(좌측)


구도심은 골목골목이 아름답고 아늑함을 준다. 성곽 내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조차도 멋스럽다.

저 멀리 불꽃처럼 타오르는 플레임 타워가 보여 바깥 세상의 현대적인 모습도 공유할 수 있다.



구도심 근처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번화가는 니자미 거리(Nizami St.)일 것이다.

유럽 느낌의 카페와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에는 많은 사람이 오가며 바쿠의 낮과 밤을 즐긴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나 볼 법한 타일 장식 산책로와 스타벅스를 비록한 체인 음식점, 로컬 식당들...


이곳은 그냥 유럽이다.


니자미 거리의 풍경


과거를 뒤로 하고 조금만 가면

모던함을 뽐내는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Heydar Aliyev Center)를 만난다.

바쿠를 대표하는 현대적인 랜드마크이다.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


건물 외관이 곡선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이 전시장은 우리나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다. 같은 사람 작품이라 그런지 전체적인 느낌이 DDP와 흡사해 보인다.


건물 근처에서 사진을 찍으면 곡선 속의 선들이 이어져 

마치 미지의 공간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동대문의 DDP와 흡사한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 외관


알리예프의 이름이 나와서 말인데,

센터 이름의 주인공 헤이다르 알리예프는 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의 아버지로,

소련 붕괴 후 독립국 아제르바이잔의 초대 대통령을 지내고 재선되어 10년을 통치했다.

그리고 그의 둘째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가 2003년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결국 이 나라도 권력의 변동을 꿈꾸기 어려운 곳이구나 싶다.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과 그의 부인 메흐리반 알리예바(출처: foto-ram.ru)


대통령 부인의 힘은 더 막강해 보인다.

2017년부터 부통령을 지내고 있는 영부인 메흐리반 알리예바는 파샤 홀딩, 파샤 은행 등 파샤 그룹으로써 각종 분야에서 국가 사업을 쥐락펴락하는 위치에 있다고 한다.(파샤예바는 그녀의 결혼 전 성)


그래서인지 아제르바이잔은 새로 발을 들여 비즈니스를 펼치기엔 제한적인 환경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한국인'을 알아보고 좋아하는 이들이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바쿠에 한식당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2023년 기준)


그 가운데 K-pop을 사랑한 현지인이 오픈한 한국 분식집(purple cafe)은 3호점까지 있었는데,

음식 맛은 오리지널 한식과 좀 달랐다. 많이 새콤한 맛이랄까. 

러시아에서 한국 샐러드라고 불리는 당근 샐러드 맛이 아주 강했다.


낯선 땅에서 만난 반가운 분식의 신 맛 속에서 우리나라를 제대로 잘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BTS 입간판이 있는 바쿠 시내 현지인이 운영하는 분식집 퍼플 카페


이렇게 과거 속 현재를 사는 카스피해의 도시 바쿠,

다음 이야기에서는 그 불타오름의 열기를 느끼고자 한다.



★ 게재한 일부 사진들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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