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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Aug 05. 2016

빛나는 바이칼의 도시, 이르쿠츠크(3) ..& 알혼섬

알혼에서 만난 바이칼의 절정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생각해 볼만한 바이칼 호수 여행.

바이칼 호수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만나볼 수 있는 깊이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냥 눈대중으로 보고 '바이칼을 보았다'라며 겉핥기만 하고 올 수도 있고(1단계),

바이칼 호수에 손과 발만 적셔보고 '깨끗하고 시원했다'고 감격에 겨운 얘기를 할 수도 있는가 하면(2단계),

바이칼에 온 몸을 던져 바이칼의 영혼과 마주해 인사하고 겨울의 호수 위를 온 몸으로 걷고 뛰어본 후, 결국은 또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3단계).


세 번째가 가장 바이칼을 제대로 '만났다'고 할 수 있겠지?

나는 개인적으로 3단계까지 가보았다고 생각하지만 표현은 그만큼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다 보여줘버린다면 가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들터이니.


그럼 이제부터 1단계부터 3단계에 맞는 바이칼과의 만남을 사진과 함께 만나볼까 한다.

바이칼에서 가장 가까운 리스트비얀카(Листвянка)부터 그 곳에 위치한 알혼(Ольхон)섬까지!

사진은 대부분 겨울 사진이라 다행히 이 더운 여름날 눈으로라도 더위를 식힐 수 있겠다.




# 리스트비얀카


이르쿠츠크에서 한 시간 넘게 차로 가면 만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바이칼, 리스트비얀카로 간다.

이 곳의 물도 역시 너무나 맑다. 보기보다 깊다는데 바닥의 돌들이 눈 앞에 와 있는 것 같다.


있는 그대로입니다. 가을날 바이칼 호수.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그림도 펼쳐진다.

도저히 시골에선 연출하기 어려울 것 같은 광경이 리스트비얀카 바이칼 호수변에 펼쳐진다. 물론 잘 지어놓은 호텔이라 그렇다지만, 이런 동화같은 곳이 있다니. 게다가 여기는 러시아인데?


얼마 전 겨울에 차 한 잔 하러 그곳에 갔을 때는 작은 헬리콥터가 호텔 앞에 착륙하는 것을 보았다. 거기서 일가족 세 명이 나와 우리 건너편 자리에서 식사를 했다. 누가 태워다 줬는가 보다 했는데, 식사를 마친 그들은 다시 그 헬리콥터를 타고 유유히 돌아갔다. 자가용이었나보다. 황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한참을 웃었다.


리스트비얀카 바이칼변의 호텔 아나스타샤. 그리고 그곳에서 목격한 작은 헬리콥터.

 

리스트비얀카에서 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다표범 '녜르빠(нерпа)'이다.


고작 호수지만 바다같은 바이칼에서 바다표범이 서식할 수 있다니 참 경이롭다. 2009년 바다표범 박물관에서 목격한 이 친구는 너무나 귀여웠다. 동글동글한 것이 이르쿠츠크 시내와 공항, 바이칼 근처 기념품 가게에 가면 귀여운 녜르빠 인형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조카나 어린 동생이 있다면 선물로 제격이다.

 

바이칼에 서식한다는 바다표범


겨울의 리스트비얀카에 있는 바이칼 호수변을 가다보면 또 하나의 걸작을 만난다. 바이칼 호수가 아직 얼지 못했을 때 물안개가 심하게 일어는데, 이 물안개가 나뭇가지에 붙어 얼어버리면 수많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만들어진다! 자연이 만들어낸 트리는 너무나 정교해서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리스트비얀카 어시장, 그리고 호숫가의 겨울은 참 춥지만 평화롭다. 여름에 왔을 때와도 너무나 다른 분위기다.

여름은 활기차고 즐거움이 가득했다면, 겨울은 그보다는 고요하지만 어딘가 따뜻함 스며있다. 바이칼의 명물 생선 '오물(Омуль)'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겠지?


(상) 리스트비얀카 바이칼이 만들어낸 작품 (하) 겨울 어시장의 모습


그러면 이제는 바이칼의 절정, 알혼 섬으로 떠나볼까.


알혼의 여름이 그렇게들 좋다고 하지만 내가 본 모습은 겨울 뿐이라 객관성이 다소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생각에 겨울 바이칼이 여름보다 소위 '레어 아이템'이라 단언할 수 있다.


# 알혼섬


이르쿠츠크에서 꼬박 반나절은 가야 도달할 수 있는 신비의 섬 알혼섬.

 

이르쿠츠크에서 알혼섬으로 들어가는 곳까지 대략 버스로 두 세시간, 배로 이동하는 한 두시간, 섬에서 후지르(Хужир) 마을까지 이동만 한 두시간. 여름에 관광객이 많을 때는 섬까지 배로 가는 시간이 지체되어서 더 걸리기도 한다는데, 겨울은 열악한 기후와 환경 때문에 끝없는 기다림에 제동이 걸릴 때가 종종 있다.


내가 갈 때도 그랬다.

호수가 얼어붙어 섬까지 이미 배는 다니지 못했지만, 깨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얼음이 깨져도 배처럼 사용할 수 있는 호버크래프트 한 대로 이동해야 했다. 그것도 '러시아 비상사태부(МЧС)'가 사용한다는 호버크래프트를 타게 되었는데, 한 번에 10명 이하만 수용할 수 있어 관광객 한 팀을 섬으로 데려다 주려면 여러 번을 왕복해야만 했다. 그것도 줄을 잘못 서면 한참을 추위와 바람 속에서 기다려야 한다.

참 러시아스럽게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좌) 피난민처럼 얼음 호수 위에서 자기 탈 차례 기다리는 관광객들 (우) 호버크래프트에서 짐을 내리는 사람들


어렵고 힘들게 기다림과 추위와의 사투 끝에 알혼섬에 들어오기는 하였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너무 낡은 승합차로 후지르 마을까지 가는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눈이 너무 많이 와 길도 좋지 않았고, 길도 아닌 길로 계속 가다가 얼어붙은 언덕길을 다섯 번 넘게 올라가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졌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이러다 차가 전복이라도 하면 끝장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관광객을 태운 승합차의 기사들은 함께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우리 차가 얼음 언덕을 오르지 못해 좌초되고 있을 때 다른 차들은 이미 떠나버린게 아니라 언덕 위에서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공동체 의식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물어보니 다음날 똑같이 이르쿠츠크를 출발한 다른 여행족은 나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이곳에 도착했고 얼음길과 같은 열악한 조건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역시 모든 상황은 복불복이다! 아니면 알혼섬이 우리를 환영하지 않았거나.


(좌,우) 니키타 하우스 이모저모


어렵사리 도착한 후지르 마을, 그리고 거의 이곳의 공식 관광숙소나 다름없는 '니키타 하우스'로 입성했다.


추운 겨울이라 마당에는 개미 한 마리 볼 수 없어 과연 우리 잘 곳이 있기는 할까 걱정되었지만 다들 따뜻한 실내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리셉션 직원에 한 번 놀라고 그럭저럭 목조 건물 숙소 치고는 깔끔해서 또 한 번 마음에 들었다. 특히, 문단속하라며 건네 준 아날로그 자물쇠는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긴장에 주린 배를 쥐고 간 니키타 하우스 식당에서는 마치 한국 음식점 이모님을 연상케 하는 아주머니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식사도 형식이나 그런걸 떠나서 맛과 양이 너무나 훌륭했다. 나는 소량을 섭취했지만 더 달라고 하면 아낌없이 퍼주신다.


(좌) 니키타 하우스 자물쇠 (우) 육해공이 모두 포함된 그곳의 식사


도착한 다음날부터 지옥의 추위와 다투는 바이칼 얼음 투어가 시작되었다.


사실 겁도 났고 가지 말까 생각도 했다. 도착한 날 너무 추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곳까지 온 이상, 알혼섬이 나를 제대로 환영하지 못한 이상, 내가 환영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반나절이나 되는 시간동안 얼음 위에서 보내야 하는게 부담이었지만 극기훈련하자는 맘으로 길을 나섰다.

그렇게 나서고는 절대 후회라는 건 없었다.


우리는 남부 지역 투어를 돌았는데, 처음에는 '우와! 우와!' 하다가 갈수록 춥고 비슷해 보이니 감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매번 내 눈 앞에 펼쳐진 얼음 바이칼은 '너 앞으로는 이와 같이 살아라!'라고 얘기해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상,하,좌,우) 겨울 알혼섬 바이칼 투어 이모저모


너무 추운 날씨 탓에 핸드폰은 방전에 꺼지기를 반복했고, 셔터를 누르려고 손가락을 내놓는 순간 손가락이 얼어 붙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감각이 사라져갔다. 그래도 똑딱이 디카를 가지고 간게 다행이었다. 장갑을 끼고 열심히 나는 셔터를 눌러댔다. 어떻게 찍어도 그림이 나오니 신기했다.

호수 아래를 들여다보니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다.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얼음이 되기까지 그렇게도 힘들었나보다

알혼섬에서 유명한 부르한 바위


자연을 느끼고 진정한 바이칼과 만난 알혼섬 여행이었다.


신기한 건 알혼섬이 정말 기가 느껴지는 곳이어서인지 내가 피곤해서 그랬던건진 몰라도 잠을 잘 때마다 꿈을 꾸기도,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는 거다. 나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 그런걸 믿지는 않지만 자연이 준 선물을 몸에 잔뜩 실어가려고 몸이 긴장한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이렇게 나와 이르쿠츠크, 알혼과의 제대로 된 만남은 겨울에 이루어졌다.


이곳을 혼자 온 여자 여행객도 종종 만났는데, 도대체 이 분들은 바이칼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까? 문득 여행 이후 그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럼, 시베리아의 진주와는 이별하고 이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열차에 올라야 하겠다.

난 3단계 여행객이니까 따뜻할 때 또 방문할게!

목조건물, 그리고 자작나무


 * 특정 업소나 장소에 대한 느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그곳들을 홍보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저 독자들께서 러시아를 있는 그대로 느끼셨길 바랍니다!



★ 게재한 모든 사진들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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