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없이 바라본 이 도시
시베리아의 보물 이르쿠츠크, 그 두번째 이야기.
제정 러시아 시절 유배지였던 시베리아의 도시지만, 극한 가운데 문화의 꽃을 피우고 자연의 아름다움은 덤으로 감싸안아 더욱 빛나는 도시다.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나는 자꾸 그 보석을 보러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혼자 노래 가사처럼 이 도시 이름을 중얼거릴 때가 많았다. 그게 마치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는지 중얼댄 후에는 신기하게도 정말 갈 일이 생기기도 했고, '가야지' 다짐만으로도 어려움 없이 갈 수 있었다.
나의 힘든 시기를 정리하고 마음의 쉼을 주려고 향했던 곳도 바로 이르쿠츠크였다.
이 묘한 매력의 도시.
많은 사람들은 여름이 이곳 여행의 최적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진정한 시베리아와 바이칼을 알고 싶다면 겨울에 가보라고 하겠다. 몸도 마음도 단단해지면서 진정한 자연의 모습을 보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터이니.
삶이라는 항해 가운데 절대 나 혼자선 살아갈 수 없단 것도, 그리고 지금 내가 매달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사소한 먼지 같은 건지 알게 된다. 마음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참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르쿠츠크라는 도시는 참 아름다우며, 바이칼은 참 경이로운 자연이다.
이 멋진 곳들을 지금부터는 앞뒤 설명은 더도 덜도말고 사진과 함께 편견 없이 감상해 보려고 한다.
이르쿠츠크를 끼고 흐르는 마법같은 앙가라 강.
겨울에 강변 산책로를 지나다 보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는데 강은 얼지 못하고 흘러 피어나는 물안개와 만나게 되는데, 이건 그야말로 장관이다. 내가 꿈 속을 거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그리고 물안개 속을 계속 걸어가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눈과 코에는 조그마한 얼음 조각들이 수없이 맺혀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눈곱이 심하게 낀 것처럼 눈을 뜰 수가 없다.
앙가라 강변에서 맞닥뜨린 물안개
앙가라 강변을 주욱 걷다보면 시내 남서쪽 위치에 휴양지 '유노스찌(Юность)'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름만큼이나 '젊음'이 가득한 곳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하지만 겨울에 갔을 때는 눈과 눈을 머금은 나무, 그리고 극한의 추위를 단련하려 뜀박질하는 젊은이 외에는 볼 거리가 거의 없었다. 자연과 추위 그 자체다.
그렇다면 겨울 이르쿠츠크 시내에는 무엇이 있는지 살짝 들여다볼까?
러시아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레닌 동상, 그리고 추운 도시인 만큼 빠질 수 없는 얼음 놀이터는 역시나 러시아스럽다. 레닌 동상 앞 눈을 치우는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추워보였지만, 절대 요령을 피우지 않으신 고로 동상 바로 앞 자리는 너무나 깨끗했다. 얼음 놀이터는 내가 마치 겨울왕국에 놀러온 것 같이 신기했고 거기서 노는 러시아 꼬맹이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좋았다.
(좌) 레닌동상 (우) 시내의 얼음 놀이터
어느 도시나 과거를 잘 보존하고 있기도 하지만 발전하고 있는 현재를 조화롭게 드러내기도 한다.
이르쿠츠크 또한 그런 장소가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130번 지구(130-ый квартал)'가 바로 그곳이다. 화재로 소실된 목조 건축물을 복원시켜 번화가로 조성하고 2011년 9월에 오픈했다. 건물들만 보면 박물관 같기도 하지만 건물들은 대부분 레스토랑, 카페, 호텔, 기념품 가게이다.
요즘 이르쿠츠크의 핫 플레이스!
130번 지구 이모저모 - (상) 130번 지구 골목의 밤/낮, (하) 이르쿠츠크 문장 / 모드니 끄바르딸 쇼핑몰
'130번 지구' 입구에는 바브르(бабр:표범)가 흑담비(соболь)를 물고 있는 이르쿠츠크의 문장(герб)의 동상이 마치 이곳을 보호하듯 늠름하게 서있다. 한편, 이 구역의 끝에는 '모드니 끄바르딸(Модный квартал: 최신유행 지구)'이라는 쇼핑몰이 있는데, 여기 들어서는 순간 흡사 한국의 어떤 유명 몰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무선 인터넷까지 터지니 이 곳을 벗어나고 싶지가 않겠지.
따뜻하고 쾌적한 겨울의 쇼핑몰과는 대조적으로 춥고 사람들 북적이는 시장 구경 또한 참으로 흥미롭다.
분명 과일 몇 개 사러 갔다가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생선과 고기, 주전부리를 잔뜩 사오게 되는 곳이니까. 적어도 나에게는 러시아 시장은 그런 장소였다. 신발을 사러 갔다가 계획에도 없던 식료품만 더 많이 사오던 곳.
이르쿠츠크 시장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야말로 냉동 창고가 있어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냉동 생선인지 냉동된 생선인지는 알 바 아니나, 뭐든 사가서 요리해 먹어보고 싶기는 하다.
생선만이 아니라 이 곳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만두가 있다.
러시아식 만두는 대부분 '뻴메니(пелмень)'라고 하는데, 이곳 만두는 '뽀자(поза)'가 더 많다.
굳이 표현하자면 왕만두와 샤오롱바오 중간 즈음이랄까. 아무튼 맛나다. 신기하게도 만두같은 음식은 세계 어디를 가도 다양한 형태로 만나볼 수 있는 인류 공통의 양식인 것 같다.
아직도 다니면서 찍었던 사진만 봐도 마음이 벅차다.
단편적으로만 봐도 이렇게 이야기가 많은데, 도대체 그 매력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이제 바이칼, 그리고 알혼섬을 들여다보러 갈 생각을 하니
지금의 이 무더운 여름 날씨가 시원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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