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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Jul 14. 2016

빛나는 바이칼의 도시, 이르쿠츠크(1)

고귀한 영혼의 호수에 돌을 던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지낼 때 나의 가장 오래고 바랜 큰 꿈은 바이칼에 가보는 거였다. 

여름에 휴가를 내고 무작정 혼자 떠나리라는 다짐 속에 바이칼에 있는 알혼 섬 숙소 문의도 해보고, 비행기나 기차 티켓을 끊으려고 여행사도 갔다. 하지만 성수기에 숙소의 엄청난 예약 인원과 치솟은 교통경비 때문에 다 알아보고 나서 끝내 포기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그 때 포기를 잘한거였나보다. 결국은 바이칼 맑은 물과 세 번이나 조우하는 행운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나와 바이칼, 그리고 바이칼의 도시 이르쿠츠크는 그렇게 만날 수 밖에 없는 인연이었던거다.



맑고 투명한 바이칼 호수


# 바이칼(Байкал)에 얽힌 이야기


많은 사람들은 바이칼 호수는 많이 들어봤어도 '이르쿠츠크'라는 생소한 도시 이름은 낯설어한다. 

발음조차 한 번에 제대로 하기 어려우니. 


"이르츠쿠? 어디, 뭐라고?"


겨우 도시 이름을 일러주면 사람들이 자주 하는 착각 하나. 

이르쿠츠크에 가면 바이칼 호수를 바로 만날 수 있는 줄 안다. '이르쿠츠크=바이칼 호수?' 아니다. 

이르쿠츠크로부터 가장 가까이 위치한 바이칼이 있는 '리스트비얀카(Листвянка)' 지역까지 차로는 1시간에서 1시간 반 가량 이동해야 한다.


리스트비얀카로 가는 자작나무 숲길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Байкал)은 깊이는 최대 무려 1,600여 m의 담수(민물)호로 세계 담수량의 약 20%를 담아내고 있다고 하니, 조그마한 땅에 사는 우리는 감히 그 깊이와 넓이를 측량할 길이 없다. 바이칼은 부랴트 어로 '큰 물'이라는 뜻이라, 이름 하나만으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준다. 물은 어찌나 깨끗한지 바닥의 돌들까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바다도 아닌곳인데 바다표범이 살고, 듣도 보도 못한 '오물(Омуль)'이라는 우리말로는 어감도 이상한 물고기가 특산물로 잡히는데 단백한 맛은 일품이다.


어시장에서 파는 바이칼 특산 생선 '오물'

여기서 잠시 부랴트(Бурят) 민족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다.


바이칼 부근에는 오래 전부터 부랴트족이 모여 살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외모가 우리와 흡사하고 샤머니즘을 간직하고 있으며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과 유사한 전래동화를 알고 있다. 외모가 닮은 것부터가 놀라운데 문화까지 우리의 옛날과 판박이라니. 바이칼 부근에서 우리 쌍둥이 형제를 만난 느낌이다. 


바이칼을 중심으로 이르쿠츠크와 대칭된 위치에 있는 울란우데라는 도시에서는 실제로 우리와 비슷한 부랴트 족이 대부분이다. 울란우데로는 몽골에 접경해 있어 러시아~몽골~중국을 지나는 철도가 지난다. 민족이 철로를 따라 이동한 것만 같은 상상력을 동원해 본다.  예전에 이르쿠츠크에서 우연히 만난 부랴트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한국말을 건넨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내 내게 돌아온 건 대답 대신 그의 멀뚱멀뚱 의아한 눈빛.


바이칼 호수에 위치한 가장 큰 섬, '알혼(Ольхон)'에 갔을 때 곳곳에 샤머니즘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물들을 볼 수 있었다. 기운을 얻으러 갔다가 되려 기운을 빼앗겨 온 듯한 느낌도 좀 받았지만, 참 신비롭기만 했었다.


샤머니즘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 알혼섬.


# 이르쿠츠크(Иркутск) 이야기


바이칼에서 유일하게 흘러나가는 물 줄기는 앙가라(Ангара) 강인데, 이르쿠츠크는 이 강을 끼고 형성되었다. 생명수를 머금은 이르쿠츠크는 소위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는데, 

여기서 사람들이 자주 하는 착각 둘. 

뭇 여행객들은 '시베리아'보다 '파리'에 더 주목하면서 지나친 기대감을 가진다. 파리처럼 멋진 분위기를 상상하며 왔다가 그 규모나 분위기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다반사. 이 도시가 발전하게 된 배경을 모르면 당연한 일이다.


겨울의 앙가라강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에 있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고풍적인 건물들이 많다. 처음에 방문했을 때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문화나 예술이 더 발전했을 것 같은 품격있는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귀족 문화가 미니어처 형식으로 집약되어 있는 평화로운 마을의 느낌이랄까. 시베리안 바로크 양식이 풍겨난다.


이르쿠츠크 시내에 있는 '시베리아 바로크틱' 한 건물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이 도시의 건물이 이토록 고풍스러우면서 귀족의 느낌을 간직할 수 있었던 건 1825년 당시 전제 통치에 반대해 혁명을 꾀했던 러시아 귀족 혁명가 '데카브리스트'들이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지낸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프랑스 계몽 운동의 영향을 받아 현대화의 길로 이끌고자 황제와 대적하였고, 그렇게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데카브리스트의 아내와 연인들은 재산과 지위, 안락한 삶을 버리고 그들의 유배지까지 따라갔다. 그곳에서 기다린 것은 힘든 노역과 열악한 기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상류사회와 문화계를 일으키는데 부인들의 공은 대단했다. 그렇게 이르쿠츠크에 자리잡은 데카브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 사상을 동원하여 도시를 재건축했고 선진의 유럽 문화를 전파했다. 그들의 못다 핀 꽃이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피어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러시아 여인들은 강인했던 것 같다. 지금의 이르쿠츠크도 데카브리스트를 따라온 이 용감한 여인들의 공헌 덕분에 문화적인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리라.


데카브리스트 '볼콘스키' 백작의 집




초반에 이르쿠츠크에 갔을 때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바이칼 가기위한 도시'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몰랐던 이야기들을 알고나서 다시 들여다보니 속속들이 참 새롭게 보였다. 처음엔 막연히 고급스런 평화의 도시라는 좋은 인상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사연이 담긴 멋진 도시로서 계속 지켜주고 싶고 또 와서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베리아의 보석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여기까지 훑어보고 

다음 편에서는 여름과 가을, 겨울 이르쿠츠크의 모습과 리얼 바이칼을 사진으로 그려볼까나. 

백문이 불여일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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