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박물관 그림 여행(2): 사실 한 컷과 인상

미하일롭스키 궁전 - 19세기 후반기부터 20세기 초 러시아 미술

by 모험소녀

우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박물관 소장 명화 중심으로 그림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앞서 1화에서 본관 미하일롭스키 궁전 2층에 있는 러시아 고대 미술부터 19세기 전반기 작품들을 시간순으로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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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궁전 1층으로 내려와 19세기 후반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미술과 만나보려 한다.

그림 속 그려낸 사실적인 한 컷, 그리고 순간의 인상을 느끼는 시간이 될 것이다.


미하일롭스키 궁전 1층 관람 순서(출처: m.ok.ru)




07. [미하일롭스키 궁전 25번 방] 19세기 후반기 미술

바실리 베레샤긴 <시프카-셰이노보>
(스코벨레프의 시프카 정복)
바실리 베레샤긴(1842-1904)(출처: ru.wikipedia.org)


미하일롭스키 궁전 25번 방에 들어서면 하얀 바탕에 드리워진 참상, 바실리 베레샤긴의 <시프카-셰이노보> 그림이 있다. 베레샤긴은 전쟁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하다. 그는 "모든 것을 직접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 피로써 희생하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전쟁에 참가했고, 부상도 입어봤다. 그렇게 베레샤긴은 경험을 담아 '발칸 시리즈' 그림 30편을 남겼다.


바실리 베레샤긴, <시프카-셰이노보>(스코벨레프의 시프카 정복), 1890년 이전(출처: culture.ru)


'발칸 시리즈' 중 하나인 이 그림은 베레샤긴이 참전한 러시아-터키 전쟁(1877-1878,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불가리아를 해방시키고자 러시아가 참여한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그는 여러 차례 원정에 나가 전투를 스케치했다. 이 그림은 죽은 병사들로 가득하다. 그 뒤로는 승자들 모습도 보인다. 시프카(불가리아 땅)에서 터키군을 물리친 러시아 장군 미하일 스코벨레프가 백마를 타고 사열식에서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병사들은 만세 부르며 모자를 던진다. 이 그림의 다른 이름은 <스코벨레프의 시프카 정복>이다. 직관적으로 보면 전쟁의 승리보다는 흰 눈 위의 검은 주검들에 초점이 맞춰진 그림 같다. 작가가 의도했듯이 전쟁에는 반드시 상실이 따르며, 승리를 위해서는 그 대가를 견뎌내야 함을 보여준다.


러시아 박물관의 <시프카-셰이노보>는 트레치야코프 미술관 소장품 원본을 작가가 반복해 그린 작품이다. 비슷한 듯 다른 두 작품을 비교해 봐도 좋겠다.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에 있는 <시프카-셰이노보. 스코벨레프의 시프카 정복>, 1878-1879년(출처: my.tretyakov.ru)



08. [미하일롭스키 궁전 27번 방] 19세기 후반기 미술

이반 쉬시킨
<선박 숲>
이반 쉬시킨(1832-1898)(출처: ru.wikipedia.org)


미하일롭스키 궁전 27번 방에 사진 같은 그림이 있다. 이반 쉬시킨이 그린 <선박 숲>이다. 이반 쉬시킨은 19세기 이동파 화가로 알려져 있다. 이동파는 기존 아카데미가 요구한 귀족을 위한 그림 주제(신화, 역사 등)를 거부한 예술 아카데미 학생 14명이 자퇴하고 1870년 결성한 별도의 예술가 조직이다. 이동파 화가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사실적인 현실 속 소재를 화폭에 담았다. 쉬시킨 또한 그러했다.


19세기 러시아 이동파 화가들. 왼편에서 세 번째로 서 있는 사람이 이반 쉬시킨(1832-1898)(출처: ru.wikipedia.org)


그는 숲 그림으로 유명하다. 쉬시킨은 전국을 여행하며 풍경을 그렸다. 평소 나무와 잎사귀, 풀을 세밀하게 그려 모아두고, 캔버스 작업에 그 스케치들을 사용했다. 그는 자연을 더 아름답게 만들거나 과장하지않고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았다. 이처럼 사실적으로 숲을 표현한 쉬시킨을 러시아에서는 '숲의 황제'라 부른다.


이반 쉬시킨, <선박 숲>, 1898년(출처: culture.ru)


<선박 숲> 그림은 쉬시킨이 세상을 떠나기 전 그린 마지막 작품이다. '선박 숲'이란, 선박 건조용 나무가 자라는 삼림지대를 말한다. 쉬시킨은 자기 고향 옐라부가 근처에서 스케치한 습작들을 바탕으로 이 선박 숲을 그렸다. 그는 캔버스 공간에 다 담기지 않는 거대한 나무와 침엽수 잎, 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개울 밑 돌과 물 위로 반사되는 풍경, 작은 나비까지 하나하나 세밀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쉬시킨 필살기의 종지부를 찍은 참으로 멋진 러시아 숲 풍경화이다.



09. [미하일롭스키 궁전 33번 방] 19세기 후반기 미술

일리야 레핀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
일리야 레핀(1844-1930)(출처: ru.wikipedia.org)


33번 방에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있다. 빛의 화가 일리야 레핀의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이다. 이 그림은 레핀이 1868년 네바강에서 몸으로 배를 끄는 인부들을 처음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되어 탄생했다. 당시 누더기 옷을 입은 인부들은 무척 남루하여 그들 옆으로 산책하는 화려한 차림의 시민들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이들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았던 레핀은 캔버스에 담고자 여러 차례 인부들이 일하는 볼가강을 방문했다. 오랜 시간 볼가강을 오가며 배 끄는 인부들과 친분을 쌓고 그들을 스케치했다.


일리야 레핀,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 1870-1873년(출처: culture.ru)

레핀은 1871년 첫 번째 버전을 그렸고, 이후 계속 다듬어 2년을 더 그렸다. 그 또한 이동파 화가였으므로 서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날카롭게 표현했다. 사실성을 구체화하고자 배 끄는 인부마다 캐릭터를 부여했다. 11명의 선두에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를 닮은 사제 카닌을 배치했다. 그 뒤로는 팔로 배를 끄는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전사, 덥수룩한 머리의 선원 일리카, 어깨 끈을 조절 중인 붉은 셔츠 소년 라르카 등을 그렸다. 레핀은 이처럼 다소 가혹해 보이기까지 한 단체 초상화를 통해 민중의 힘을 찬양했고, 새로운 그림의 소재로 꺼내들었다.

이 그림으로 레핀은 1873년 빈 만국 박람회에서 동메달 수상으로 유럽에서도 명성을 얻었다. 이후 니콜라이 2세의 삼촌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 그림을 3천 루블에 구입해 자기 궁전에 걸었다. 러시아 박물관 소장품으로는 1918년 편입되었다. 레핀의 관찰과 표현이 살아있는, 러시아 회화에 큰 영향을 준 걸작이다.



10. [미하일롭스키 궁전 36번 방] 19세기 말 ~ 20세기 초 미술

바실리 수리코프
<1799년 수보로프의 알프스 횡단>
바실리 수리코프(1848-1916)(출처: ru.wikipedia.org)


36번 방에는 역동적인 그림이 있다. 바실리 수리코프가 그린 <1799년 수보로프의 알프스 횡단>이다. 수리코프는 주로 역사 속 인물과 민중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도 역사를 기반으로 한다. 파벨 1세 집권 시절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와 연합군으로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사령관 지휘하에 러시아군은 스위스 알프스에서 프랑스군과 전례없는 전투를 펼쳤다. 그림은 그때의 가장 극적인 모습이다.


바실리 수리코프, <1799년 수보로프의 알프스 횡단>, 1899년(출처: culture.ru)


수리코프는 역사가의 자세로 작품을 위해 스위스로 떠났다. 수보로프 사령관이 횡단했을 알프스의 얼음 봉우리에서 가파른 언덕을 내려왔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모델 삼아 감정이 살아있는 스케치를 그렸다. 파벨 1세 시절 군복도 박물관에서 찾아보고 연구하여 재현했다. 수리코프는 "그림의 핵심은 움직임과 영웅다운 용기이다. 사령관 명령에 순종하는 이들은 전진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림 속 백마 탄 수보로프의 명령을 따라 병사들은 눈 덮인 절벽을 급속 하강하는 용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 어떤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다. 그림은 수평에서 수직으로 바뀜으로써 더욱 역동적이다. 실제 전쟁은 아쉽게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림에 대한 반응은 굉장히 좋았다.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러시아 박물관에 소장하기 위해 이를 2만 5천 달러에 구입했다. 마침 그때가 수보로프 군대의 이탈리아 스위스 원정 100주년 되던 해였다. 이처럼 생생한 역사를 눌러 담은 수리코프의 그림은 영광스럽게 러시아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남았다.



11. [미하일롭스키 궁전 39번 방] 19세기 말 ~ 20세기 초 미술

필립 말랴빈
<춤추는 여인>
필립 말랴빈(1869-1940)(출처: ru.wikipedia.org)


39번 방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그림이 있다. 붉은 색채 가득한 이 그림은 필립 말랴빈의 <춤추는 여인>이다. 언뜻 여인의 얼굴을 못 봤다면 꽃밭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화려하다. 말랴빈은 주로 농민 여성을 그림의 소재로 선택했다. 그의 그림 속 여성과 소녀들은 춤을 추거나 다른 방식으로 기쁨의 감정을 드러낸다.


필립 말랴빈, <춤추는 여인>, 1900년대 중반(출처: culture.ru)


말랴빈 그림은 이동파 화가들 그림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밝고 화려한, 특히 붉은색을 많이 사용했다. <춤추는 여인>의 주인공은 큰 붓터치로 다채롭게 채색된 드레스와 스카프를 날리며 춤을 추고 있다. 춤추고 있는 것이 사람인지 옷인지 분간이 안 되게 인상적이다. 동시대인들은 말랴빈을 타고난 색채 화가로 평했다.


붉게 불타오르는 그의 그림은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이었다. 대담하고 독립적이며 반향적이었다. 말랴빈 그림에는 19세기 후반의 새로운 경향인 상징주의인상주의, 그리고 표현주의의 특징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즉, 일상에 대한 깊은 시각이 담겨 있고, 순간적인 인상에 기반하고 있으며, 형채와 색채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그야말로 러시아 미술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강렬한 화폭이다.



12. [미하일롭스키 궁전 41번 방] 19세기 말 ~ 20세기 초 미술

콘스탄틴 코로빈
<해변에서>
콘스탄틴 코로빈(1861-1939)(출처: rah.ru)


41번 방에는 콘스탄틴 코로빈이 그린 <해변에서>를 만날 수 있다. 코로빈은 러시아 최초의 인상파 화가로 불린다. 그가 그린 정물화는 어딘가 좀 다르다. 그 된 배경에는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풍경화가들이 있었다. 젊은 시절 코로빈은 알렉세이 사브라소프 바실리 폴레노프 작업실에서 그림을 배우고 전념했다. 사브라소프에게서 자연의 상태를 정밀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웠고, 폴레노프 덕분에 인상주의를 접했다. 코로빈은 주변 세계의 불안정성과 가변성을 그림에 재현하고, 보이는 것들에 대한 자기만의 인상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콘스탄틴 코로빈, <해변에서>, 1910년(출처: culture.ru)


그의 그림에는 유난히 바다가 많다. 코로빈의 첫 바다 풍경화는 유럽을 여행하며 인상주의풍으로 완성됐다. 이후 러시아 북부와 크림 반도의 바다를 그렸다. 특별히 그는 크림 지역 구르주프에 다차를 지어 1910년부터 1917년까지 볕이 잘 드는 해안에서 그림을 자주 그렸다. 크림이라는 공간은 코로빈의 창작에서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 바닷가에 아름다운 장미꽃이 있는 <해변에서> 그림도 크림에서 그렸다.


코로빈은 바다를 배경으로 꽃과 과일을 그려 풍경화와 정물화를 결합했다. 그림에서 보이듯 그는 밝고 선명한 색상을 사랑했고, 큰 붓터치로 깨끗하고 풍부한 톤을 남겼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물감과 빛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바로 이것을 통해 예술은 표현된다." 인상파 화가다운 코로빈의 명언이다. 그렇게 그는 크림 지역 바다 풍경과 정물이 만들어낸 한 순간을 밝고 대담하게 담아낸 것이다.



이렇게 러시아 박물관의 미하일롭스키 궁전 소장품 감상을 마쳤다.

고대 미술부터 사실적 표현이 담긴 19세기 그림, 그리고 첫 인상주의 등장의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방을 지날 때마다 눈을 뗄 수 없다. 어느것 하나 그냥 탄생한 작품이 없고, 저명한 화가들의 손끝에서 러시아 미술은 매일매일 아름답게 진화해왔음을 느끼게 된다.


이후의 그림들은 어떤 모습일까. 점점 궁금해진다.

이제 3화에서는 장소를 베누아관으로 옮겨본다.


미하일롭스키 궁전 뒤편 미하일롭스키 공원에서 본 모습(출처: commons.wik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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