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누아관 -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아방가르드의 시작
앞서 2화까지는 미하일롭스키 궁전에서 고대 미술부터 20세기 초입 작품까지
러시아 박물관 소장품을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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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미하일롭스키 궁전 옆 베누아관으로 건너와 이후 작품들로 이어가고자 한다.
탄탄한 기초 위에서 꽃핀 새롭고 선명한, 그런 깨어짐의 그림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이번 편의 그림들은 러시아 미술이 사실주의에서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허리 부분이 될 것이다.
러시아 박물관 분관 중 하나인 베누아관은 미하일롭스키 궁전과 그리보예도바 운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피의 사원과 가까워, 멀리서만 봐도 한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움이 배가되는 장소에 위치한다.
베누아관 건설은 1914년 시작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재개한 이후 1919년 완공되었다. 처음 명칭은 '예술 궁전'이었다. 건물을 지은 사람은 전설적인 제국의 예술가이자 건축가인 레온티 베누아였다. 시간이 지난 후 건축물에 그의 이름이 붙었고, 1930년대 초에는 러시아 박물관 일부가 되었다. 대조국 전쟁 이후 베누아관은 박물관 본관인 미하일롭스키 궁전과 연결되어 관람객 접근성도 높아졌다.
베누아관에서는 20세기와 21세기 러시아 미술을 연대순으로 감상할 수 있다.
상징주의, 미래주의, 신원시주의, 러시아 아방가르드, 추상주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그림들을 경험할 수 있는 셈이다.
베누아관도 미하일롭스키 궁전과 마찬가지로 2층부터 시작한다.
1층은 임시 전시(특별전 등)가 열리는 장소이므로 우리는 2층만 관람할 예정이다.
브루벨 작품이 있는 66번 방부터 가보자.
미하일 브루벨
<여섯 날개의 세라핌>
베누아관 2층 66번 방 신비로운 색채와 모자이크 느낌이 있는 이 그림은 미하일 브루벨의 <여섯 날개의 세라핌>이다. 브루벨은 러시아 상징주의 대표 화가로, 인간 내면의 세계와 상상력, 감각에 따른 그림을 그렸다. 20세기 초 브루벨의 이 작품과 <쓰러진 악마>, <예언자>로 상징주의 주인공의 정점을 찍는다. 문학가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서사시 '악마'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브루벨의 악마 시리즈는 이미 유명하다.
이번에는 천사다. 브루벨은 <여섯 날개의 세라핌> 그림이 탄생하기 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 탄생 100주년 즈음 기념으로 그의 시 '예언자' 삽화를 그렸다. 세라핌은 등급이 가장 높은 천사이다.
우리는 영적 갈증에 시달리고,
나는 음울한 광야에서 애써 움직인다,
그리고 여섯 날개의 세라핌이
갈림길에서 나에게 나타났다.
....
그리고 타오르는 숯은,
열린 가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주검처럼 광야에 누워 있었고,
그때 하나님 목소리가 내게 외쳤다:
"일어나라, 예언자여, 보고, 들으라,
나의 뜻으로 충만하라,
그리하여, 바다와 땅을 두루 다니며,
말씀으로 사람들 마음을 태워버리라."
- 알렉산드르 푸시킨, '예언자' 중에서(1826)
브루벨은 이 시에서 영감을 받아, 세라핌에 대한 내면에 품은 생각을 그려냈다. 불 같은 신의 사자, 불꽃 눈빛의 천사, 엄격한 심판자와 같은 모습이다. 그림 속 왕관 쓴 천사 세라핌은 두 손을 들고 있는데, 뱀으로 감긴 한 손에는 날카로운 검이, 다른 한 손에는 불타는 숯 향로가 있다. 왕관부터 뱀, 무기, 그의 날개 깃털마다 빛나는 조각들이 이어지는 것 같다. 캔버스를 뒤덮고 있는 브루벨의 기하학적 붓터치 덕분이다. 그는 젊은 시절 비잔틴 모자이크에 전념했었고, 그 영향으로 세라핌의 그림도 신비로운 모자이크 작품으로 표현되었다.
브루벨은 '일상 속 사소한 것들로부터 발견한 장엄한 이미지로 영혼을 깨우는 것'을 자신의 미션으로 여기며 살았다. 러시아 대문호들의 시에서 발견한 내면의 깊은 의미를 신비로운 이미지로 채움으로써 장엄한 창작을 한 그는 진정한 상징주의 작가이다.
발렌틴 세로프
<지나이다 유수포바 부인의 초상화>
베누아관 69번 방에 여인의 초상화가 있다. 발렌틴 세로프가 그린 <지나이다 유수포바의 초상화>이다. 세로프는 사실적 표현이 뛰어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작가로, 로마노프 황실을 비롯한 많은 귀족들이 그에게 줄 서서 초상화를 주문할 만큼 명성이 대단했다. 세로프가 초상화를 그릴 때는 매우 엄격해져 모델에게 여러 번 자리를 고쳐 앉게 했고, 세부 표현을 항상 신중하게 고민하고 다듬었다.
유수포프 가문에서도 세로프에게 초상화를 주문했다. 유수포프는 러시아 제국의 부유한 귀족 명문가였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라스푸틴 암살에 가담했던 펠릭스 유수포프의 어머니 지나이다로, 유수포프 궁전의 일상 배경에서 밝은 옷차림을 하고 있다. 세로프는 개와 함께 앉아 있는 지나이다 부인을 고상하고 우아한 자태로 표현했다. 담요와 베개는 아무렇게나 놓여 있을지라도 부인의 세련된 드레스와 벽에 걸린 금박 액자, 소파 장식에서는 부티가 팍팍 난다. 또 진줏빛 사이로 드러난 부드러운 회색과 금색이 그림에 차분한 느낌을 준다. 세로프는 이렇게 색상으로 인상주의 기법에 치우쳐 초상화를 그렸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 세로프가 그린 유수포프 일가 초상화 연작 중 하나이다. 유수포바 부인의 초상화는 190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예술 세계' 전시에 처음 선보이게 되었고, 이후 유수포프 궁전 박물관으로 갔다. 그러다 궁전 박물관이 문을 닫게 되자, 1925년 러시아 박물관으로 옮겨져 베누아관 소장품이 되었다. 세로프의 디테일이 살린, 한 시대를 누린 귀족 명문가의 유산이다.
미하일 라리오노프
<비너스>
이제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나 본다. 베누아관 74번 방에 가면 상식을 벗어난 듯한 노란 바탕 그림이 있다. 미하일 라리오노프의 <비너스>이다. 비너스라니?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이 좀 필요하다.
라리오노프는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이다. 혁신을 추구하는 이른 바 전위예술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러시아 예술계에 1910년부터 사용되었다. 예술가 알렉산드르 베누아(베누아관 건물을 지은 레온티 베누아의 동생)가 기존의 학술적이고 사실적 전통을 거부한 예술가들을 일컬어 칭한 표현이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는 단일 개념을 가지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 다른 화파에 속하면서 다양한 스타일을 혼합하고 실험하여 자기만의 이론과 방향성을 만들어냈다.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상징주의에서 발전한 경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대표주자 라리오노프는 1910년 뜻이 맞는 작가들과 열정이 넘치는 미래파 연합 '다이아몬드 잭'을 결성했다. 그리고 이후 탈퇴하여 '당나귀 꼬리파'를 창단했다. 당나귀 꼬리를 붓처럼 사용해 그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룹 이름에서 이미 동물적 원시가 느껴진다. 이들은 원시 시대의 예술 정신과 표현 양식을 예술에 접목하는 원시주의를 지향했다. 의도적으로 사물을 단순화하여 아이가 그린 그림이나 원시적 창작으로 재현하는가 하면, 러시아 판화와 상업 간판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비너스> 그림을 보면, 최대한 단순화된 신체와 부자연스러운 공간 배치, 분명하지만 어두운 윤곽, 도식적 얼굴이 특징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비너스의 모습은 완전히 벗어났다. 그런데 비너스라니, 그림 소재가 참 고전적이고 바로크적이기까지하다. 우리가 아는 비너스처럼 형식은 다 갖췄다. 하얀 휘장 배경으로 누운 벌거벗은 여인, 그 위로 천사가 날아다니고 새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라리오노프는 전통 회화의 모티프를 원시적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그렸다. 또 그는 캔버스에 커다란 포스터식 서명을 넣었는데, 이런 방식은 당시 아방가르드 화가들 사이에 유행하던 기법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원시의 형태로 돌아간 그런, 기존 틀을 완전히 깬 그런 그림이다.
나탈리야 곤차로바
<사이클 선수>
베누아관 75번 방으로 간다. 역동성이 느껴지는 이 그림은 나탈리야 곤차로바의 <사이클 선수>이다. 곤차로바는 미하일 라리오노프의 아내로, 그녀 또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대표작가였다. 이탈리아의 미래주의를 뒤이은 입체미래주의는 입체주의와 미래주의를 융합시킨 경향으로 특별히 스포츠 주제에 관심을 보였는데, 곤차로바의 이 그림이 바로 그 대표작이다.
<사이클 선수> 그림은 1910년대 초 러시아 예술에서 규칙과 원칙에서 벗어나려는 미래파 회화의 명확한 예시로 평가받는다. 미래주의 작가들은 기계 문명이 가져온 현대 도시의 운동성과 속도감을 예술로 표현하려 했다. 곤차로바의 작품에는 미래주파 작가들이 즐겨 사용한 모티브의 전형적 모습이 있다. 사이클 선수의 모습은 마치 상점 쇼윈도를 통해 보는 것 같고, 맥줏집과 상점 간판이 있는 건물이 사이클을 타는 배경인 듯하다. 그림을 채우고 있는 단어와 그림 조각들은 빠르게 질주하는 선수가 곁눈질로 보이는 것들이다.
곤차로바는 움직임의 효과를 표현하고자 다중 반복 기법을 사용했다. 사이클 선수를 둘러싼 윤곽들은 진동이 일어난듯 겹겹이 흐려져 있고, 길가 간판은 산산이 부서져 주인공과 부딪치는 모습이다. 인물 얼굴은 도식적으로 표시되며, 외형은 각진 면들과 깨어진 선들로 이루어진다. 온전히 알아보기 힘든 대상들이 우리 상식으로는 아는 것들이지만 새롭게 해석되고 표현되었다.
묘한 양감과 겹쳐짐 속에서 역동성이 느껴지는 새로운 그림이 참 신선하다.
바실리 칸딘스키
<파란 절정>
곤차로바와 같은 75번 방에 있는 왠지 익숙한 기하학적 그림, 바실리 칸딘스키의 <파란 절정>이다.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려면 추상주의를 알아야 한다. 칸딘스키는 추상주의 창시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추상주의는 주변 세계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형태, 선, 색을 이용하여 표현한다. 즉, '대상 없는 그림'이다. 칸딘스키는 그림이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걸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작품을 무의식적 즉흥작인 '인상'과 본인이 의식적으로 심사숙고해 배열한 '구성'으로 나누었다. 특별히 색을 면밀히 사용한 그는 색채 표현을 음악에 비유하곤 했다.
<파란 절정>은 칸딘스키가 1917년 그린 작품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색상을 입힌 점과 선이 있지만, 산 위에서 불안하게 균형잡고 있는 건물(중간 위), 노 젓는 사공들이 있는 배(오른쪽 아래)처럼 인지 가능한 대상도 있다. 또 풍경의 표현은 구름, 무지개, 비, 태양 스펙트럼 조각들로 나타나 있다. 기하학적 형태들 가운데 색상은 파란색이 주를 이루고, 여기에 대비되는 선명한 붉은색, 노란색을 더했다. 작가가 품은 생각들은 마치 하나의 음악처럼 자유롭게 펼쳐진다.
<파란 절정>을 그린 시기의 칸딘스키 작품들은 과도기에 있었다. 이전에는 부드러운 선과 형태를 가진 자유로운 즉흥연주 스타일이었던 반면, 이후 1920년대에는 소련 아방가르드의 영향을 받아 한층 더 기하학적인 스타일로 바뀌어 갔다. 칸딘스키의 그림은 색채 대비, 갈등 묘사, 불협화음이 있는듯 하지만, 그속에서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주 대단한 매력이다.
베누아관에서는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때로는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그림들도 있고, 어떤 것들은 현대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준 보석 같은 작품들도 있으니 말이다. 잘 몰라서 놓치면 아쉬울 것 같다.
물론 나도 미술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그저 사실적 표현만이 작품은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가 표현하려는 대상에서 다른 의미를 찾으려는 시각, 이를 새롭게 재현하는 방식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다. 기존 익숙함으로부터 깨어짐의 예술인 것이다. 클래식에서 모던으로 넘어오는 연결고리가 바로 여기 숨어 있다. 미술사에서 러시아 미술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베누아관 마지막 여정을 떠나보겠다.
러시아만이 가지는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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