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박물관 그림 여행(4): 현대미술의 서막

베누아관 - 20세기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by 모험소녀

러시아 미술의 걸작, 러시아 박물관 대표 소장품을

앞서 세 편에 걸쳐 미하일롭스키 궁전과 베누아관에서 연대별로 감상 중이다.


[ 지난글 ↓↓]


이제 러시아 박물관 그림 여행 마지막편이다.

베누아관 2층 관람을 계속 이어가겠다.


아방가르드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그리고 이후의 새로운 시도까지.

20세기에 꽃피운 러시아 현대미술의 서막, 그 멋진 종지부를 찍어보자.


베누아관 전시 관람 순서3(출처 spbmuzei.ru).jpg 베누아관 2층 전시 관람 순서(출처: spbmuzei.ru)




18. [베누아관 76번 방] 20세기 전반기 미술

카지미르 말레비치
<농민의 머리>
카지미르 말레비치(1879-1935)(출처: ru.wikipedia.org)


'마지막 미래주의 그림전 0, 10'의 말레비치 그림들(출처: ru.wikipedia.org)

마지막 관람은 76번 방부터 시작한다. 이곳에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그린 <농민의 머리>가 있다.

말레비치는 초기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경향에 속하는 절대주의 창시자이다. 절대주의는 입체주의에서 발전한 일종의 추상주의로, 1910년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그림은 우주의 공허함과 색채과 형태(원, 사각형, 십자형, 직사각형)가 지배적이었다. 그는 1915년 12월 '마지막 미래주의 그림전 0, 10'에서 기하학적 형태로 구성된 추상 작품 39점을 전시했다. 그렇게 아방가르드의 새 지표인 절대주의의 시작을 알렸다.


카지미르 말레비치, 농민의 수장, 1928-1929년(출처 rusmuseumvrm.ru).jpg 카지미르 말레비치, <농민의 머리>, 1928-1929년(출처: rusmuseumvrm.ru)


이후 1920년대 말레비치 그림에는 지평선과 얼굴의 형상이 등장했다. 자기만의 예술 신념을 고수한 그는 러시아 농민의 영적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농민 연작'을 남겼다. 말레비치는 러시아 이콘화 전통을 토대로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만들어, 작품이 성인의 이콘과 유사한 형식과 구도를 가지게 되었다. <농민의 머리>도 이콘화의 구성을 가져와 표현한 작품이다. 그림 속 푸른 눈의 농민은 기독교 성인 니콜라이 같기고 하고, 러시아 목판화(루복) 속 주인공도 닮았다. 그 얼굴 뒤로 붉은 십자 모양이 있다. 이는 말레비치 자신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예견이기도 하며, 1920년대 말 억눌린 농민의 삶을 상징하기도 한다. 붉은 십자를 중심으로 그림 배경은 성인의 이콘처럼 여러 부분으로 나뉘는데, 자세히 보면 인상주의부터 입체미래주의, 절대주의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풍경화가 있다. 마치 배경 하나하나가 작가의 상징적인 성장 단계인 것처럼 보인다.


같은 추상화라도 그 기저의 전통 매커니즘을 알고 보니 이렇게 새롭다. 과연 말레비치의 매력이다.



19. [베누아관 78번 방] 20세기 전반기 미술

파벨 필로노프
<봄의 공식>
파벨 필로노프(1883-1941)(출처: ru.wikipedia.org)


78번 방에는 다소 난해해 보이는 파벨 필로노프의 <봄의 공식> 그림이 있다. 필로노프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새로운 흐름인 '분석 예술'을 창시했다. 분석 예술이란, 사물의 고정적인 재현을 넘어 보이지 않는 유기적 관계, 운동성을 탐구하는 예술 방식이다. 필로노프는 그림은 형태와 색채의 조합일 뿐만 아니라, 사물이 발전하고 상호작용하는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품도 하나의 유기체로서 자연에서 생명체가 자라듯 성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필로노프는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를 그리고자 뾰족한 붓으로 점을 찍었고, 이를 하나하나 운동 단위로 간주했다. 이 원자로부터 다층적이고 복잡한 필로노프의 작품들이 탄생했고, 그렇게 그는 '공식' 시리즈를 1920년대 초에 그려냈다.


파벨 필로노프, 봄의 공식, 1928-1929년(출처 rusmuseumvrm.ru).jpg 파벨 필로노프, <봄의 공식>, 1928-1929년(출처: rusmuseumvrm.ru)


특별히 봄이라는 계절은 자연의 성장, 움직임, 각성의 개념과 직결된다. 필로노프는 자연이 원자에서 분자로 더 큰 형태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아 이 <봄의 공식>을 그려냈다. 거대한 캔버스는 원자의 운동으로 재생되어가는 세계의 상태를 완벽하게 전달하고 있다. 캔버스 속 점들이 급회전하며 마치 만화경처럼 색채 요소들이 급류를 일으킨다. 필로노프는 대비되는 색채 사용과 미세 구조의 지속적인 움직임, 큰 형체의 변덕스러운 리듬을 통해 역동하는 봄의 힘을 예리하게 표현했다. 직관적으로 보면 이 그림이 뭔가 싶지만, 분석 예술적 관점에 따라 각각의 원자 색점들이 진동하고 움직이며 유기적 물질로 활동하고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본래 러시아 박물관에서 1929년 필로노프의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소련은 선전을 위한 사실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노동층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일 뿐이었다. 차츰 소련의 예술은 공산주의 이상화, 인민 결속 등을 강조하면서 사상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20. [베누아관 81번 방] 20세기 전반기 미술

알렉산드르 데이네카
<세바스토폴 방어>
알렉산드르 데이네카(1899-1969)(출처: bigenc.ru)


베누아관 81번 방에 가면 역사화 같은 알렉산드르 데이네카의 그림 <세바스토폴 방어>가 있다. 데이네카의 작품 세계는 전쟁을 기점으로 변화가 생긴다. 전쟁 전에는 '스포츠'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원칙과 고전의 아름다움을 따랐고, 그가 그린 운동선수들은 근육질에 에너지 넘치고 강인한 승리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후 대조국 전쟁(1941-1945, 독소전쟁) 기간 동안 그의 작품 주제는 '전방'으로 바뀌었다. 그는 군사 주제의 그림을 1941년 처음 그렸다.


알렉산드르 데이네카, 세바스토폴 방어, 1942년작.jpg 알렉산드르 데이네카, <세바스토폴 방어>, 1942년(출처: culture.ru)


이 기념비적인 <세바스토폴 방어>는 데이네카가 전쟁 때 남부 도시의 폐허 사진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대조국 전쟁 초기에 독일군은 흑해에 주둔한 소련 함대 방벽을 타격했다. 소련군은 약 8개월 동안 독일군으로부터 세바스토폴을 치열하게 방어했으나, 15만 명 넘게 희생되고 도시는 완전히 무너졌다. 데이네카는 세바스토폴에 특별히 마음이 갔다. 현장을 재현하고 싶어 직접 방문했고, 전방 스케치들과 석고 조각 모음을 사용해 화폭에 담아냈다. 그림을 보면 좌측 소련 선원들과 우측 적군의 싸움이 묘사된다. 캔버스에서 가장 크게 자리한 병사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 캐릭터를 위해 작가와 친분 있는 운동선수가 포즈를 취해주었다고 한다.


그림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된 색상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소련 선원들이 입은 유니폼의 흰색은 폐허된 세바스토폴의 땅과 하나되는 모습이다. 한편, 적군의 무리는 해안가에 어두운 회색으로 덮었으며, 하늘은 피와 불의 색감인 자줏빛으로 묘사했다. 그저 인물들 뒤로 보이는 파란 바다만이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를 알려줄 뿐이다. 전쟁 역사의 한 장면이지만, 역동성과 상징적 색채 대비로 인해 하나의 포스터를 보는 느낌도 든다.



21. [베누아관 83번 방] 20세기 후반기 미술

드미트리 질린스키
<소련 체조 선수들>
드미트리 질린스키(1927-2015)(출처: tass.ru)


83번 방에서는 소련 느낌 물씬 드미트리 질린스키의 <소련 체조 선수들> 그림을 만난다. 질린스키는 서사적인 그림과 초상화를 그렸다. 1950년대 후반 소련에 '흐루쇼프 해빙'이 찾아왔다. 이때 예술은 검열이 약화되어 새로운 시기를 맞았는데, 질린스키 또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멈추고 자기만의 혁신적 주제와 양식을 형성해 갔다. 그는 그림에 동시대 인물들을 등장시켰지만, 그림 스타일은 이콘화와 르네상스 시대의 것으로 돌아간 모습을 보였다. 배경은 어둡거나 밝은 배경으로 대비되는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고전 방식을 닮아 있었다.


드미트기 질린스키, 소련 체조 선수들, 1964-1965년작.jpg 드미트리 질린스키, <소련 체조 선수들>, 1964-1965년(출처: culture.ru)


<소련 체조 선수들>의 초상화도 마찬가지로 대조적 색채에 눈이 간다. 이 그림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체조 국가대표 선수들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등장인물은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력 있는 실제 소련 체조 선수들이다. 그들 사이에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보리스 샤흘린, 유리 티토프, 폴리나 아스타호바 등이 있다. 파란, 빨간 트레이닝복 입은 이들은 국가대표팀 감독들로 이들 또한 실존 인물들에 기반했다. 이처럼 작가는 실제 인물의 얼굴과 동작으로 각각의 특성을 전달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선수들에게 내재된 인내, 침착함, 의지, 결단력 등의 자질을 드러내고자 했다. 명확한 구도와 원근법에서도 묘한 긴장감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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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국가대표 체조선수 보리스 샤흘린, 유리 티토프, 폴리나 아스타호바(출처: историческийбагаж.рф, myseldon.com, gorod55)


질린스키는 이 작품을 그리기 전, 이탈리아에서 고대 거장들의 그림을 연구했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그림을 유화가 아닌 고대 성화에서 많이 쓰인 템페라로 그리기로 결정했다. 색채를 더 견고하고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물감에 달걀 노른자 기반의 유제를 섞어 사용했다. 하지만 캔버스는 고대 전통과는 다르게 대중적인 목재 압착 보드를 선택했다. <소련 체조 선수들> 작품으로 그는 1967년 소련 예술 아카데미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 재료와 방식에서 혁명적인 전환을 이룬 국가대표급 그림이다.



22. [베누아관 85번 방] 20세기 후반기 미술

알렉세이 순두코프
<대기줄>
알렉세이 순두코프(1952-)(출처: YouTube)


베누아관 85번 방에는 동참해야 할 것만 같은 그림 알렉세이 순두코프의 <대기줄>이 있다. 한때 '소련'이라 하면 배급을 위해 긴 줄을 서는 이런 모습을 많이 떠올리곤 했었다. 1980년대 소련 예술가들은 국가의 현실과 이상을 다시 해석했고, 신표현주의, 소츠아트 등 혁신적인 사조들이 생겨났다. 기존의 회화나 판화, 콜라주 형식 외에도 설치 예술과 공연 등 그 표현 방식도 다양해졌다. 순두코프도 자신이 화가이기도 하지만, 그래픽 아티스트이자 조각가이기도 했다.


알렉세이 순두코프, 줄서기, 1986년작.png 알렉세이 순두코프, <대기줄>, 1986년(출처: culture.ru)


순두코프의 <대기줄>은 소련 현실의 고증과도 같은 그림이다. 고르바초프가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취임 후 실시한 개혁 정책 페레스트로이카(1985년 이후)가 초래한 이면적 현실을 보여준다. 총체적인 결핍이 난무한 가운데, 판매대에 버려진 것들을 배급받기 위해 사람들 줄 행렬은 끝없이 이어진다. 대기자들의 옷과 신발은 다 다른데 왠지 무거워 보이고, 외투에 털모자의 갈색 색조가 하나 같이 똑같아 보인다. 끝 없는 줄은 직선으로 뻗어 캔버스 하단 가장자리까지 가서야 사라진다. 배경은 황토색으로 가득하고 한쪽 구석에 작은 건물들 형상만이 이곳이 도시임을 알려주고 있다. 민중들이 겪는 현실을 그야말로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알렉세이 순두코프, 통로에서, 1984년(출처 artchive.ru).jpg
알렉세이 순두코프, 이동하는 승객, 1985년(출처 artchive.ru).jpg
알렉세이 순두코프의 작품들. (좌) <통로에서>, 1984년 (우) 이동하는 승객들, 1985년(출처: artchive.ru)


순두코프 그림의 소재는 일상이나 행사 속 군중들이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는 지하철을 타거나 역에서 이동하는 무리들이 그려진다. 군중이지만 각각의 캐릭터는 개별적으로 옷, 액세서리, 가방 등이 개성있게 다르게 표현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달라도 멀리 보면 다 똑같아 보이는, 당시 소련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실험과 혁신 정신이 깃들었던 20세기 후반 작품까지

베누아관 감상을 이제 마무리한다.




이렇게 러시아 미술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진화되어왔다. 그리고 현대미술의 서막을 열었다.

시대의 영향을 받아 표현 방식들이 작품마다 다르게 녹아 있어 러시아 그림이 더욱 매력적인 것이리라.


무엇보다 4편에 걸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물 같은 러시아 박물관 소장 그림을 만난 이 시간이 참 귀했다. 역시 러시아구나. 또 감탄한다.


그 소중함을 알려줘서,

"스파시버, 루스키 무제이! (고마워, 러시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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