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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Nov 09. 2017

올 때마다 놀라운 모스크바

무작정 떠난 모스크바 추억여행

그동안 정신을 쏙 빼놓았던 책 출판과 몇 가지 활동이 끝나고 나니 벌써 가을. 여행하기 좋은 여름은 이미 지나버렸지만 지금의 이 상황에서 잠시 멀어져 휴식을 가지고자 나만의 여행을 감행했다.


러시아는 물론 빠질 수 없겠지?


그래도 멀리 가는데 러시아만 가긴 아쉬워 나름의 소망을 품고,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 생판 모르는 국가까지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생각을 마친 즉시 무작정 비행기표를 질렀다. 이 순간만큼 난 여행작가가 아니었다.


모스크바의 중심에 위치한 알렉산드롭스키 정원 풍경


유럽도 유럽이지만 사실 작년 초 다녀온 모스크바를 짧게나마 또 간다니 너무나 설렜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들떴다. 이번에는 모스크바가 나를 어떻게 놀래킬까?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아, 모스크바!


# 영어의 충격


작년 초 이미 쇼핑몰에서 경험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영어 한 마디 못해 자기 말만 했던 모스크비치들인데, 시내 유명 카페에서는 영어가 꽤 들려왔다. 직원이 다가와 외국인으로 보이는 내게 영어로 묻는다. 러시아어로 하던 내가 괜히 머쓱해졌다. 카드 사용도 웬만한 장소에서 자연스럽다. 품위 없게 구깃구깃한 현찰 굳이 챙겨오지 않아도 된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쉐이크쉑 버거. 이곳은 한국보다 한가로운 편


거기까진 그런가보다 했는데, 더 놀라운 건 지하철에서였다.

평소 방송에 그렇게 귀이울이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영어 방송이 나왔다. 객차 안에는 다음역을 알려주는 전광판도 있고, 무선인터넷(Wi-Fi) 접속도 가능하다. 모든 라인을 타본 건 아니지만, 주요 노선은 영어로 안내가 나오고 있었다. 놀랍다. 이제 과연 2018년 월드컵 개최하는 나라의 수도다워지는 것인가!


중심가의 영어 안내 표지판


이토록 흡수력과 전파력이 빠르다니! 물론 그 속도엔 다 이유가 있고 배경도 있겠지만, 아날로그 모스크비치들도 모두 잘 따라오고 있는걸까. 빠른 변화로 우리나라처럼 부작용이 생기는 건 아닐지 내심 걱정은 된다.


# 안녕, 블라디미르 대공 아저씨!


작년 이맘때 이 동상이 세워진다고 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왜 뜬금없이 옛 키예프 공국의 블라디미르 대공의 동상일까? 그래도 엄청 크니까 직접 보고 싶네!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리스 정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그의 동상으로 민족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려 했다는데, 다른 의도가 숨어있든 어쨌든간 이번에 직접 보니 엄청났다. 붉은 광장에서 좀 더 걸어야 나온다. 알렉산드롭스키 정원을 가로질러 대로가 나올 때까지 걸어가면 위엄있게 서있는 그를 만날 수 있다.


블라디미르 대공 동상. 엄청 웅장하다!
블라디미르 대공의 모습

한동안은 그 크기(높이 20m)에 압도되어 한참을 쳐다보다가,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러보기도 했다가,

사진으로는 모든게 표현이 안되어 아쉬워 한다. 


블라디미르 대공의 결연한 표정, 오른손엔 커다란 십자가, 왼손엔 검... 


"러시아, 죽지 않았어!"라고 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역시 동상으로 모든걸 보여주는 동상의 나라!


# 자랴지예(Зарядье) 공원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친구가 그랬다. 크렘린 쪽을 바라보는 경관을 한 '자랴지예(Зарядье)'라는 공원이 있는데 한 번 가보라고. 본인도 안 가봤으면서 왜 나한테 가라고 하는거지?


사실 이곳은 갈 생각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원은 칼로멘스코예(Коломенское)인데, 거기보다 얼마나 좋겠나 싶어서. 친구의 말은 귓등으로 듣다가 현지 주재원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 여긴 가봐야 하는 곳이구나' 눈치 채고 떠나는 날 공항 가기 전 몇 시간이 남아 출동했다.

흐린 날이었지만 신기한 분위기의 자랴지예 공원. 저 멀리 모스크바 강으로 뻗은 공중 다리가 보인다.


이제와 얘기하지만 안갔으면 후회할 뻔했다

위치도 참 좋다. 성 바실리 사원 뒤편 강변에 조성되어있다. 오랫동안 공사를 해왔고 아직도 진행 중이긴 했다. 공원 내부에는박물관도 있고, 공연장, 카페, 공중에 떠있는 다리 등 시민들이 산책하며 쉬기 좋은 장소였다. 공중 다리에서는 크렘린 성벽과 모스크바강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이곳의 교통체증도 직접 볼 수 있다.



높은 언덕에 오르는 코스도 있고, 특히 내가 간 때가 러시아의 황금 가을(золотая осень)이라 노랗게 물든 아름다운 자연도 볼 수 있었다. 아직 공원 완성 전인데다 평일 낮인데도 많은 현지인들이 발걸음 하는 걸 보면 주말에는 발디딜 틈이 없을 것 같다. 

모스크바의 황금 가을!


아쉽게 이날 추운 날씨로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어 사진을 많이 남기진 못했지만, 모스크바 떠나기 전 그곳에 발걸음하도록 귀띔해 준 러시아 친구에게 고맙다. 덕분에 좋은 기억과 다시 와야겠다는 강한 이유가 생겼다.




짧은 모스크바 방문이었지만, 올 때마다 새롭다.

학생 때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떠난지 어느새 13년이 훌쩍 지나버렸지만 늘 짝사랑했고 추억으로 벗삼았다. 그래서인지 입국 심사 때마다 러시아어 할 줄 안다며 반기는 출입국관리소 직원을 만나는 그 순간부터 고향에 온 기분!


< 모스크바의 뜨베르스카야 거리 >


이번엔 황금 가을에 첫 눈까지 맞았으니, 

곧 모스크바와 재회하게 될 것만 같다.

말이 필요 없는 볼쇼이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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