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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Feb 06. 2020

우리는 까레이쯔(2)

고국의 애틋함, 사할린 한인

대학생 때 사할린 선교사 자녀들과 함께 공부한 적 있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3년치 러시아어 실력은 대학 수업 2주만에 바닥나는 정도.

우리말 기본, 러시아어까지 원어민 수준인 사할린 출신 친구들이 나는 늘 부러웠다.


사할린섬 (출처: yandex.ru/maps)

'사할린에 살다 와도 러시아어를 이렇게 잘 할 수 있구나'

사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할린은 러시아 땅이고, 우리에게 비교적 가까운 북쪽 섬이란 사실을. 

회사 다닐 때의 사할린은 온갖 개발 및 외국인 투자 프로젝트가 이어지던 지역으로 기억한다.

그곳에 출장 갔던 분이 눈보라에 고립되어 돌아오지 못할 때, 그런 일은 일상인듯 얘기하는게 신기했다.


이처럼 혹독한 기후를 가진 곳이건만,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없던 시절 러시아 희곡작가 체홉은 당시 유배지였던 사할린 여행까지 와 죄수들과 지내며 문학적인 전환점을 다져나갔다고 한다.


역시 사할린은 무슨 사연이 있는 곳이 틀림없다.

러시아와 일본 사이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그 섬에는 대부분이 러시아인들, 다음으로 한인들이 많이 산다.

그런데 그곳 한인들은 고려인은 아니란다.


어떤 사연일까?




여기, 고려인과는 맥락이 또 다른 동포들이 있다.

바로 사할린 한인.

 

낯선 일본 땅 사할린


1905년 일본은 러∙일 전쟁에 승리했다.

그리고 당시 러시아의 사할린섬 남부를 할양 받아 일본식 '가라후토'라 불렀다.


일본은 아무 것도 없던 섬을 개발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의 사람들을 대거 강제 징용 보냈다.

당시 일본 땅이 된 낯선 사할린 섬으로 억지로 끌려 간 사람들, 그들이 사할린 한인들이다.

섬으로 징용된 조선인들은 지리상 뱃길에 가까운 경상도 사람들 비중이 높았다.

그들은 주로 탄광, 제지, 도로와 철도 등 관련 기반 시설을 건설하는데 동원됐다.

 

주인 바뀐 땅, 그리고 망향


그러던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독일에 이어 일본도 항복하면서

남사할린섬 주인은 다시 소련이 되었고 사할린에 거주하던 귀환 대상 일본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코르사코프 항구에 있는 망향의 언덕(출처: sakhalin.info)


하지만 한인들 상황은 달랐다.

광복 이후 내부 혼란으로 한국 정부는 사할린 한인들 송환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사할린에 발이 묶인 채 고국을 그리며

코르사코프(Корсаков) 망향의 언덕에서 떠나는 배를 보며 눈물만 흘려야 했다.


귀환 대상자 기준에서 한인들에 대한 차별과 제한은 분명 존재했다.

거기다 소련 당국도 많은 인력 유출은 현지 공장 시설 유지에 문제가 될 거란 판단에 이들을 붙잡아 두려 했다.


사할린을 떠나 일본에 먼저 갈 수 있었던 일부 한인들은 남은 이들의 귀환을 위한 모임을 결성해

그들의 편지를 일본으로 받아 한국 가족들에게 전달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을 둘러싼 일본과 소련의 이해관계로 수많은 노력과 좌절이 반복되었고,

그 사이에 어떤 이들은 무국적자의 삶을 택하거나, 어떤 이들은 포기하듯 소련 국적을 취득하기도 했다.


그리운 고국으로


2015년 사할린 동포 영주 귀국 (출처: 서울신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다행스럽게도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0년 한∙러수교 영향으로 사할린 한인에 대한 영주귀국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영주귀국 후 사망했거나 사할린에 다시 돌아간 이들도 있었지만,

3천 여명의 사할린 한인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 대상자에 대한 기준이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라는 점,

일본과의 보상 문제, 귀환자를 위한 한국 내 정착 시스템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들은 많다.


힘겨운 삶 가운데 매순간 고국을 그리워하는 사할린 한인들.

이들은 러시아어를 쓰고 있어도 지금까지 생활 풍습은 대부분 옛날 우리 전통의 것을 지켜가고 있다.

김치를 직접 담가 먹고, 집안의 큰 일은 ‘손 없는 날’에만 맞춰 한다.

 

러시아 땅에 있으면서도 한국인의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 온 우리 동포들,

한국과 러시아를 이어주는 무언지 모를 애틋함이다.




고려인, 사할린 한인들…
우리에게는 같은 역사의 뿌리를 가진 친구들이
러시아 전역에 엄청나게 많이 있다.


'까레이쯔'의 식문화, 러시아인 단골 메뉴가 되다!
고려인과 사할린 한인 음식은 현지에서도 인기다. 고려인이 담가 먹은 새콤달콤 길쭉한 당근 샐러드는 이름도 현지에서 '한국 샐러드(корейский салат)'로 불리며, 러시아 서민들의 단골 반찬이다.
또 사할린 한인이 만들어 먹던 만두 '편수'의 현지 이름은 '삐얀세(Пян-се)', 극동지역에서 든든하고 따뜻한 왕만두로 사랑받고 있다. 현지화된 우리 동포들의 음식 덕분에 러시아가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한국 샐러드(왼쪽) 그리고 삐얀세(오른쪽) (출처: zen.yandex.ru, twitock.com)



★ 본 글에 게재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표지사진 출처: korsakovhram.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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